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사채 더 강력히 규제 … '편법 지분확대·부당이득' 방지

2024-01-23 11:58:01 게재

전환가액 70% 미만 조정 '주총 동의' 거쳐야

콜옵션 행사자 지정과 재매각에 대한 공시 강화

최대주주에 헐값 양도, 불공정거래 악용 차단

전환사채(CB)와 관련한 제도 개선이 여러 차례 이뤄졌고 각종 규제들이 시행됐지만 불공정거래에 악용되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나타나면서 정부가 더 강력한 규제 조치를 발표했다. CB는 회사가 발행하는 사채로 사채 보유자의 의사에 따라 회사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돼 있다. 이 같은 특수성으로 인해 기업의 최대주주나 특수관계인들이 지분을 확대하고 부당이득을 얻는 수단으로 악용돼왔다. 그 과정에서 주식시장의 불공정거래가 발생하는 등 특정 그룹의 부당이득은 일반투자자들의 피해로 이어졌다.

금융위원회는 23일 오전 한국거래소에서 간담회를 열고 '전환사채 시장 건전성 제고방안'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CB 발행 및 유통공시 강화 △전환가액 조정(리픽싱) 합리화 △전환사채 시장 불공정거래 집중 점검 등이다.



◆CB발행 통한 최대주주 사익추구, 공시 강화로 제동 = 현행 규정에도 CB발행시 콜옵션 행사자를 공시하는 의무가 부과돼 있다. 하지만 대부분 '회사 또는 회사가 지정하는 자'로만 공시하고 있어 투자자들이 콜옵션 행사자에 대한 정보파악이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콜옵션(매수선택권)은 미리 정한 가액으로 신주 등을 인수하거나 주식 등을 매수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회사는 콜옵션을 통해 CB를 조기에 회수할 수 있다.

회사가 지정한 제3자가 전환사채 일부를 살 수 있는데 그 과정이 불투명하다보니, 최대주주의 편법 인수 등이 숨겨져 있다. 일부 기업은 콜옵션을 최대주주에게 무상 또는 헐값으로 양도하는 경우도 있다.

금융위는 콜옵션 행사자 지정시 구체적인 행사자, 대가수수 여부(발행기업이 제3자에게 콜옵션 지정시) 및 지급금액 등을 공시하도록 '증권의 발행 및 공시 등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기로 했다.

또 발행회사의 만기 전 CB 취득에 대한 공시도 강화하기로 했다. 금융위는 "현재 만기 전 취득한 CB는 향후 최대주주 등에 재매각, 주식으로 전환되는 등의 방법으로 불공정거래에 악용될 우려가 있다"며 "만기 전 취득 후 재매각은 사실상 신규발행과 유사함에도 신규발행에 비해 시장에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발행회사의 만기 전 CB 취득시 공시의무를 부과하고 투자자들이 해당 CB에 대한 정보를 알수 있도록 만기 전 취득 사유, 향후 처리방법(소각 또는 재매각 등)을 공시하도록 했다.

◆특정인 위한 임의적 전환가액 하향조정, 일반투자자 피해 = CB 콜옵션 행사자 지정과 함께 '편법 지분 확대, 부당이득'에 악용되는 제도는 '전환가액 조정'(리픽싱)이다. 리픽싱은 주가 변동시 전환가액(전환사채 등을 주식으로 전환할 경우 그 전환비율)을 조정하는 행위를 말한다.

당초 주식으로 전환하는 가격을 1주당 1만원으로 정했지만 주가 하락으로 인해 1주당 7000원으로 조정할 경우 CB를 보유한 투자자는 더 많은 주식 확보로 지분을 늘릴 수 있다. 콜옵션과 결합하면 최대주주는 적은 금액으로 지분을 확대할 수 있으며, 주가를 떨어뜨리기 위해 허위 정보를 공시하는 등 불공정거래를 벌일 유인이 커지게 된다. 반면 일반투자자들은 발행 주식 규모가 커지기 때문에 지분가치 희석으로 주식가치가 하락하고 불공정거래까지 발생할 경우 피해가 확대될 수 있다.

금융위는 과도하고 무분별한 리픽싱을 막기 위해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거친 경우에만 리픽싱 최저한도(70%) 미만으로 전환가액을 하향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는 주총 특별결의 또는 정관으로 구체적인 사유와 금액을 정한 경우 예외적으로 70% 미만으로 하향 조정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일부 기업들은 예외 허용취지(경영정상화 등 불가피한 사유)와 달리 정관을 근거로 최저한도 제한을 회피하고 있다.

김소영 부위원장은 "일부 기업이 특정인에 대한 이익 제공 목적으로 임의적으로 전환가액을 조정해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문제를 적극 개선하겠다"며 "전환가액이 시가를 적절히 반영하도록 산정기준 및 조정방법을 구체화하는 한편, 증자와 배당 등 자본변동시에는 해당 주식의 실제가치 변동을 정확히 반영해 전환가액이 조정되도록 관련 규정을 명확히 하겠다"고 밝혔다.

◆CB시장 불공정거래 집중 점검 = 김 부위원장은 "전환사채가 더 이상 대주주의 편법적인 사익추구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근본적으로 대응해 나갈 계획"이라며 "전환사채와 연계된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에 입각해 일벌백계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1월부터 사모CB 관련 불공정거래 혐의에 대한 집중조사에 착수, 40건을 조사했다. 이중 조사를 마친 14건 중 10건의 부정거래 혐의를 확인해 33명을 검찰에 통보했다.

조사대상 40건 중 25건(62.5%)에서 주가조작 전력자와 기업사냥꾼이 연루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으며, 코로나19 관련 테마사업을 표방한 허위 신규사업 진출 및 성공적 투자유치를 위장한 경우는 80%에 달했다. 조사대상 사건 40건의 관련 기업수는 39개인데 이중 29개사(74.4%)가 상장폐지, 관리종목 지정, 경영악화 등으로 투자자 피해를 발생시켰다. 검찰에 통보된 혐의자들이 얻은 부당이득 규모는 약 840억원이다.

금융당국은 "조사 진행 중인 사건들을 신속 처리하는 한편, 사모CB가 관련된 불공정거래 혐의를 지속적으로 발굴·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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