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허위채용 등 부정’ 회계법인 다수 적발 … 업계는 반발

2024-02-07 00:00:00 게재

감사인 감리대상 12개 법인 전수 점검

감사인등록제도 시행 후 첫 고강도 감리

등록회계법인들 “지나친 자료요구” 대응 준비

금융당국이 회계법인들을 상대로 감사인 감리를 실시한 결과 가족 허위채용 등 부당거래가 다수의 회계법인에서 드러났다. A회계법인 소속 회계사들이 배우자를 직원으로 채용해 가공의 급여를 지급한 사실이 적발된 이후 지난해 감사인 감리 대상 회계법인들을 전수 점검한 결과 유사 사례가 대거 확인된 것이다.

회계법인들은 금융당국이 감리 과정에서 회계감사와 무관한 자료까지 요구하는 등 지나치게 경영권에 개입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7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11월 A회계법인에 대한 인사·자금관리·보상체계 등에 대한 감사인 감리 결과 소속 회계사의 배우자 허위채용, 특수관계자(부모, 자녀)에 대해 업무수행이나 용역을 제공받지 않고 수수료·용역비를 지급한 사례를 적발했다.

이후 금감원은 A회계법인을 포함해 지난해 감사인 감리 대상인 회계법인 12곳에 대한 전수 점검에 나섰으며 기존에 적발된 사례와 비슷한 부당거래뿐만 아니라 새로운 유형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A회계법인을 비롯해 이번에 추가로 부당거래가 드러난 다른 회계법인들은 3~4월 중으로 제재 절차가 진행될 예정이다. 이와 별개로 형법상 문제가 있는 사안들은 수사기관 등 관련기관에 통보조치가 이뤄진다.

이번 감사인 감리에서 회계법인들의 이 같은 부당행위가 드러난 것은 금감원이 감사인등록제도 시행 이후 처음으로 등록회계법인들을 상대로 ‘통합관리체계 및 보상체계의 적절성’ 등에 대한 고강도 조사를 벌였기 때문이다.

감사인등록제도는 일정 요건을 갖춰서 금융위원회에 등록한 회계법인(현재 41개)에 한해서 상장회사의 감사업무를 수행하도록 한 조치다. 상장회사에 대해서는 통합 품질관리체계 등 등록요건을 충족한 회계법인들에게 외부감사를 맡겨서 보다 높은 수준의 감사품질이 보장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해 11월 국내 9개 회계법인 CEO와 가진 간담회에서 “회계법인 및 소속 공인회계사의 부정행위는 회계업계에 대한 신뢰를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으므로, 회계법인 소속 구성원의 윤리의식 고취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달라”고 당부했다. 사진 금융감독원 제공

◆금감원은 왜 회계법인 채용까지 점검했나 = 감사인등록제는 2019년 11월 이후 시작되는 사업연도부터 시행됐고 금감원은 등록요건 유지의무에 대한 세부조치 기준을 2022년 하반기에 마련했다. 금감원은 지난해 세부조치 기준을 적용해 감리를 벌였다.

등록 유지 요건 중에서 핵심은 ‘통합관리체계’와 ‘보상체계’다. 소위 ‘빅4’로 불리는 대형 회계법인(삼일 삼정 안진 한영)을 제외한 대다수 중견·중소회계법인은 통합관리체계인 원펌 형태로 운영되기 보다는 회계사 개인이나 팀의 연합체 형식인 사실상 독립채산제 방식으로 운영된다. 회계사 개인이 사건을 수임해 일정 금액을 법인에 내고 젊은 회계사들에게 일감을 주는 일종의 ‘독립사업자들의 연합체’다. 이런 조직 형태는 원펌 형태에 비해 회계법인이 품질관리에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이 부족해 균일한 감사품질 유지가 어렵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은 등록회계법인들에 대해 원펌 형태의 조직운영을 요구하고 있다. 외부감사 규정에는 등록회계법인들이 ‘품질관리의 효과성·일관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회계법인 내 인사, 수입·지출의 자금관리, 회계처리, 내부통제, 감사업무수 및 품질관리 등 경영 전반의 통합관리를 위한 체계를 갖출 것’을 명시하고 있다. 또 보상체계와 관련해서는 ‘감사업무를 수행하는 이사의 성과평가에서 감사업무의 품질을 평가하는 지표가 차지하는 비중을 100분의 70 이상으로 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평가의 초점을 영업실적이 아닌 감사업무에 두도록 한 것이다.

금감원이 등록회계법인들의 일반직원 채용과 급여까지 들여다본 것은 통합관리체계를 실제로 운영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금감원 관계자는 “원펌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여부와 부정채용 등을 확인하려면 일반직원 근태, 급여지급 현황, 용역계약 현황 등을 보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과도한 경영권 개입, 컨설팅 업무까지 볼 권한 있나” = 등록회계법인들은 감사품질 향상을 위한 품질관리실 강화에 동의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금융당국과 같은 입장이다. 다만 금감원이 감사인등록 유지 요건 확인을 빌미로 과도하게 회계법인의 내부자료를 요구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등록회계법인 관계자는 “금감원이 감리 과정에서 회계법인의 모든 자료를 요구하고 있어서 수사기관의 압수수색보다 더 하다”며 “검찰 수사도 범죄혐의가 있는 특정 부분에 한해서 자료를 요구하지, 전체 자료를 볼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회계감리와 관련된 부분이라면 이해가 되지만 금융당국의 감독권이 없는 컨설팅 업무까지 볼 권한이 어디에 있느냐”며 “과도한 경영권 개입”이라고 강하게 불만을 토로했다.

등록회계법인 협의체는 지난달 회동을 갖고 법적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법무법인에 금감원의 권한과 관련한 법적 검토를 진행할 예정이다. 금융당국의 제재 조치에 반발해 지난해 소송을 제기한 B회계법인 사건 재판에 법률검토 의견서를 제출, 법적 판단을 받아보기로 했다.

금감원도 법률적인 검토를 진행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등록회계법인 요건, 금융당국의 감리’와 관련한 논란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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