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드러난 증권사PF 내부통제 부실 … CEO 책임 묻나

2024-01-31 11:15:18 게재

거액 성과급 위법하게 지급 … 부동산PF 위험 확대 초래

사익추구에 이어 단기 실적주의 … 메리츠증권 압수수색

증권사들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관련 내부통제 부실이 또 드러났다. 상당수 증권사들이 성과보수 지급기준을 위반해서 임직원들에게 거액의 부동산PF 성과급을 지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단기 실적주의가 사실상 PF위험 확대를 초래했으며 증권업계의 부동산PF 연체율은 13.85%로 금융업권 중에서 가장 높다. 이달 초 PF 담당 임직원들이 직무 정보를 이용해 수백억원을 챙긴 사익추구행위가 적발된 데 이어 성과급 지급 과정의 위규 행위가 드러남에 따라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경영진에게 내부통제의 책임을 묻게 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상당수 증권사들이 부동산PF 관련 성과보수를 지급하는 과정에서 지배구조법규를 위반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30일 밝혔다. 금감원은 지난해 상반기 지배구조법 적용을 받는 22개 증권사에 대한 부동산PF 성과보수 지급실태를 점검했고, 성과보수체계가 미흡한 17개 증권사를 대상으로 검사를 실시했다.

검사결과 증권사들은 이연해서 지급해야 하는 성과보수를 일시에 지급하거나, 지배구조법상 명시된 최소 이연기간(3년) 및 이연비율(40%)을 준수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성과급을 일시에 받아간 이후 PF사업장이 부실화되더라도 성과급을 환수하는 규정 등이 없어 무리한 PF대출 확대의 단초가 된 셈이다.

◆지급 기준조차 지배구조법 위반 = A증권사의 경우 보수위원회에서 정한 성과보수 지급기준 자체가 지배구조법을 위반했다. 임직원별 성과보수가 1억~2억5000만원인 경우 당해 연도에 1억원을 지급하고 잔액은 1~3년간 이연지급(연도별 5000만원, 나머지 금액은 마지막 연도 지급)하는 기준이 있지만 이는 당해 연도 지급 등으로 인해 법상 최소 이연기간과 이연비율 기준을 위반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A사는 잘못된 지급기준에 따라 95억원의 성과보수를 지급했다.

B사는 지급액이 크지 않다는 이유로 상당수 직원(이연지급 대상 직원의 18%)에게 성과보수 13억원 전액을 일시에 지급했다. C사는 계약직 부동산PF 담당직원(이연지급대상 직원의 43%)에 대해 성과보수 20억원을 전액 일시에 지급했다. D사는 PF담당 임원을 임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자의적으로 판단해 성과보수 3억원을 일시에 지급했다.

E사는 성과보수를 PF 담당 각 본부 단위로만 구분해 이연지급함으로써 개별 임직원별로 이연지급되는 성과보수가 구분되지 않는 등 관리상의 문제점이 확인됐다.

금감원은 "대부분 증권사는 PF담당직원의 성과보수 총액이 1억원 미만일 경우 이연지급 대상에서 제외했다"며 "그 결과 최근 5년간 업무수행 직원의 57%가 성과보수 이연지급 대상에서 제외되는 결과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또 대부분 증권사는 리스크 특성과 무관하게 지배구조법상 최소 이연기간·비율을 획일적으로 적용했다. 부동산PF 사업기간이 5년이면 이연기간을 5년으로 해야 하지만 최소 이연기간인 3년으로만 정한 것이다. 11개 증권사는 이연지급 대상 전원에 대해 3년간 이연지급했고, 6개사는 임원에 한해서만 3년을 초과하는 기간 동안 이연지급했다.

금감원은 "검사 결과 확인된 위규사항에 대해 엄중하게 책임을 물을 방침"이라며 "증권사의 단기 업적주의에 따른 과도한 리스크 추구를 차단하고 장기 성과에 기반한 성과보수체계가 확립되도록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또 성과보수의 이연·환수·공시 등이 실효성 있게 작동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추진하기로 했다.

◆PF 정보 이용한 사익추구, 메리츠증권 압수수색 = 검찰은 30일 직무와 관련된 PF 정보를 이용해 100억원 가량의 매매차익 얻은 것으로 알려진 메리츠증권 임직원들에 대한 압수수색에 들어갔다. 금감원이 직무 정보를 이용해 수백억원을 챙긴 혐의로 5개 증권사의 PF 담당 일부 임직원들을 검찰에 통보한 후 본격 수사가 시작된 것이다.

메리츠증권 임원이었던 박 모씨는 직무 관련 정보를 이용해 부동산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직원들에게 대출 알선을 청탁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14년부터 2015년 초까지 직원 2명을 통해 다른 금융기관의 대출을 알선 받고 이에 따른 대가를 건넨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증재)다. 박씨는 업무상 알게 된 PF 정보로 900억원 상당의 부동산 11건을 가족법인을 통해 취득·임대한 것으로 조사됐다. 부동산 취득 자금은 직원 2명이 다른 금융기관 대출을 알선해주면서 해결됐다. 박씨는 가족법인을 통해 직원 가족들에게 급여 등의 명목으로 10억원 상당을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메리츠증권 본점, 박씨와 직원 2명의 거주지 등 6곳에 검사와 수사관을 보내 압수수색을 벌였다.

금감원은 증권사 임직원들의 사익추구와 위법한 성과급 지급 행태 등의 내부통제 부실책임을 최고경영자(CEO)로 확대하는 것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입장이다. 다만 부동산PF리스크 관리에 실패할 경우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 마련의무를 준수했는지 들여다볼 예정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 24일 증권업계 간담회에서 "부동산PF 쏠림, 과도한 단기자금 의존 등과 같이 리스크관리의 기본이 망각되는 일이 없도록 CEO가 직접 챙겨주기 바란다"며 "일부 회사의 리스크관리 실패로 인해 금융시장에 충격요인으로 작용할 경우에는 해당 증권사와 경영진에 대해 엄중하고 합당한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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