내일의 눈

금융당국은 과감한 선제대응을

2023-11-07 11:24:25 게재
"작년 레고랜드 사태 당시와 비슷하게 연말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다만 작년과 다른 점은 정부의 비상조치(50조원 이상 유동성 공급)가 없다는 것뿐입니다." 최근 만난 금융당국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지난해 자금시장 경색이 올해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다.

미국 국채금리 불안이 국내 시중금리 상승에 영향을 주고 있으며, 채권시장도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지난달 회사채와 캐피탈채 순발행 규모가 작년 레고랜드 사태 이후 최저 수준으로 나타났다. 은행채 발행 규모가 커지면서 자금쏠림 우려가 커졌고 신용등급이 가장 높은 기업들조차 높은 금리로 회사채를 발생하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연초 대비 회사채 잔액이 500억원 이상 감소한 60개사 중 20개사는 은행대출, 5개사는 기업어음(CP), 11개사는 사모사채, 24개사는 자체자금으로 공모 회사채를 상환했다. 시장 불확실성과 금리부담 등으로 자금조달 통로를 바꾸거나 보유한 현금으로 감당하고 있다는 얘기다. 국내외 금융시장의 급격한 변동성으로 자금시장은 다시 살얼음판이 됐다. 예상치 못한 충격에 유동성 위기를 겪을 수도 있다. 시장 안정을 위해 금융당국이 과감한 선제대응을 주저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금융당국은 내년 6월까지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 이유는 2가지다. 먼저 국내 증시 변동성이 해외 주요 증시 대비 가장 높은 수준으로 확대되는 등 시장의 불안이 가중됐기 때문이다. 둘째 외국인·기관투자자의 불법 무차입 공매도에 대한 전수조사를 마무리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총선을 앞둔 정치권 압박에 금융당국이 백기를 들었다는 질타가 쏟아진다. 실제 글로벌 투자은행(IB)의 불법 우려가 있다면 정치권 요구가 있기 전에 먼저 공매도 금지를 단행하고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비판받아온 공매도 제도의 개선과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했다.

또 서민들의 금융환경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으며 자금조달 통로가 막힌 취약계층의 고통은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도 직시해야 한다. 금리인하기에 낮춘 법정 최고금리를 금리상승기에 올리지 못하면서, 취약계층은 생계비 목적의 소액자금도 제도권 금융에서 빌리지 못하고 불법사채로 내몰리고 있다. 금융당국은 제한적 형태의 법정 최고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섣불리 공론화시키지 못하고 있다. 취약계층을 위한 보다 신속하고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한 때다.

금융당국이 정치권과 여론의 눈치를 보면서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장과 국민들의 몫으로 돌아가게 돼 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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