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PF ‘옥석가리기’ … 대주단 협약개정 속도 못내

2024-02-27 13:00:10 게재

사업성 평가기준 엄격화와 함께 투트랙 진행

이해관계자 많아 합의안 도출에 시간 걸릴 듯

‘의결 요건 강화’ 미정 … 총선 이후 늦어질 수도

사업성이 떨어지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 정리를 위한 금융당국의 준비 작업이 진행 중이지만 변화의 한 축인 대주단 협약 개정에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당초 내달 협약 개정을 통해 2분기부터 사업장 정리 작업이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됐지만 아직 구체적인 방안조차 도출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사들이 참여하는 전국 3800여개 PF사업장에 대해 적용되는 ‘대주단 협약’은 전체 금융권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때문에 개정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개정이 늦어질 경우 정부가 밝힌 ‘부동산PF 부실정리 로드맵’ 시행 과정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

27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대주단 협약 개정 논의를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윤곽이 잡히지 않은 상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급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며 “판단을 잘해야 하는 사안이라서 의견을 많이 들어보고 있다”고 말했다.

대주단 협약 개정의 핵심은 사업성이 낮은 부동산PF 사업장이 만기연장과 연체유예 등의 채무조정을 통해 연명하면서 구조조정을 늦추는 것을 막자는 데 있다. 당초 채무조정의 취지는 사업성은 있지만 일시적 유동성을 겪거나 본PF 전환이 안 되는 곳에 대해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일부 사업장들이 협약을 통해 사업성이 떨어지거나 경·공매로 가야할 사업장들에 대해서도 만기연장을 하는 사례들이 나타나면서 협약이 부실 연장의 수단으로 작용되고 있다. 이 때문에 만기연장의 벽을 높이기 위해 채권액 기준 3분의 2(66.7%) 이상 동의로 결정되는 의결 요건을 4분의 3(75%)으로 높이는 방안, 미착공 브릿지론의 경우 만기 연장 가능 횟수를 제한하는 방안, 보다 손쉽게 경공매로 유도하는 방안 등이 제기됐다. 하지만 자칫 지나치게 의결 요건을 강화할 경우 정상화 가능성이 높은 사업장마저 선순위 채권자들의 반대에 부딪혀 경공매로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은 현재 논의 중인 부동산PF 사업장에 대한 사업성 평가기준 개정이 이뤄지면 대주단 협약 개정 없이도 일정 부분 부실 사업장 정리가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강화된 평가기준을 적용해 엄격하게 사업성을 따질 경우 사업성이 낮다고 평가된 사업장을 대주단이 협약을 통해 만기연장해주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사업성 평가기준과 대주단 협약 개정이 같이 이뤄지는 게 이상적”이라고 덧붙였다.

금감원은 올해 업무계획에서 부동산PF 부실정리 로드맵을 밝혔다. 무분별한 만기연장이나 연체유예 등을 통해 손실 인식이 지연되지 않도록 대주단 협약 개정을 추진하고, 사업성 우려 사업장에 대해서는 사업성평가 기준을 보다 변별력 있게 개편해 엄격한 평가를 유도할 계획이라며 이른바 ‘투트랙’ 방침을 제시했다.

하반기 중에는 사업장별 경·공매 등 부실정리 또는 사업 재구조화 계획 등을 제출받아 이행상황을 점검해서 올해 안에 부실 사업장의 정리와 부실우려 사업장의 재구조화를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2분기에 강화된 평가 기준을 적용한 사업성 평가가 이뤄져야 하고 부실 또는 부실 우려 사업장이 구조조정 리스트에서 빠지지 않도록 대주단 협약 개정을 통해 빈틈을 막을 필요가 있다. 또 다른 금융당국 관계자는 “대주단 협약의 의결요건을 강화하는 방안 등을 개정안에 담을지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며 “개정안이 나와도 협약 개정까지 이뤄지는 시점은 총선 이후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대주단 협약 개정안의 수위에 따라 부실 PF사업장 정리에 보다 속도가 날 수 있겠지만, 개정안 논의 과정에서 예상되는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의 반발과 갈등이 쉽게 조정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한편 워크아웃이 개시된 태영건설의 경우 채권단이 PF사업장에 대한 처리방안을 대주단에 요청했지만 59개 사업장 중 30~40곳만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복잡한 이해관계로 인해 대주단 내에서도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곳이 많은 탓이다. 다만 금융당국과 산업은행은 별도의 실사과정을 통해 사업장에 대한 평가를 진행하는 만큼, 대주단의 처리방안 제출이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다는 입장이다. 산은 관계자는 “실사 과정에서 대주단의 의견을 듣는 과정”이라며 “처리방안을 제출하지 않은 사업장에 대해서는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사를 통해 판단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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