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가정 양립 실태조사

기업 70% '육아휴직하면 승진에 불이익 준다'

2024-01-19 10:55:23 게재

대기업조차도 10곳 중 4곳,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 출산에 따른 경력단절 26%, 5년 전보다 19% 늘어

4월 10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18일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저출산 대책을 경쟁적으로 쏟아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여성가족부를 흡수해 부총리급 인구부 신설을 제시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주거·재정 지원을 포함한 '저출생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신청하면 자동으로 육아휴직이 시작되는 공약은 여야 모두 같았다.
국민의힘은 아빠에게도 1개월 유급 출산휴가를 의무화하고 육아휴직 급여 상한을 기존 150만원에서 210만원으로 인상, 초등 3학년 이하 자녀돌봄휴가(연 5일) 신설 등을 제시했다. 또 육아휴직 대체인력 지원금을 80만원에서 160만원으로 2배 인상한다. 대체인력 확보가 어려운 경우 동료의 업무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육아 동료수당'을 신설하고 가족친화 우수 중소기업에 법인세를 감면하기로 했다.
민주당은 자녀 둘이면 24평, 셋이면 33평 주택을 분양전환 공공임대주택을 주고, 모든 신혼부부에게 10년 만기로 1억원을 대출해준 뒤 자녀 둘을 낳으면 50% 감면, 셋을 낳으면 전액 탕감하기로 했다. 8세부터 17세까지 자녀 1인당 월 20만원씩 아동수당과 자립펀드 명목으로 자녀가 고등학생 때까지 1인당 최대 1억원을 지원한다. 중소기업 출산전후 휴가급여와 육아휴직 급여를 각각 월 50만원씩 추가 지원한다.
역대 정부는 저출산 대책으로 다양한 저출산 문제해결을 위해 다양한 제도를 시행해왔다. 하지만 고용노동부의 '2022년 기준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육아휴직자에게 승진 불이익 주는 기업'이 70%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관련법 위반으로 처벌조항이 있지만 현장에서는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여야 '저출생' 대책 총선 공약 발표│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18일 '저출생' 대책 공약을 나란히 발표하며 총선 정책 경쟁에 시동을 걸었다. 국민의힘은 우선 유급 배우자 출산휴가(아빠휴가) 1개월 의무화를 공약으로 냈다. 민주당은 우선 취업 여부와 무관하게 아이를 가진 모든 국민에게 출산 전후 휴가 급여와 육아휴직 급여를 보편적으로 보장하겠다고 공약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서울의 한 공공산후조리원 신생아실의 모습. 연합뉴스


#. 김태기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은 지난해 노동위 사건 가운데 가장 의미있는 판정으로 10월에 있었던 '육아휴직 성차별 시정명령'을 꼽았다. 해당 사업장은 뿌리산업 같은 전통업종이 아닌 신산업인 정보통신(IT) 관련 대기업에다 노조가 있는데도 고용상 성차별을 방치했다. 취업규칙에 여성이 육아휴직을 가면 승진에 불이익을 주도록 규정했고 징계와 같은 등급이었다. 중노위는 성차별로 보고 시정명령을 통해 취업규칙을 고치도록 했고 여성근로자에게 불이익 줬던 것을 원상회복시키게 했다. 회사측은 행정소송을 냈고 법원에서 다투는 중이다.


여성 경력단절의 중요한 원인이 육아문제다. 일·가정 양립을 통해 아이를 키우고 직장생활을 영위하도록 하는 것이 저출산 문제 해결에 중요한 열쇠다. 역대 정부는 저출산 문제해결을 위해 다양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대기업조차도 10곳 중 4곳은 육아휴직자에게 승진 불이익을 줬다.

19일 고용노동부 '2022년 기준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육아휴직 기간을 승진소요 기간에 산입하지 않는다'는 사업체는 45.6%에 달했다. 이 같은 사업체는 2017년 40.1%에서 2020년 37.9%까지 낮아졌다가 2022년 45.6%로 높아져 점점 악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육아휴직 '일부'를 승진소요 기간으로 산입한다는 사업체는 23.7%였다. 육아휴직하면 승진이 늦어진다는 사업체가 69.3%에 달하는 것이다. 육아휴직 기간 '전체'를 승진소요 기간에 넣는 사업체는 30.7%에 그쳤다.

이번 실태조사는 고용부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의뢰해 전국 상시근로자 5인 이상 사업체 5038곳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지난해 7월 31일부터 10월 6일까지 실시한 결과다.

육아휴직자에게 승진소요 기간 계산에 불이익을 주는 사업체를 규모별로 보면 5~9인 사업체가 48.2%, 10~29인 사업체가 45.4%로 가장 많았다. 300인 이상 대기업도 39.7%나 됐다.

업종별로 보면 육아휴직 기간을 승진소요 기간에 산입하지 않는 비율은 전문과학기술서비스업이 92.9%로 가장 높았다. 이어 교육서비스업 89.1%, 부동산업 59.5%, 금융보험업 53.1% 등의 순이었다.

◆벌칙 있으나 현장 작동 안해, 나빠졌다 =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 제19조에 따르면 만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 부모는 각각 최대 1년간 휴직이 가능하다. 또한 '육아휴직기간은 근속기간에 포함해야 하며 육아휴직을 이유로 해고 등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르면 대기업 10곳 가운데 4곳이나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인 셈이다.

