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류세 조정 시기만 되면 오르는 국제유가 “하필이면…”

2024-02-13 13:00:02 게재

2월말 유류세 인하조치 만료, 추가연장 불가피

1월 식료품값 6%대 급등에 기름값마저 상승세

“휘발유 가격까지 오르면 4월 총선민심 악영향”

작년 하반기 내내 유가변동, 2개월씩 조치 연장

국내 주유소의 휘발유와 경유의 평균 판매가격이 연일 오르고 있다. 여기에 과일과 농수산물을 중심으로 먹거리 가격까지 크게 오르면서 안정세를 찾아가던 물가 전반을 위협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달말 종료 예정인 유류세 인하조치가 다시 연장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정치적 해석도 있다. 오는 4월10일 열리는 제 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어서다. 이미 리터당 1600원대로 오른 휘발유 가격은 유류세 인하조치를 중단하게 되면 1800원대에 육박하게 된다. ‘총선민심’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정부 입장에선 세수펑크 상황을 고려하면 웬만하면 유류세를 정상화해야 할 처지다. 하지만 묘하게도 안정세를 보이던 국제유가가 ‘유류세 조정시기’만 되면 급등을 반복하고 있다. 이 때문에 1년~6개월 단위로 유류세 인하조치를 연장하던 정부는 2개월 단위로 ‘초단기 연장조치’를 반복하고 있다.

◆휘발유값 1600원 넘었다 = 13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전날 전국 평균 보통휘발유 가격은 전날보다 리터당 0.72원 오른 1606.53원을 기록했다. 평균 휘발유 가격은 지난 1월 20일(1562.4원)을 기점으로 23일 연속으로 올랐다.

전국 평균 경유 가격도 이날 리터당 1509.58원으로 집계됐다. 전일 대비 0.61원 오른 수치다. 경유 역시 지난 1월 21일(1471.83원)에서 매일 가격이 조금씩 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각각 1600원선과 1500원선으로 오른 것은 각각 지난해 12월 13일과 지난해 12월 26일 이후 약 2개월여 만이다. 특히 서울 지역의 일부 주유소들은 휘발유 가격을 1700원 초반대까지 판매하고 있다.

최근 유류 소비자 가격 인상은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와 미국의 원유 생산 차질 등의 영향에 따른 것이다. 국제유가는 통상 2~3주 정도의 시차를 두고 국내 제품 가격에 반영된다.

문제는 당분간 기름값 상승추세 이어질 것이란 점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휴전 협상 지연에 지난 8일(현지시간) 기준 국제 유가는 4거래일 연속 급등했다. 예멘 반군 후티의 홍해 선박 공격으로 글로벌 원유 거래는 이미 차질을 빚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지난 9일 기준 두바이유 가격은 전날보다 배럴당 1.70달러 오른 81.02달러, 브렌트 가격은 전날 보다 배럴당 0.56달러 오른 82.19달러를 기록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0.62달러 오른 76.84달러를 기록했다.

◆유류세 인하 연장 무게 = 국제유가가 다시 오름세를 보이면서 정부의 유류세 인하 조치는 두 달 더 연장될 것으로 전망된다.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반등을 시작했고, 총선을 앞두고 물가를 자극해 부정적인 여론을 형성할 수 있어서다.

정부는 이달 중하순 중으로 추가 연장 여부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번에 연장 결정이 발표되면 8번째다. 정부는 2021년 11월 유류세 인하 조치를 시행한 이후 △2022년 4월 말 △6월 말 △12월 말 △지난해 4월 말 △8월 말 △10월 말 △12월 말 등으로 일곱 번째 연장 결정을 한 바 있다.

유류세 인하조치 연장에 무게가 실리는 또 다른 이유는 전체 물가상황이 심상찮기 때문이다. 국제유가 뿐만 아니라 최근 먹거리 가격 인상도 흐름이 좋지 않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 달 식료품 물가는 1년 전보다 6.0% 상승했다.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 폭(2.8%)의 2배를 웃돌았다. 식료품 물가 상승세는 둔화하고 있지만 속도가 느린 탓에 넉 달째 6%대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달(3.2%)보다 0.4%p 하락했지만 식료품 물가는 0.1%p 떨어지는 데 그쳤다.

식료품 물가는 사과·배 등 과일이 견인하고 있다. 지난 달 과일 물가는 26.9% 올라 2011년 1월(31.2%) 이후 상승 폭이 가장 컸다. 과일값 급등세는 지난해 이상 기온에 따른 공급량 부족에 따른 것으로 정부는 판단한다. 사과 등 일부 과일은 병충해 전파 우려로 수입도 쉽지 않기 때문에 여름 과일 출하 전까지 과일값은 강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과일 외 다른 먹거리 물가도 높은 편이다. 식료품 물가를 구성하는 우유·치즈·계란(4.9%), 채소·해조(8.1%), 과자·빙과류·당류(5.8%) 등도 지난달 전체 물가상승률을 웃돌았다.

여기에 국제 유가 불확실성까지 커지면서 물가를 압박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배럴당 77.3달러까지 떨어진 두바이유 가격은 최근 친이란 무장세력의 요르단 미군 기지 공격 등 중동 지역 불안이 커지면서 82.4달러까지 반등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6개월 만에 2%대로 떨어졌음에도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가 물가 공표 직후 일제히 물가 반등 가능성을 공식화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하필이면 이 시기에” = 묘하게도 지난해부터 안정세를 되찾은 국제유가는 유류세 조정시기 때마다 널뛰기를 하면서 정부 부담을 키우고 있다.

4개월 전인 지난해 10월에도 그랬다. 안정세를 보이던 국제유가는 지난해 9월부터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10월말 유류세 인하조치 만료를 딱 한 달 앞두고서다.

9월까지만 해도 정부는 유류세 인하조치 중단에 무게를 싣고 있었다. 당시 정부는 사상 유례없는 60조원대 세수 결손이 예고되고 있어 세원확보에 골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과 두 달 전까지 배럴당 70달러선이었던 두바이유 등 국제유가가 80달러를 훌쩍 넘어서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결국 정부는 ‘2개월 연장’ 카드를 써야했다.

2개월 뒤인 지난해 12월에도 같은 상황이 연출됐다. 정부가 유류세 인하를 연장한 직후인 11월까지 다시 하향안정세를 보이던 국제유가는 11월말부터 다시 꿈틀댔다. 결국 당시 추경호 부총리는 12월12일 세종정부청사에서 임기 마지막 기자간담회를 갖고 “유류세 인하 조치를 2개월 더 연장하겠다”고 밝혀야했다. 그는 “국제유가가 조금 안정되는 줄 알았더니 조정시기만 되면 다시 상승세로 확 돌아서는 모습이 연중 진행됐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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