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ELS 재가입자 배상기준 고심 … “소송가면 투자자 불리”

2024-02-19 13:00:02 게재

투자자 90% 가량 재가입자 … 당국 "다양한 방안 검토 중"

“과거 배상안, 투자경험은 감경사유” … 로펌, 사건 안맡기도

금융정의연대 등 단체 회원들이 지난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홍콩 ELS 대규모 손실사태 관련 금융당국에 대한 감사원 공익감사 청구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서대연 기자
홍콩 H지수를 기초로 한 주가연계증권(ELS)에 가입한 투자자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는 가운데 금융당국이 재가입자 배상기준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홍콩H지수 ELS 투자자의 90% 가량이 재가입자여서 이들에 대한 기준안이 어떻게 정해지느냐에 따라 배상에 대한 큰 흐름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19일 금융당국 관계자는 “과거 배상기준안을 토대로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투자경험이 많은 경우 배상비율을 정할 때 차감 요인으로 작용한 부분들도 있는데 이를 재가입자들에게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지, 어느 정도 비율로 적용할지 등은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2019년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투자손실에 대한 배상비율을 40~80%로 정하면서 금융투자상품 거래경험이 많은 경우와 거래금액이 큰 경우 등은 감경사유로 놓고 배상비율을 낮췄다. 반면 고령자 등 금융취약계층에게 설명을 소홀히 한 경우와 모니터링콜에서 ‘부적합 판매’로 판정됐음에도 재설명하지 않은 경우 등은 가중사유로 판단했다.

일각에서는 홍콩H지수 투자로 벌어들인 과거 이익을 손실에서 공제하는 방안이 재가입자들에게 적용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금융당국은 확정되지 않은 사안이라며 선을 그었다.

투자자들은 고위험 금융상품의 대규모 손실이 반복되는 사태를 방치한 금융당국에 대한 책임론과 함께 불완전판매로 인해 은행이 ELS 판매 원금을 전액 보상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DLF 당시 배상기준안은 적합성 원칙과 설명의무 위반에 대한 기본배상비율(30%)과 은행의 내부통제 부실책임 등(25%)을 고려하고, 여기에 투자자 개개인의 가중·감경 사유를 반영해 배상비율을 가감조정하는 방식이다. 투자경험 없고 난청인 고령(79세)의 치매환자의 경우 배상비율이 가장 높은 80%로 정해졌다.

DLF와 같은 수준으로 홍콩H지수 ELS에 대한 배상기준을 고려하더라도 은행의 내부통제 부실까지 인정돼야지만 배상비율이 55% 정도 되고, 여러 차례 재가입한 투자자는 위험성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해도 배상비율은 40%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금융당국이 투자자 입장을 최대한 고려해 배상기준안을 마련해도 투자자들이 이를 수용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마련할 자율배상안 역시 투자자들의 기대 수준을 충족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금융당국 배상안이나 금융회사의 자율배상안을 받아들이는 게 투자자들에게 더 유리할 수 있다”며 “소송으로 가면 배상비율이 더 낮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관측이 나오고 있다. 법원은 파생상품에 여러 차례 가입한 경험이 있는 투자자들에 대해 ‘투자의 자기책임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 2013년과 2014년 당시 증권사들이 판매한 원유 파생결합증권(DLS)에 가입했다가 손실을 본 투자자들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대부분 패소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금융투자 피해자들을 가장 앞장서서 대변하고 있는 ‘법무법인 한누리’도 이번 홍콩H지수 ELS 사건은 맡지 않기로 했다. DLF·옵티머스·라임 등 투자자 피해가 발생한 사모펀드 사건 대부분을 맡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누리 관계자는 홍콩 H지수 ELS 사건과 관련해 “변호사로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의 배상안 또는 은행이 내놓을 자율배상안 보다 법원에서 인정될 수 있는 배상비율이 더 낮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재가입자에 대해서도 불완전판매와 관련한 배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 원장은 지난 5일 기자 간담회에서 “여러 번 가입하신 분들은 그 상품에 대해서 이해도가 높을 것이 아니냐는 점에 대해 저희도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며 “다만 구체적인 상황이 중요하다. 2015년과 2016년 리스크가 제대로 고지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냥 믿고 가입 하세요’라고 스리슬쩍 가입을 권유를 받았다면 그 시점에 적합성의 원칙, 금융소비자보호법상의 원칙 위배 이슈가 있다”고 말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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