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순환 경쟁시대

탄소국경조정제 본격화 … 배출권도 지각변동

2024-02-19 00:00:00 게재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상향으로 수요 증가 전망

에너지·전기요금과 연동한 제도 본래 취지 살려야

‘탄소순환을 제어하라.’

기후위기시대의 최대 화두다. 온실가스 배출을 억제하기 위해 대기는 물론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땅속 탄소순환 고리까지 다각도로 조율해야 한다. 당장 기업들은 국제 무역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탄소를 덜 뿜어내는 가치사슬을 만들어 내야 한다. 또한 탄소배출량을 제대로 측정하고 검증(MRV)하기 위해 초소형 인공위성 등 기술 개발 경쟁이 뜨겁다.

2026년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의 본격적인 시행을 앞두고 온실가스(탄소) 배출권거래제(ETS)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궁극적으로 유럽연합(EU)에서 생산하는 기업들의 탄소배출권 부담금과 동일한 수준을 다른 나라 기업들에게도 적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15일 박현신 에코아이 탄소시장연구부 팀장은 “2026년 탄소국경조정제도가 본격화하기 전에는 비용적으로 직접적인 영향은 없겠지만 우리나라 탄소배출권거래제(K- ETS) 업체들 중 철강업종에 부담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며 “일부 업종이라고 해도 향후 탄소국경조정제도가 본격화하면 국내 배출권 가격 상승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탄소국경조정제도는 온실가스 배출규제가 느슨한 국가에서 생산된 제품을 EU로 수출할 경우 EU 제품과 동등하게 환경 관련 비용을 부과하는 제도다. 철강·알루미늄·비료·전기·시멘트·수소제품 등을 EU로 수출시 상품에 내재된 탄소배출량을 보고하고 배출량에 따른 탄소국경조정제도 인증서 구매를 의무화했다.

EU는 2025년 12월까지를 전환(준비) 기간으로 설정했다. 하지만 분기별로 탄소배출량을 의무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당장 첫 의무 보고 시한은 3월 1일까지다. 정해진 첫 기한 내에 보고 등록을 마치지 않으면 벌금을 낼 수도 있다.

한파에 수증기 내뿜는 발전소 굴뚝 1월 8일 인천 서구 정서진 아라타워에서 바라본 서인천복합화력발전소 굴뚝에서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임순석 기자

◆세계 배출권 시가 총액 사상 최고치 = 탄소배출권제도는 온실가스 배출자가 배출량에 비례해 가격을 지불하도록 하는 제도다.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권을 발행하고 기업들은 온실가스 배출량만큼 배출권을 시장에서 사서 정부에 제출한다. 기업(할당업체)마다 감축 목표량이 있고 목표량만큼 감축하지 못하면 배출권을 구매해야 한다. 만약 이를 지키지 못하면 과징금을 문다. 반대로 목표량을 초과하면 그만큼 배출권을 내다 팔 수 있다.

탄소배출권시장을 처음으로 만든 EU에서는 다양한 국가들에서 관련 제도가 시행되는 데 오래전부터 관심을 기울여왔다. 탄소 기제를 기반으로 새로운 경제 시스템이 구축된다는 측면에서 시장 저변 확대를 위해 노력해왔다. 이러한 추세는 탄소국경조정제도 시행을 앞두고 더 가속화하는 분위기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 13일 붑커 훅스트라 EU집행위원회 기후위원은 “EU는 향후 유럽 외 지역에서 각국 사정에 맞춘 EU 배출권거래제와 유사한 탄소 시장 수립에 ‘상당한 노력(significant effort)’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세계 배출권거래제 시장의 시가총액은 8810억유로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배출권거래제는 기본적으로 기업들이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도록 투자를 유도하는 제도다. 배출권 가격이 지나치게 낮게 형성되면 기업들은 당연히 시설 개선 등을 통한 온실가스 감축 사업 진행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온실가스 추가 감축 비용이 배출권 가격보다 낮아야 직접 감축에 투자가 이뤄진다.

박 팀장은 “우리나라에 비해 EU의 배출권 가격은 9~10배나 높다”며 “국내 배출권 가격도 2020년 초까지만 해도 4만원대를 형성했지만 거래량이 급감하는 등 유동성 부족 문제로 이월제한조치를 시행하면서 가격이 큰 폭으로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할당대상업체들 위주로 참여하는 국내 시장 특성 때문에 이월제한조치가 도입됐지만 해당 제도가 시행되는 국가는 한곳도 없다”며 “정부도 이미 이월제한조치를 한차례 완화했고 제4차 배출권거래제 기간(2026~2030년)에는 폐지를 해야 정상적인 시장 가격 형성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월제한조치는 여유분을 보유한 기업이 배출권을 판매한 양에 비례해 남은 배출권만 다음 연도로 넘길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우리나라와 달리 △EU △미국 RGGI △뉴질랜드 등은 배출권 이월을 무제한으로 허용한다. 미국 캘리포니아는 보유량 허용치를 통해 이월을 제한한다. RGGI는 미국 북동부의 12개 주가가 참여하는 발전부문 대상의 배출권 거래시장이다.

대기질과 온실가스농도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진은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이던 지난해 12월 27일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연합뉴스

◆4차 계획기간 유상할당 비율 조정 중요= 우리나라 배출권거래제는 국가 온실가스 배출의 약 73%를 관리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한국보다 먼저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한 EU 영국 독일 등은 20~40%대다. 그만큼 경제적으로나 환경적으로 중요한 제도다. 게다가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가 상향되면서 배출권 수요가 더 증가할 수 있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2050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배출권거래제 중요성이 커지는 만큼 본디 취지가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배출권거래제 도입 초기 제도 안착을 위해서 배출권 전량을 무상으로 기업들에게 줬다. 이후 단계별로 기업에 할당된 배출권을 정부가 경매 방식을 통해 판매하는 유상할당 비율을 높이고 있지만 10%에 불과한 수준이다. 정부가 무료 배출권을 지나치게 많이 풀면 시장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기 힘들다.

게다가 고질적인 전기료 및 에너지요금 현실화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초기 배출권거래제 설계 당시 유럽 등과 달리 원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국내 전기료 특성상 제도 도입을 해도 전기 사용 억제 유인 요소가 약했다. 해외와 달리 간접배출을 배출권거래제에 넣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간접배출이란 다른 사람으로부터 공급된 전기 또는 열을 사용하면서 나오는 온실가스 양을 말한다.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한 다른 주요국들의 전력·에너지시장은 대부분 자유화를 기반으로 운영된다. 경매 비중도 높아 배출권 비용 상승에 따른 시장 가격 전가가 가능하다.

14일 환경부 관계자는 “배출권 가격이 전기 요금에 반영될 수 있도록 배출권거래제도를 설계하기는 했지만 그 부분이 얼마나 잘 반영되느냐는 유상할당 비율 등에 영향을 받을 것”이라며 “하지만 실제로 전기 요금이 어떻게 변화할지 등은 말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제3차 배출권거래제 기간 동안에 시장이 활성화하지 못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4기에는 이런 부분을 보완할 수 있도록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제4차 배출권거래제 기본계획 수립 법정기한은 올해 12월이다. 정부는 기업들의 시장 예측성을 강화하기 위해 법정기한보다 앞당겨 지난해 수립하겠다고 밝혔지만 무산됐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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