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걷는 것보다 쓰는 게 더 중요하다

2024-01-25 11:11:34 게재
670억원. 지난해 전국 243개 지자체가 모금한 고향사랑기부금 총액이다. 어떤 이는 시행 첫해 치고는 성공적이라고 하고, 또 어떤 이는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한다. 둘 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는 모금액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국민들이 어렵게 결심해 기부한 돈을 어떻게 쓰느냐다.

모든 지자체들은 법이 정한 대로 상반기 중에는 기부금운용위원회를 구성해 모금한 돈을 어떻게 쓸지 정한다. 하지만 대부분 지자체들이 처음부터 별 고민없이 모금을 시작한 터라 어디에 쓸지 정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평균 모금액이 2억~3억원 수준이니 막상 어딘가 쓰려 해도 의미있는 사용처를 찾지 못하는 눈치다.

실제 기금사업을 확정한 지자체는 많지 않다. 모금 때부터 기금 사용 목적과 목표액을 제시한 곳은 민간플랫폼을 통해 지정기부를 받은 광주 동구와 전남 영암군 두곳 정도다.

광주 동구는 '발달장애 청소년 야구단 지원'과 '개관 100년 광주극장 보존' 두가지 목적을 내세워 기부를 받았다. 모금액도 자치구들 중에서는 가장 많은 9억2000만원이나 된다. 동구는 다음달 초에는 구체적인 기금운용계획을 공개할 예정이다. 야구단 활동비와 장비 교체비용에 얼마, 광주극장 시설개선사업에 얼마 등 세부적인 기부금 운용계획을 속속들이 공개한다.

영암군도 전체 모금액 13억원 중 '공공산후조리원 지원' 목적으로 받은 2억3300만원은 적립하기로 했다. 사용 목적은 2025년 시작해 2027년 개관 예정인 공공산후조리원용 의료기기 구입이다. 올해까지 모금을 이어가면 필요한 예산을 모두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들 두 지자체의 기금사용 계획을 자세히 설명하는 이유는 기부자가 기부할 때 '내가 기부한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알 수 있었던 지자체'였기 때문이다. 기부자 편에 서서 보면 가장 효능감 높은 기부를 한 셈이다.

물론 기금 사용목적을 정한 지자체들도 없지 않다. 100원 빨래방 운영(전남 나주시), 청년노동자 공유주택 조성사업(울산 동구), 도시텃밭 운영(충북 진천군) 등 일부 지자체들은 기금사용 목적을 공개하고 기부를 받았다. 하지만 상세한 사업계획이나 기부금 사용계획은 세우지 못하고 있다.

10만원을 기부한 사람들의 경우 2월이면 연말정산을 통해 전액을 돌려받는다. 이미 3만원 상당의 답례품도 받은 터다. 여기에 기부금이 기대했던 사업에 사용됐다는 효능감까지 더해진다면 고향사랑기부금 제도의 3박자가 완벽히 맞아떨어지게 된다. 지정기부 제도가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지자체들이 민간플랫폼을 허용해 달라고 요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
김신일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