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단체장 직급상향이 자치분권 강화?

2024-01-10 10:52:37 게재

인구 10만명 미만 93곳 대상

광역-기초간 인사갈등 커져

자치조직권 확충을 목적으로 시행한 인구 10만 미만 시·군·구 부단체장 직급 상향이 오히려 갈등만 유발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도 도입 취지와 다르게 광역-기초 지자체간 인사교류 갈등을 키웠다는 것이다.

10일 내일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전국 10여개 시·도에서 기초지자체 부단체장 인사를 둘러싼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인사권을 둘러싼 광역과 기초간 힘겨루기다.

그동안 행안부와 시·도 사이에 있었던 부단체장 인사권 갈등이 시·도와 시·군·구 사이에서도 존재해왔다. 행안부가 시·도 행정부지사·부시장을 내려 보내는 것처럼 시·도 역시 시·군·구에 부시장·부군수·부구청장을 내려 보내고 있다. 이 때문에 매년 인사 때마다 부단체장 인사권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 같은 갈등은 인구 10만 미만 지자체의 부단체장 직급을 4급에서 3급으로 상향한 이후 더 거세졌다. 대상 지자체들의 경우 그동안 최고위 직급인 부단체장과 실·국장이 모두 4급이었다. 하지만 부단체장 직급이 3급으로 상향되면서 3급 인사권에 대한 욕심이 커진 것이다. 실제 충남 태안군의 경우 최근 충남도 요구를 거부하고 4급인 현 부군수를 3급으로 승진시키고 유임 발령하면서 도와 갈등을 빚고 있다.

비단 충남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공무원노동조합 충북지부는 지난 2일 기자회견을 열고 충북도의 부단체장 인사권 행사를 비판하고 나섰다. 노조는 "지방자치법에 명시된 시장·군수의 권한을 무시한 사실상 광역단체의 인사 숨통을 위한 낙하산 임명에 불과하다"며 "충북도의 불통과 갑질에 맞서 도내 각 시·군과 함께 대책을 마련해 나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충북 기초지자체들도 직접 행동에 나섰다. 진천군은 자체 4급 자원을 도에 파견하고 3급으로 승진한 뒤 부단체장으로 임명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옥천군은 2026년부터 부단체장 인사를 자체적으로 하겠다는 내부 방침을 정했고, 음성군은 올해부터 부단체장에 대한 관사 제공 혜택을 없애는 방식으로 항의의 뜻을 표시했다. 앞서 공무원노조 전남지부도 같은 내용의 성명을 내고 항의한 바 있다. 고흥군·구례군에서는 도가 임명한 부군수의 출근길을 가로막고 사무실에 출근하지 못하게 하는 일도 있었다.

이와 관련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말 인구 10만 미만 시·군·구 부단체장 직급을 4급에서 3급으로 상향하는 내용으로 지방자치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4급 부단체장의 경우 실·국장과 직급이 같아 지휘·통솔에 어려움이 있다는 점을 고려한 조치다. 지난해 10월 27일 제5회 중앙지방협력회의에서 상정·의결된 자치조직권 확충방안에 따라 도입했다.

대상 지자체인 인구 10만 시·군·구는 지난해 말 기준 93곳이다. 사실상 군 단위 기초지자체는 모두 해당된다. 바뀐 시행령에 따라 올해 인구 5만~10만 지자체 40곳은 올해부터 직급이 상향됐고, 인구 5만 이하 지자체 53곳은 내년부터 적용된다. 그동안 지자체들이 시·도 부단체장, 기획조정실장 인사권과 부단체장 정수 자율화 등과 함께 요구해온 과제다.

하지만 행안부는 이 같은 지자체 요구의 핵심은 내버려둔 채 인구 10만 미만 시·군·구 부단체장 직급 상향만 받아들였다. 이 때문에 지자체들 사이에서 '핵심을 비껴갔다'는 불만이 나왔다.

직급 상향은 다른 부작용도 만들어냈다. 9급 출신 시·도 하위직 공무원들 중에서는 4급 서기관 승진 후 고향에서 부단체장을 해 보는 것이 공직생활 목표인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과정을 거쳐 지방선거 출마를 고민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부단체장 직급이 3급으로 상향되면서 이 같은 목표를 이루기가 더 어려워졌다. 행안부가 최근 승진소요연한을 대폭 줄였지만 여전히 3급 승진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일반직공무원이 9급에서 3급으로 승진하는데 필요한 최소 승진소요연한은 지난해까지 16년이었는데 올해부터는 11년으로 줄였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3급까지 승진하는 경우는 극히 일부이고, 5급으로 승진하는 데만 평균 20년 이상 걸린다.

한 기초지자체 관계자는 "도에서 내려와 잠시 다녀가는 부단체장의 경우 4급인지 3급인지가 크게 중요하지 않다"며 "오히려 3급으로 상향되면서 급여와 여비 등이 인상돼 주민들에게는 손해"라고 말했다. 월 급여가 150만원 정도 인상되고 KTX 특실과 항공기 비즈니스석 이용도 가능해져 부담만 커졌다는 불만이다.

김신일 최세호 곽재우 방국진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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