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집중·지방소멸 심화 … 지방시대 무산 위기감

2024-01-02 15:57:18 게재

지방분권 의제 논의 지속되어야

지방정부, 능력 아닌 권한 없어

자치분권·균형발전 과제는 30여년 전 지방자치가 시작된 이후 줄곧 지자체들의 최대 관심사였다. 특히 우리사회가 초저출산으로 인한 인구감소 위기와 인구유출 가속화에 따른 지방소멸 위기를 동시에 겪으면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절체절명의 과제가 됐다. 이를 위해 역대 정부마다 다양한 정책들을 내놓았지만 말만 앞섰을 뿐 구체적인 성과는 미미했다. 윤석열정부도 마찬가지다. '지방시대 구현'이라는 목표를 내걸고 다양한 정책방향을 제시했지만 아직까지는 이렇다 할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박형준 부산시장과 악수하는 윤석열 대통령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27일 경북 안동 경북도청에서 열린 제5회 중앙지방협력회의에서 박형준 부산시장과 악수하고 있다. 박 시장은 이날 회의에 앞서 열린 시도지사협의회 총회에서 차기 협의회장으로 선출됐다. 안동 연합뉴스


◆집권 3년차, 지방시대 실현해야 = 지자체들은 2024년을 지방시대 실현의 골든타임으로 인식하고 있다. 올해 성과를 내지 못하면 윤석열정부 역시 과거 정부와 마찬가지로 자치분권·균형발전 정책이 진전 없이 끝날 수 있다는 위기감의 표시다. 박형준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장은 "역대 정부가 다양한 균형발전·지방분권 정책을 추진해왔지만 수도권 초집중화와 지방소멸 위기는 더 심화되고 있다"며 "과거처럼 중앙정부가 모든 돈과 권한을 독점하고 수도권 중심 성장정책을 멈추지 않는다면 더 이상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고 말했다.

이철우 경북지사가 지난해 말 시도지사협의회장 임기를 연장하면서까지 강력하게 자치분권 과제 이행을 요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지사는 지난해 말 기자간담회에서 "중요한 것은 지방정부가 맡아서 일을 할 수 있도록 믿고 맡겨줘야 하는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며 "지방정부는 능력이 아니라 권한이 없는 것이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자체들은 윤석열정부의 지방시대 정책에 거는 기대가 지난 정부 때보다 컸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해 9월 지방시대 선포식에서 "지역의 경쟁력이 국가의 경쟁력"이라며 "우리 정부는 모든 권한을 중앙이 움켜쥐고 말로만 지방을 외치는 그런 과거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중앙지방협력회의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지자체들의 기대는 더욱 높아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10월 7일 울산에서 개최한 취임 후 첫 중앙지방협력회의에서 "입법과 법령 정비 과정에서 지역의 목소리가 반영된다면 중앙지방협력회의가 제2국무회의로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2월 10일 전북에서 열린 제3회 회의에서는 지자체들의 오랜 숙원을 담은 구체적인 논의가 이어졌다. 자치조직권 확대, 특별지방행정기관 일괄이관, 교육재정 합리화 방안 등 지자체들의 오랜 숙원 과제들이 구체적으로 논의됐다. 윤 대통령도 "중앙정부는 외교와 안보, 통상과 산업 기본정책 위주로 하고 나머지는 지방정부가 우선으로 해야 한다"며 지방시대 구현 의지를 재확인했다.

지자체들은 이를 계기로 지난해 6월 '지속가능 지방정부 실현을 위한 5대 분야 19개 정책과제'를 선정, 의결했다. 이 정책과제들을 순차적으로 중앙지방협력회의 안건으로 상정해 해결해 나가겠다는 의도였다. 19개 과제에는 자치조직권 확대, 자치경찰권 강화, 자치입법권 확대, 특별지방자치단체 활성화, 지방영향평가제도 도입 같은 지방자치권 확대 방안을 담았다. 지역발전 통합생태계 조성, 균형발전 재원 확충 같은 균형발전 과제도 구체화했다. 이 밖에도 특별지방행정기관 일괄이관, 교육재정 합리화 등 지방의 자율성과 권한을 확대할 구체적인 과제들을 선정했다. 시도지사들은 끝으로 지방분권개헌이라는 최종 목표까지도 중앙지방협력회의에서 논의하길 희망했다.

하지만 현실은 이 같은 기대를 저버렸다. 4차 중앙지방협력회의가 지난해 4월 6일 부산에서 열렸지만 부산세계박람회 유치 지원을 결의하는데 집중하느라 지난 회의에서 제기됐던 세부 과제들은 논의되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27일 경북 안동에서 열린 5차 중앙지방협력회의에서 일부 지방분권 의제들이 다뤄졌지만 지자체들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법에 규정돼 있는 4분기 회의는 결국 열리지 않았다. 이렇게 대통령과 중앙정부 관심에서 조금씩 밀려난 중앙지방협력회의는 새해 들어서도 일정을 조율하지 못하고 있어 1분기 회의 개최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4월 총선 일정을 고려하면 다음 중앙지방협력회의 개최는 올 하반기에나 가능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중앙지방협력회의의 위상이 그만큼 약해진 것이다. 한 광역지자체 관계자는 "지난해 여름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회를 계기로 지방정부 목소리에 힘이 실리지 않고 있다"며 "중앙정부도 이를 계기로 지방의 요구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공공기관 이전, 4대 특구' 정책성패 가늠자 = 대통령직속 지방시대위원회는 지난해 논의하던 2단계 공공기관 지방이전 과제를 올해 총선 이후로 연기했다. 우동기 위원장은 "불필요한 갈등을 막기 위해 논의시기를 늦춘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지자체들은 "이러다 문재인정부 때처럼 정권 말까지 시간만 끌다 흐지부지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가 추진하려는 기회발전특구 등 4대 특구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과감한 규제혁파에 나서겠다고 했지만, 지자체와 수도권 기업들은 여전히 반신반의하고 있다.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은 지난해 12월 행안부와 대한상의가 공동으로 개최한 지역경제포럼에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파격적인 규제프리 구역이 필요하다"며 정부의 과감한 정책변화를 요구했다.

그나마 지난해 진척을 보였던 자치조직권 확대조차 지자체 요구와 비교하면 매우 낮은 수준만 이행됐다. 특별지방행정기관 이관 등은 논의에 진전이 없다. 민선 8기 초대 시도지사협의회장을 지낸 이철우 경북지사는 "법 개정이 필요한 부단체장은 물론이고 당장 시행령 개정으로 가능한 기획조정실장 인사권 자율화조차 중앙부처 반대에 부딪쳐 얻어내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박형준 시도지사협의회장도 "자치조직권 확대, 특별행정기관 일괄 이관 같은 안건들이 직접 이해당사자인 중앙부처 이견과 반대라는 장벽에 가로막혀 있다"고 지적했다.

올해 대내외 환경은 여느 때와는 다르다. 오는 4월 10일 총선을 앞두고 모든 관심이 총선에 쏠릴 수밖에 없다. 정치의 시간인 셈이다. 또한 총선 결과에 따라 윤석열정부의 국정운영 기조도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 윤석열정부 집권 3년차라는 점도 위기감을 키운다. 하동현 전북대 행정학과 교수는 "윤석열정부가 지방시대 구현을 핵심 국정과제로 내세우고 출범했지만 아직까지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는 못하고 있다"며 "따라서 집권 3년차인 올해 구체적인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윤석열정부의 자치분권·균형발전 정책도 과거 정부들처럼 용두사미로 끝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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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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