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앞둔 '용산 포퓰리즘'에 경제부처 속앓이

2024-01-17 11:22:10 게재

대주주 기준완화·금투세 폐지 선언 이어 부담금 전면 검토

부담금 전면폐지 땐 24조 '세수펑크' 재정부담 대책 없어

없애려면 법률 개정 뒤따라야 "실현 가능성 낮아" 지적도

윤석열 대통령이 부담금 제도 폐지 추진을 시사하면서 경제부처에 비상이 걸렸다. 24조원 규모의 부담금을 폐지하면 그만큼 세수가 줄어들어 국가재정전략을 다시 짜야 할 판이기 때문이다. 또 법 개정이 전제조건이 되는 부담금이 대부분이어서 실현 가능성도 높지 않다. 야당은 윤 대통령이 총선을 앞두고 선심성 정책을 내놓고 있다고 비판했다.

윤석열 대통령, 상생 금융·기회사다리 민생토론회 참석 |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 네번째, 상생의 금융, 기회의 사다리 확대'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대통령실발 '포퓰리즘적 정책 지시'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연말에는 대주주 주식양도세 기준을 완화(10억→50억)하겠다고 해 논란을 일으켰다. 당초 여야 합의를 일방파기하고 부자감세 비판을 자초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지난 2일에는 금융투자소비세 폐지 추진 방침을 밝혔다. 두 가지 사안 모두 수조원대 세수결손을 감수해야 하는 정책이었지만, 재원마련 대책은 따로 밝히지 않았다. 지난 10일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30년 이상 노후화 주택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 허용' 방침을 밝혔다. 서울의 전체 아파트 27.5%에 해당하는 사안이어서 부동산 시장 안정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즉흥적이란 비판도 이어졌다.

◆주요 부담금, 기업·협회에서 걷어 = 17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전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부담금 전면 재검토'를 지시했다. 법정부담금은 특정 공익사업과 관련해 국민과 기업에 부과되는 준조세다. 담배에는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이 껌값에는 폐기물부담금이 붙는 식이다. 이날 국무회의에서는 회원제 골프장 시설 이용자의 입장료 부가금 등 5개 부담금을 폐지하거나 통합·관리하도록 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의결됐다.

이번에 정비하는 부담금은 위헌 결정을 받았거나, 부담금을 협회 회비로 전환키로 이미 결정된 것이다. 윤 대통령은 "국민과 기업의 부담을 실제로 덜어드리려면, 91개에 달하는 현행 부담금을 전수조사해서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역동적이고 지속 가능한 자유시장경제를 위해 자유로운 경제 의지를 과도하게 위축시키는 부담금은 과감하게 없애나가야 한다"며 "기획재정부는 현행 91개의 부담금을 전면 개편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올해까지 원점 재검토 = 부담금은 특정 공익사업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람에게서 해당 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부담금관리기본법'과 각 법률에 근거를 두고 있다. 공익 목적의 재원을 마련한다는 점에선 세금과 비슷하다. 하지만 부담금은 특정한 사업 경비를 이해관계자에게서 징수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이 걷는 전체 부담금 수는 부담금관리기본법을 제정한 2001년 101개에서 현재 91개로 조금 줄었다. 반면 전체 부담금 납부액은 2001년 6조8000억원에서 2022년 22조4000억원으로 확대됐다. 지난해와 정부가 계획한 부담금 징수 규모는 21조8000억원이다. 올해 부담금 규모는 24조6000억원이다.

기재부에 따르면 부담금을 없애거나 통폐합하려면 법 개정이 필요하다. 대통령실은 올해 안에 91개 부담금 전체에 대한 원점 재검토를 거쳐 관련 법안을 상정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에 따라 기재부는 올해 전체 부담금의 운용 실태와 적정성 등을 전수조사할 계획이다. 현재도 정부는 기재부 장관이 위촉한 교수·연구자·전문가 등 부담금운용평가단을 구성해 해마다 전체 부담금의 3분의 1씩을 점검·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평가단을 새로 구성하고 평가 기준도 재검토해 불합리한 부담금 폐지, 부과 요율 하향 등을 담은 부담금 개편 방안을 연내 마련해 발표할 방침이다. 개선 과제를 상시 발굴해 연말 이전에도 개별 부담금의 개선안을 내놓기로 했다.

◆말잔치에 그칠 가능성 커 = 하지만 부담금 전면 재검토는 사실상 말잔치에 그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우선 주요 부담금은 국민들에게 직접 걷는 것이 아니라 금융기관이나 민간 기업들로부터 걷는다. 지난해 기준 2조원 규모의 예금보험기금채권상환특별기여금이나 9000억원 규모 주택금융신용보증기금 출연금 등이 대표적이다. 이 돈은 모두 금융기관들이 부담한다. 대통령이 언급한 '불합리한 국민 부담 가중'과는 거리가 있다.

또 24조원이나 되는 부담금을 폐지하면 정부는 재정부족에 시달려야 한다. 올해도 대규모 세수부족사태가 예고된 상태에서 부담금 폐지는 사실상 감세와 같은 결과를 빚게 된다.

줄어드는 부담금 수입을 어떻게 채울지 대안도 없는 상태다. 기재부 관계자는 "부담금 납부액이 귀속되는 정부 기금과 특별회계의 여유 재원을 활용할 것"이라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대통령 지시가 있었으니 결과는 내야겠지만 가장 큰 어려움이 재원마련 방안"이라고 했다.

법정부담금을 없애기 위해서는 관련된 법안 개정도 뒤따라야 한다. 하지만 유관 부처나 지방자치단체 등 이해관계자들이 반발할 것이 뻔해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더구나 여소야대 국회에서 다수당인 야당은 "대통령실의 동기가 불순하다"며 반대를 예고하고 있다.

한민수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총선에서 표를 얻겠다는 심산으로 제대로 숙고하지도 않은 즉흥적 정책 발표를 이어가는 대통령의 무책임한 모습이 한심하기 짝이 없다"고 비판했다. 부담금 폐지논란이 결국 '총선용 립서비스'로 끝날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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