고용부는 "승진, 승급, 퇴직금 산정 등을 할 때 육아휴직 기간도 근속기간에 포함되며, 육아휴직 기간을 근속기간에 산입하지 않아 승진 평가대상에서 배제하는 것은 법 조항을 위반한 것"이라며 "다만 육아휴직에 따른 불리한 처우인지 여부는 개별 사례에서 세부적인 승진평가 기준 및 결과 등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승진이나 성과급 책정 시 육아휴직 복귀자에 대해서는 35.8% 사업체가 '근로자가 휴직 전에 받은 평가'를 적용했다. '복귀 후 근무한 기간에 대한 평가 적용'은 45.2%, '전체 근로자들의 평균(중간) 평점 부여'는 15.1%였다.

육아휴직 뒤 복귀 근로자에 대한 직장 적응 프로그램 관련해 '특별한 조치나 프로그램이 없다'는 사업체가 54.4%였다. '복직일자 및 출근장소 등 고지'는 39.1%였고 '휴직기간 중 정기적으로 회사소식 등 전달'이나 '복직자를 위한 세미나 개최'는 각각 9.4%, 0.3%에 불과했다.

'육아휴직 기간 종료 뒤 복귀해 근무를 지속한다'는 응답이 84.9%였지만 '복귀하지 않고 그만둔다'는 8.1%였다. '복귀 뒤 6개월 미만 근무 후 그만둔다'는 1.5%, '6개월 근무 뒤 그만둔다'는 0.9%로 조사됐다.

규모별로 보면 5~9인 사업체에서 복귀하지 않고 그만두는 비율이 10.7%로 가장 높았고 사업체 규모가 커질수록 낮게 나타났다.

국내 전체 기업 종사자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중소기업이 대기업이나 공공기관보다 육아휴직제도가 사용에 훨씬 열악했다. '필요한 사람은 육아휴직제도를 모두 사용 가능하다'는 사업체는 300인 이상이 경우 95.1%에 달했지만 5~9인 사업체에서는 47.9%로 대기업의 절반 수준이었다.

반면 '필요한 사람도 전혀 사용 불가능하다'는 응답 비율은 5~9인 사업체에서 23.0%에 달했고 300인 이상 사업체는 1.9%로 사업체 규모가 클수록 낮았다. 이들 사업체를 대상으로 그 이유를 물었다. '동료 및 관리자의 업무 가중'이 42.6%로 가장 높았다. 이어 '사용할 수 없는 직장 분위기나 문화 때문'(24.2%), '대체인력을 구하기 어려워서'(20.4%), '추가인력 고용으로 인한 인건비 부담'(12.8%)이 뒤를 이었다.

육아휴직제도 실시에 따른 경영상 어려움(1+2순위)에 대해서는 '인건비 등 노동비용 증가에 따른 부담'(41.1%), '대체인력을 찾는 어려움'(38.2%), '동료 및 관리자의 업무 가중'(30.2%)을 꼽았다. '어려움이 없다'는 21.9%였다.


◆출산에 따른 경력단절도 점점 악화 = 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도 여전했다. 2022년 '임신·출산 시기 여성 근로자 고용상황'에 따르면 '출산 전에 퇴직한다'고 응답이 20.7%나 됐다. '출산 직후, 출산휴가 중 또는 출산휴가 종료 후 퇴직'은 5.2%였다. 출산과정에서 퇴직한 비율이 25.9%나 됐다. 이것도 2017년 6.8%에서 2021년 21.7%, 2022년 25.9%로 점점 나빠지고 있다.

'출산휴가 종료 후 복직'은 29.4%, '출산휴가 직후 육아휴직 사용'은 22.0%였다. '출산 전에 퇴직'은 5~9인 사업체(21.9%)가 가장 많았고 '출산휴가 직후 육아휴직 사용'은 300인 이상 사업체(45.3%)로 높았다.

근로자가 인공수정 등 난임치료를 받기 위해 연간 3일까지 휴가를 쓸 수 있지만 '모른다'는 사업체가 42.0%나 됐다. 사업체 규모가 커질수록 인지도가 높았다. '잘 알고 있다'는 응답이 5~9인 사업체는 19.6%인 반면 300인 이상 사업체는 71.9%였다.

일·가정 양립을 위해 필요한 정책(1순위)으로 '시차출퇴근, 재택, 시간제 근무 등 유연근로제 확산'(20.9%), '남녀고용 차별 개선 및 직장 내 성희롱 예방'(19.6%), '장시간 근로 관행 개선'(17.6%), '남성과 여성의 자유로운 육아휴직 사용'(13.7%), '사회인식 및 기업문화개선 캠페인'(10.2%), '모성보호 확대'(7.2%), '중소기업, 비정규직 등 일·가정 양립 사각지대 지원 및 점검'(6.4%), '직장어린이집 등 보육 서비스 확충(4.3%) 등의 순이었다.

보고서는 "정부의 대체인력 지원, 육아휴직 지원금,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지원금, 대체인력 지원금 등 육아휴직 관련 사업주 지원 제도의 인지도를 제고해야 한다"면서 "육아 등 돌봄지원제도 사용으로 업무가 늘어난 동료 근로자 등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해 직원들의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고용부는 육아휴직을 이유로 한 불리한 처우 등에 대해 지도·점검을 강화할 계획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현장 예방·점검의 날'을 통해 임금체불 등 기초노동질서 위반 및 모성보호제도(육아휴직,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등) 활용을 이유로 한 불리한 처우 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컨설팅 캠페인 등을 추진할 것"이라며 "보건의료, 사회복지시설업 등 여성 다수고용 사업장을 중심으로 근로감독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해 4월부터 전국 지방고용노동관서에서 운영 중인 '온·오프라인 모성보호 신고센터'를 통해 법 위반사례가 접수되면 근로감독관이 신속하게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겠다"며 "모성보호제도 지원과 근로감독을 통해 일하는 부모가 일·육아를 병행할 수 있도록 기업의 변화를 유도하겠다"고 강조했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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