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망 관리, 행안부 '등잔 밑'이었다

2023-11-21 10:38:52 게재

사고대응 매뉴얼도 없어

'재난대응 총괄부처' 무색

재발방지 근본대책 절실

사상 초유의 행정전산망 먹통사태로 행정안전부 행정망 관리수준의 민낯이 드러났다. 국가 행정망 전체가 마비될 수 있는 주요 국가기반시설임에도 불구하고 사고에 대비한 대응매뉴얼조차 갖추고 있지 않았다. 행정망을 직접 관리하는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역시 기본적인 업무매뉴얼조차 지키지 않았다. 일각에서 이번 사태를 '예고된 인재'라고 지적하는 이유다.

21일 내일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행안부는 실제 행정망 장애에 대한 대응매뉴얼을 갖고 있지 않았다. 이번 사태가 발생했을 때 행안부 산하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은 '장애관리절차서'라는 내부 비공개 매뉴얼에 따라 복구를 진행했다. 이 관리절차에는 대국민 공지나 관계부처 상황전파·공유, 언론대응절차 등 기본적인 사고수습 대책이 빠져 있었다. 행정망 마비 사태에 대한 매뉴얼이 처음부터 없었던 셈이다.

하지만 다른 부처들은 이와 유사한 상황에 대한 대응매뉴얼을 갖추고 있다. 매뉴얼에 따라 금융전산 마비 사태에 대해서는 금융위원회가, 정보통신장애 마비 사태에 대해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각각 주무 부처로 범정부 대응체계를 가동하게 돼 있다. 재난 수준의 상황이 벌어지면 이들 부처가 중앙사고수습본부가 돼 사태를 수습한다는 의미다. 또한 유관기관 상황전파, 재난문자 등도 관련 매뉴얼에 따라 신속히 이루어진다.

실제 이번 사태에서 행안부 조치를 보면 임시방편으로 대처한 흔적이 역력하다. 우선 장애가 발생한 지 4시간이 넘게 지난 17일 오후 1시쯤에야 국민들에게 대법원 국토교통부 등 '민원 발급 대체 사이트'를 안내했다. 지난해 10월 카카오톡 불통 사태 때는 과기정통부에서 재난문자를 3차례 발송한 것과 비교된다. 사태를 가장 먼저 알려야 할 지자체 공무원들에 대한 안내도 늦었다. 장애 발생 후 8시간이 지난 오후 4시 44분에서야 '수기 대장으로 민원을 접수하라'는 안내 공문을 발송했다. 이후 장애대책본부가 구성된 시간은 장애 발생 11시간 뒤인 오후 7시 30분, 처음 회의를 연 시간은 이보다 1시간 30분 뒤인 오후 9시쯤이다. 언론에 이 상황을 공식적으로 알린 시간도 장애 발생 9시간 뒤인 오후 5시 40분쯤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부 업무의 전면 디지털화'가 바람직한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디지털플랫폼정부 자체를 부정하지 않지만 안정성과 보안을 뒷받침할 대안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행정망 마비는 올해 들어서만 지난 3월 법원전산망 마비, 지난 6월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오류에 이어 3번째다. 지난해 11월에는 질병관리청 누리집에 접속이 안 되는 장애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번 사태로 각 지자체 민원현장에서 수기로 발급된 전입신고서와 인감증명서 등이 6282건에 달한다. 권선필 목원대 교수는 "신용카드 사용이 확대되더라도 일정 정도의 현금 거래가 필요한 것처럼, 이번 사태로 인해 행정 역시 디지털화 되더라도 일부 아날로그 방식의 업무도 유지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줬다"고 말했다.

한편 관련 전문가들은 새올행정시스템의 근본적인 정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실제 이 시스템은 올해로 도입 17년이 됐지만 변화하는 관련 기술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고 유지·보수만 해오고 있다. 이 때문에 관련 업계에서는 낙후된 시스템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차세대 시스템 도입에 4000억원 이상이 필요하지만 5년째 예비타당성조사도 통과하지 못했다.

한편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21일 행정전산망이 복구된 것을 확인한 뒤 영국 출장을 떠났다. 행안부는 "영국 디지털정부를 담당하는 알렉스 버가트 내국부 장관으로부터 윤 대통령의 국빈 방문 기간 중인 오는 22일 디지털정부 협력 관련 양해각서(MOU)를 새롭게 체결하자는 초청을 받은 상황"이라며 "행정전산망 장애 사태가 일단락된 만큼 영국 내각의 이례적인 초청을 거절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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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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