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하루 숨쉬기도 어려워" … 소액대출에 몰리는 서민들

2024-01-25 11:24:44 게재

무이자대출 '더불어 사는 사람들'에 신청 급증

"작년 11월말부터 취약계층 상황 급격히 악화"

일정한 소득 없으면 금융지원 받기도 쉽지 않아

정부, 금융·고용 연계하는 '복합지원 방안' 발표

"정말 하루 하루 숨쉬기도 어려울 만큼 힘듭니다. 불법사채 이용으로 이자율 300% 넘게 줬는데 줄어들지 않습니다. 정말 죽어야 끝나는가라고 생각하며 희망없이 죽도록 번 돈을 다 상환하고 있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글을 남겨 봅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사진 오른쪽)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4일 오후 경기도 하남시 하남 고용복지센터에 방문해 서민·취약계층의 금융-고용지원 강화를 위해 두 부처 간 지속적인 상호 협력을 주 내용으로 하는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사진 금융위원회 제공


A씨는 지난 22일 취약·빈곤계층을 대상으로 무이자 소액대출을 해주는 '더불어 사는 사람들' 홈페이지에 대출 요청 글을 올렸다. B씨도 23일 "당장 돈이 필요한데 저 같은 신용불량자에겐 대출을 해주는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기댄 곳이 불법사채였고, 하루 하루 이자를 갚는 게 몸이 부칩니다. 제발 도와주세요."라고 하소연했다. A씨와 B씨 이외에도 '벼랑 끝에 서 있습니다', '한번만 도와주세요', '정말, 아무나 도와주나요',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 '42만원 대출 가능할까요' 등 요청이 끊이지 않고 있다.

'더불어 사는 사람들' 홈페이지에는 지난해 11월 이후 매일 200명 가량이 방문하고 있다. 그 전까지 100명 조금 넘게 방문했던 인원이 2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이들은 홈페이지에 문의를 남기거나 전화·이메일 등을 통해 대출을 신청하고 있다.

◆작년 대출 건수 23%, 대출액 35% 증가 = 이창호 '더불어 사는 사람들' 대표는 "대출문의 글이 하루에 통상 3건 정도 올라왔는데 최근 10건으로 늘었다"며 "작년 11월말부터 취약계층의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사는 사람들'은 무이자·무담보·무보증으로 취약·빈곤·금융소외계층을 대상, 최대 100만원까지 1년간 신용대출을 해주고 있다. 지난 2012년 대출을 시작할 당시 1년간 36건(3000만원)이었던 대출은 지난해 1217건(6억6300만원)으로 급증했다. 지난해는 전년(988건, 4억9000만원) 대비 대출 건수와 대출액이 각각 23.1%, 35.3% 증가했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코로나19 시기 매년 800~900건이었던 대출이 지난해 급격히 늘어난 것이다.

정부가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지난해 3월 하순부터 실시한 소액생계비 대출도 지난해 10월부터 대출 건수가 다시 급증했다. 대출 출시 초반인 지난해 4월과 5월에 각각 2만38건, 20만50건을 기록했다가 차츰 감소해서 9월 대출건수는 1만1425명에 그쳤다. 하지만 10월과 11월 각각 2만84건, 2만1678건으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12월에는 1만8296건을 기록했다. 지난 한해 동안 16만5325건의 대출이 이뤄졌고 규모는 958억원이다.

소액생계비대출은 상환의지가 확인된 경우 연체자와 무소득자를 포함해 '신용평점 하위 20% 이하이면서 연소득 3500만원 이하' 요건을 충족하면 누구라도 지원 대상이 된다. 다만 국세 및 지방세 체납정보, 대출·보험사기 등 금융질서문란정보가 등록된 사람은 대출이 거절될 수 있다.

소액생계비대출 신청에서 거절됐거나 대출이 더 필요한 취약계층들이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대출 신청자 중 60% 가량은 소액생계비대출을 이미 받았고 20%는 대출 거절, 20%는 소액생계비대출을 알지 못해 받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하지만 '더불어 사는 사람들'도 무조건 대출을 해주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후원을 받아 대출을 해주고 있기 때문에 한정된 자원에서 상환율이 낮아지면 신규 여력이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일자리가 없어서 소득이 불분명하거나, 핸드폰이 끊겨서 연락이 안되는 분들은 솔직히 대출이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쌓은 나름대로의 노하우로 대출을 해주고 있어서 상환율이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2~3번 이상 대출을 받고 갚아본 적이 있는 경우 상환율이 90%를 넘지만, 처음 대출을 받아간 경우 20% 가량은 연락이 안된다.

◆비정규직·무소득자에 고용지원제도 안내 = 이 대표는 "보다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데 정부와 여야 정치권이 민생을 너무 외면하는 거 같다"며 "기초생활수급자 중에서도 신용등급은 800점인 분들이 있는데 지원대상을 무조건 700점 이하로만 하면 사각지대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현장을 모르는 탁상행정"이라고 지적했다.

25일 금융당국은 정책서민금융과 고용지원제도를 연계하는 내용의 '금융·고용 복합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현재 서민금융진흥원의 소액생계비대출을 이용하는 경우, 고용지원제도와 연계가 이뤄지고 있지만 신용회복위원회의 경우 채무조정 이용자에 대한 별도의 고용지원제도 연계를 하지 않고 있다. 앞으로는 정책서민금융·채무조정 이용자 중 소득이 불안정한 비정규소득자나 무소득자인 취약계층에게 고용지원제도를 반드시 안내하기로 했다.

이날 김주현 금융위원장과 이정식 고용노동부장관은 지속적인 상호 협력을 내용으로 하는 업무협약을 체결했고, 이재연 서민금융진흥원장 겸 신용회복위원장과 김영중 한국고용정보원장은 서민금융진흥원·신용회복위원회·한국고용정보원 간 금융·고용 양방향 연계시스템 마련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김 위원장은 "작년 3월 소액생계비대출을 출시하며 자금지원뿐 아니라 취업지원, 복지연계, 채무조정 등 복합상담도 함께 지원해보며, 서민·취약계층 지원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을 확인했다"며 "경제적 자활 지원은 금융위원회 단독으로는 할 수 없고 고용노동부를 비롯한 범정부 차원의 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책서민금융 이용 중에 연체가 발생하거나 채무조정 상환이 곤란하신 분들에게는 적합한 고용지원제도를 다시 연계·안내해 지속적으로 재기를 지원해드릴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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