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꺾였다는데 체감물가는 왜 높을까 ② 먹거리 물가

2024-02-23 13:00:01 게재

과일·농산물·외식·식품 가격 급등에 체감물가는 천정부지

전체 물가상승률 2%대로 떨어졌다지만

농산물 가격은 두달째 15% 넘게 급등

사과 도매가 89.5%, 배는 51.2% 뛰어

정부 연일 대책 쏟아내지만 실효 없어

새해 들어 물가상승률이 2.8%까지 떨어졌다. 2022년 7월의 6.3%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하지만 소비자 체감과는 거리가 멀다.

통계청 지수 가운데 그나마 체감물가와 가까운 지표는 생활물가지수다. 소비자들이 자주 구매하는 156개 생필품 위주로 구성된 생활물가지수는 3.4% 상승했다. 생활물가지수에는 쌀, 라면, 채소 등 가정주부라면 누구나 알만한 대표적인 식료품과 전기료와 수도요금 같은 공공요금까지 포함되어 있다. 지난해 10월 4.5%를 시작으로 11월 3.9%, 12월 3.7%를 기록하며 갈수록 둔화하고 있다.

이마저도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물가와는 거리가 있다. 상당수 소비자들은 물가가 적어도 두 자릿수는 올랐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물가지표와 체감은 왜 다를까 =체감물가와 통계의 괴리는 어디서 오는 걸까.

소비자물가지수는 가계 소비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상품들을 골라 조사한 지표다. 선택된 품목들은 각기 다른 가중치로 계산되기 때문에 품목별 가격 변동이 물가지수에 미치는 영향력이 다르다. 2010년 기준으로 481개 품목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국민들은 이중 일부를 소비하므로 구입 품목이나 빈도에 따라 느끼는 체감이 다를 수밖에 없다.

또 최근 물가 둔화세가 국제유가 안정세에 기대고 있었다는 점도 한 요인이다. 한때 배럴당 100달러를 위협하던 국제유가는 최근 2년간 배럴당 75~80달러 수준으로 하락세를 거듭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체 물가 조사 대상 품목 458개 중 석유류 가중치는 46.6에 달할 정도로 높다. 실생활과 밀접한 다른 품목이 올라도 석유류 안정세 덕분에 전체 물가지수는 큰 변동이 없게 된다는 설명이다.

농산물과 외식비 등 먹거리 가격 상승이 이어지면서 지난달 생산자물가지수가 두 달 연속 오름세를 나타냈다. 연합뉴스 진연수 기자

◆문제는 장바구니 물가 = 하지만 돈이 없어도 먹고 살기 위해 꼭 사야 하는 품목들이 있다. 생활필수품, 그 중에서도 먹거리 물가 추이가 체감물가의 핵심이다.

최근 서민들이 느끼는 물가 부담도 주로 먹거리 물가 상승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 최근까지 과일을 중심으로 한 농산물 가격 급등세가 서민들의 장바구니 부담을 키웠다. 23일 통계청에 따르면 1월 전체 소비자물가는 2.8%만 올랐지만 농산물은 15.4% 올랐다. 지난해 12월(15.7%)에 이어 두 달 연속 15%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특히 과일이 26.9% 올라 2011년 1월(31.2%) 이후 상승 폭이 가장 컸다. 최근 가격이 폭등하는 대표 품목인 사과와 배는 평년 도매가격과 비교해도 각각 89.5%, 51.2%가 급등했다.

역시 먹거리 가격의 주요지표인 외식 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4.3% 상승했다. 가공식품 가격도 지난해 같은 달보다 3.2% 상승하는 등 여전히 3%대 이상의 높은 상승률을 기록 중이다.

◆물가부담에 기준금리도 동결 = 전날 한국은행이 9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연 3.50%로 동결한 것도 내수와 물가 부담으로 풀이된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기준금리를 연 3.50%로 유지하면서 상반기 중 금리인하는 어려울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높은 수준의 물가가 아직 부담스럽다는 이유에서다.

물가상승률은 2022년 7월 (6.3%) 고점을 찍은 뒤 올해 1월 2.8%까지 내려왔지만, 물가안정 목표치(2.0%)보다는 여전히 높다. 한은은 이날 발표한 수정 경제 전망에서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올 상반기 2.9%, 하반기 2.3%로 제시했다. 물가안정목표 수준까지 물가상승률이 근접하는 시기도 연말 또는 내년 초로 예상했다.

◆실효성 없는 정부대응 = 경기 회복을 가로막는 물가 불안이 다시 고개를 들면서 정부도 물가안정대책을 연일 쏟아내고 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날 물가안정관련 경제장관 간담회를 긴급히 소집했다.

정부가 꺼내 든 카드는 할인 지원과 세제 혜택, 가격 부당인상 점검 등이다. 6일부터 2주간 청양고추·오이·애호박 농가에 ㎏당 1300원의 출하장려금을 신규 지원하기로 했다. 다음 달 말까지 과일수입업체에 관세 인하 물량 2만톤을 추가 배정하고, 300억원을 들여 사과, 배, 토마토 등 과일류와 오징어 대상 할인 지원에 나선다. 상반기 공공요금은 동결하고, 지방자치단체의 물가안정노력을 평가해 특별교부세 등 재정도 차등 배분한다.

하지만 모두 물가가 들썩일 때 내놓던 과거대책의 재탕이다. 비슷한 대책을 되풀이하는 건 물가를 들썩이게 하는 대외 변수에 대응할 카드가 마땅치 않아서다. 최근에 가격이 다시 오르고 있는 국제유가만 해도 정부대책으로 대응하기엔 역부족이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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