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망 먹통사태 원인은 '장비불량'

2023-11-27 10:56:53 게재

사고 8일 동안 헛다리짚은 행안부

노후장비 아닌데도 불량원인 몰라

정부는 17일 발생한 행정전산망 먹통사태의 원인을 '장비불량'이라고 결론 내렸다. 사고 발생 8일이 지나서야 원인을 밝혔지만 장비불량이 왜 생겼는지는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특히 이후 잇따라 발생한 행정전산망 장애들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아무런 해명을 내놓지 않아 국민들의 불안감을 키웠다.

27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방행정전산서비스 개편 TF'는 행정망 마비 원인이 네트워크 장비인 라우터의 일부 포트 불량이라고 25일 발표했다. 라우터는 서로 다른 네트워크를 연결해주는 장치로, 이곳에 통신선을 꽂는 포트(연결단자)가 손상돼 1500바이트 이상의 대용량 패킷(데이터 전송 단위)이 전송될 때 약 90%가 유실됐고, 통합검증서버가 필요한 패킷을 정상 수신하지 못해 서비스가 정상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TF 공동팀장을 맡고 있는 송상효 숭실대 교수는 원인 분석에 예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는 지적에 대해 "라우터 장비의 불량 외에 다른 이상 현상을 발견할 수 없었다"며 "확인된 사실을 신속히 발표해야 했으나 결과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 위해 명확한 검증 과정이 필요했고 이에 따라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정부 발표에도 불구하고 의문점은 말끔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단순 장비 불량을 밝혀내는 데 1주일 이상 걸린 탓이 크다. 또한 이 장비는 사용연한 이전의 제품으로 노후 장비도 아니었다. 장애가 발생했다면 평소 정비·점검을 소홀히 한 탓일 수밖에 없다. 특히 정부는 이번에도 라우터 불량 원인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했다. 이재용 국가정보자원관리원장은 브리핑에서 "장비의 물리적 손상은 원인을 밝히기 어려우나 장비가 2016년에 도입돼 노후한 건 아니다"라며 "매일 시스템을 점검하지만 장비 고장은 발생 전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명예교수는 "정부 발표는 20일 이후 조달청 근로공단 조폐공사 사이버경찰청 등 행정망에 접속하지 않고는 돌아갈 수 없는 시스템에서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연이어 터진 오류는 염두에 두지 않은 분석으로 졸속"이라며 "다른 부처 시스템이라 해도 행정망과 연계된 시스템에서 오작동이 같은 시기에 발생했는데 연관성이 있다고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이어 "(정부 발표는) 다음에도 또 그럴 수 있으니 양해를 바란다는 수준의 양해각서를 국민을 대상으로 일방적으로 쓴 꼴"이라고 꼬집었다.

더구나 정부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대기업에 공공 소프트웨어(SW) 사업 참여 빗장을 풀어주기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1000억원 이하 사업에 대기업 참여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관련법이 개정되면 10년 만에 사업참여 제한이 풀린다. 2013년부터 대기업의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참여가 제한돼 왔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번 행정전산망 장애 사태를 계기로 시스템 개선은 불가피해졌고 기재부도 더 이상 관련 예산 배정에 반대만 할 수 없게 됐다"며 "이런 기회를 틈타 업계의 경쟁이 벌써부터 시작된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가전산망 장애를 사회재난 범주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국가전산망이 국가기반시설로 문제를 일으켰을 때 사회에 미치는 파장이 크다는 점을 인정한 셈이다. 국가전산망 장애가 사회재난에 포함되면 예방 대비 대응 복구 등 전 단계에 대한 대응매뉴얼이 만들어지고, 이행점검도 이루어진다. 특히 사고가 발생할 경우 중앙사고수습본부 중앙사고대책본부 등 범정부 대응조직이 구성돼 체계적인 대응이 이루어진다. 홍종완 행안부 사회재난대응국장은 "재난안전기본법 시행령을 개정해 국가 기관의 전산망 마비를 '재난·사고 유형' 중 하나로 명시할 계획"이라며 "내년 6월 시행을 목표로 내부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는 시행령 개정 추진과는 별개로 지난 17일 발생한 행정전산망 장애는 사회재난으로 분류하지 않는다는 기존 방침을 유지했다. 이번 사태가 재난 사태까지 번지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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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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