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사업 표준공사비 무색, 곳곳서 공사비 갈등

2024-02-20 13:00:02 게재

반포주공1단지 증액 협상

국토부 표준계약서 제시

현장은 외면, 유명무실 우려

국토교통부의 정비사업 표준공사계약서가 무색하게 재개발·재건축 현장 곳곳에서 공사비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20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1·2·4주구) 재건축 사업이 공사비 증액문제로 위기에 봉착했다. 다음달 착공 예정인 이 단지는 2019년 3.3㎡당 548만원의 공사비에서 최근 800만원대에서 다시 협상을 진행 중이다. 앞서 현대건설은 3.3㎡당​ 공사비를 829만원으로 늘리고 공사기간도 기존 34개월에서 44개월로 10개월 연장해달라고 요구했다.

반포주공1단지 정비사업 조합은 시공사와 공사비 협의를 진행하고 있지만 정부가 제시한 표준공사계약이 적용되지 않았다.

현대건설은 2월초 부산진구 범천1-1구역조합에도 공사비를 3년 전보다 72% 증액하는 내용의 요청서를 전달했다. 공사비를 기존 3.3㎡당 539만9000원에서 926만원으로 인상하는 내용이다.

서울 송파구 잠실 진주아파트 재건축 사업도 공사비 갈등으로 공사가 지연되고 있다. 진주아파트 조합은 지난해 12월 임시총회를 열고 총공사비를 기존 7947억원에서 1조4492억원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논의했으나 조합원 과반수 반대로 부결됐다.

상계주공5단지 소유주들은 지난해 재건축 예상 공사비를 바탕으로 분담금을 추산한 결과 84㎡ 재건축 아파트를 받으려면 분담금이 5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시공사와의 계약을 해지하기로 했다.

앞서 2022년에는 국내 최대 재건축단지로 꼽힌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이 공사비 갈등으로 공사가 장기간 중단되기도 했다.

이처럼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라 공사비 증액을 요청하는 시공사와 추가 분담금을 내야하는 조합의 불협화음은 더 커질 전망이다.

국토교통부는 이같은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1·10 대책의 후속 조치로 정비조합과 시공사가 공사계약을 체결할 때 활용하는 ‘정비사업 표준공사계약서’를 지자체와 관련 협회 등에 배포했다. 공사비 갈등으로 재건축·재개발 사업의 착공이나 분양이 미뤄지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표준공사계약서는 공사비 산출 근거를 명확하게 하고 설계 변경이나 물가 변동에 따른 공사비 조정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다.

현재 대부분의 정비사업은 공사비 총액만으로 계약을 체결하고 공사비 세부 구성내역이 없어 향후 설계 변경 등으로 시공사가 증액을 요구할 때 조합은 해당 금액의 적정성을 판단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대부분 정비사업장이 국토부의 표준공사계약서를 참조하지 않고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정부의 권고안이 현장에서는 무용지물인 셈이다.

앞으로 주택정비사업조합과 시공사간 법적 분쟁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공사비 수준으로는 사업성이 떨어져 계약해지까지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

소규모 재건축 시공사 한 관계자는 “조합에서 공사비 증액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당장 공사중단이나 계약해지를 하기는 어렵지만, 현재 공사비 수준으로는 신규 수주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향후 정비사업 표준공사비 계약 등에 대해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성배 기자 sb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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