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양승태 전 대법원장 1심 판결 결과와 전망

'양승태 무죄' 실무 책임자 임종헌 유죄?

2024-01-29 11:03:25 게재

사실관계 인정 불구, 직권남용 공모 인증 안돼

혐의 인정 임 전 차장, 2월 5일 1심 선고 관심

박근혜정부 시절 사법부의 이익을 위해 행정부와 각종 재판을 거래했다는 의혹인 '사법농단' 사건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심에서 모두 무죄로 결론나면서 다음 달 5일 예정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1심 선고가 주목받고 있다.

사법농단에 연루된 전·현직 판사들에 대한 재판은 대다수 무죄 확정 판결됐거나 일부는 대법원에서 심리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점으로 꼽히는 양 전 대법원장과 수뇌부마저 1심에서 무죄 판단을 받아 실무 책임자격인 임 전 차장에 대한 1심 판단에 이목이 쏠리는 것이다.

1심서 무죄 받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른바 '사법농단' 재판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류영석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검찰과 사법농단 관련 47개 혐의로 다툰 1심 재판에서 완승했다. 1심 법원이 사실관계는 인정한 대신 일부 위법은 양 전 대법원장 등이 아니라 임 전 차장이 주도한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사건의 몸통이 '임 전 차장'으로 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일부 실무자들의 일탈'로 결론날 수도 있게 됐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5-1부(이종민 부장판사)는 지난 26일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해 "범죄의 증명이 안 된다"며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양승태, 재판개입 권한없어 '무죄' = 1심 재판부는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재상고심 관련의 법원행정처 작성 문건이 대법원 재판부로 넘어간 사실은 인정했다. 양 전 대법원장이 주심 대법관에게 청구기각 의견을 전달한 사실도 인정했다. 하지만 양 전 대법원장의 재판개입 혐의는 증명되지 않았다고 봤다. 재판부는 "대법원장은 재판에 개입할 직권이 없고, 설령 직권을 행사했다고 보더라도 이를 남용했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직권남용죄가 성립하려면 '직권'이 있어야 하는데 대법원장에게 재판에 개입할 권한이 애초에 없기 때문에 직권남용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취지다.

'상고법원 관련 BH(청와대) 대응전략' 문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재판부는 "상고법원 도입 과정에서 청와대의 입법 협조를 얻기 위한 새로운 전략 마련과 구체적 설득 방안을 검토한 것"이라며 "재판 개입을 검토한 것은 아니므로 직권남용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임종헌은 일부 인정 = 하지만 재판부는 이들의 전 단계인 임 전 차장의 '재판개입' 관련 일부 혐의는 유죄로 인정할 수 있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앞선 서울남부지법의 위헌법률심판 제청 결정과 관련해 심의관에게 보고서 작성을 지시한 행위는 임 전 차장의 직권남용죄가 성립한다고 봤다.

2015년 9월 전주지법의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지방의회의원 행정소송과 관련해 사법총괄심의관에게 재판부 심증을 확인하도록 하고, 재판장에게 '법원행정처가 수립한 판단방법'이라는 법리를 전달하게 한 행위도 직권남용죄 구성 요소에 모두 부합한다고 봤다.

2015년 11월 서울행정법원이 헌법재판소가 한 통진당 소속 의원직 상실 결정에 대해 법원이 다시 심리·판단할 수 없다는 이유로 소 각하 판결을 한 것에 대한 비판 보고서 작성을 사법정책실 심의관에게 지시한 것도 직권남용죄의 4가지 구성요소를 충족했다고 봤다.

그러나 양 전 대법원장이나 박 전 대법관과의 공모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판단도 유사했다. 사실관계는 인정하면서도 양 전 대법원장 등이 직권을 남용하지는 않았다거나 공모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가 주를 이뤘다.

'사법부 블랙스트' 의혹에서도 임 전 차장의 국제인권법연구회 및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 탄압 관련 직권남용 혐의는 일부 성립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2016년 3월∼2017년 2월 임 전 차장이 심의관에게 지시해 인사모 와해를 위한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하거나 '중복 가입 해소 조치'를 시행해 국제인권법연구회를 탈퇴하도록 유도한 것에 대해 직권을 남용해 법관의 표현·연구의 자유를 침해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양 전 대법원장이나 고 전 대법관과의 공모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봤다.

◆사법농단 몸통은 임종헌? = 양 전 대법원장 재판부는 대법원장·대법관의 행위는 전부 무죄로 보면서 당시 임 전 차장과 관련된 일부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그렇다보니 내달 5일 선고 예정된 임 전 차장 재판부도 같은 판단을 해 임 전 차장에게 유죄를 선고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더라도 사법농단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판사 가운데 유죄 선고는 임 전 차장과 이민걸·이규진 전 부장판사 등 3명에 그치게 되는 셈이다.

1심 판단만으로 최종 결론을 예단하기엔 이르지만, 2017년 2월 첫 의혹 제기 후 7년 동안 나라를 뒤흔들었던 사법농단의 실체가 임 전 차장 등 '고위 실무자들의 일탈'이라는 다소 허탈한 결과에 이르게 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그렇다보니 이번 판결을 두고 법원 안팎의 의견은 제각각이다. 검찰의 무리한 기소 또는 법원의 제식구 감싸기라는 상반된 평가가 나온다. 결국 각각의 하급심 판결이 대법원에 모인 뒤 대법원의 최종판단을 받아야 정리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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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호 기자 o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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