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세대원칙까지 깬 파격 출산지원금, 서민들은 어쩌나

2024-03-06 13:00:01 게재

출산 후 2년·2회 한해 출산·양육지원금 전액 비과세

대기업 취업자만 특혜 … 중소기업·자영업자 박탈감

근로자 86.2%가 중기, 임금·육아휴직 격차 이미 심각

기업이 지급하는 출산장려금에 정부가 세금을 매기지 않기로 했다. 금액도 따지지 않는다. 부영그룹이 직원 자녀에게 출산지원금 1억원씩 지급하겠다고 발표한 뒤 정부가 한 달 넘게 고민해 내놓은 결과다. 파격적 세제지원을 해야할만큼 출산율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정정훈 기재부 세제실장(왼쪽 두번째)이 지난 1월 2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23년 세법 개정 후속 시행령 개정안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배재만 기자

◆파격적 세제대책 = 근로자는 세 부담이 줄고 기업은 비용처리를 통해 법인세를 낮출 수 있어 환영하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에겐 ‘그림의 떡’이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과세대원칙을 깬 것이어서 향후 곳곳에서 논란을 자초할 것이란 우려도 있다. “우리도 힘든데 왜 여기엔 세금을 매기느냐”는 조세저항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6일 정부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근로자가 출산 후 2년, 최대 2회에 한해 회사로부터 지급받는 출산·양육지원금에 대한 세금을 면제해주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오는 9월 정기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전날 민생토론회에서 “기업이 출산근로자에게 출산지원금을 지급할 경우 기업도 근로자도 추가적인 세 부담은 없도록 조치하겠다”며 “기업의 경우에는 세 부담과 관련해 출산지원금을 근로소득, 인건비 등 기업의 비용으로 인정을 해 주게 되면 세 부담이 없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근로자의 경우에도 출산장려금이 본인의 근로소득에 합산될 경우 세 부담이 크게 늘어나지 않겠나”라며 “자녀가 출생 후 2년 내에 출산지원금을 지급받은 경우에는 소득세를 전액 비과세 할 것”이라고 말했다.

출산장려금 1억원이 근로소득으로 잡히면 근로자는 최대 38%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이를 증여로 처리할 경우 근로자는 10%만 세금으로 내면 되지만 회사는 비용처리를 못해 더 많은 법인세 부담을 지게 된다. 이를 기업엔 비용처리(세무회계상 손금산입 인정)가 되도록 하고, 근로자에겐 세금을 전액 면제해주는 방식으로 하겠다는 설명이다.

예를 들어 연봉 5000만원을 받는 근로자가 출산지원금 1억원을 받았을 경우 기존엔 근로소득세로 약 2750만원을 내야 했다. 하지만 개정안을 적용할 경우 1억원 전액을 비과세해 250만원(연봉 5000만원에 대한 근로소득세)만 내면 된다. 세금을 2500만원 줄일 수 있다.

올해 합계출산율이 0.6명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상황에서 기업에서 지원하는 출산장려금에 과세를 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비판에 따른 조치다.

◆커지는 과세형평성 논란 = 문제는 과세형평성과 양극화 논란이다.

억대 출산지원금을 지급할 여력이 있는 곳은 대기업 정도다. 현재 출산지원금은 현대차(첫째 300만원), 포스코(첫째 300만원), HD현대(직원 본인 임신·출산 시 1000만원), KT(첫째 200만원) 등 일부 대기업에 한정돼 있다.

국민 다수를 차지하는 자영업자나 중소기업 근로자들은 이런 세제혜택에서 아예 배제되어 있다. 실제 근로자의 86.2%가 중소기업에 다니는 상황이다. 더구나 이미 대기업과 중소기업 근로자의 ‘복지혜택’ 차이는 커질 대로 커진 상황이다.

통계청 ‘전국사업체조사’ 마이크로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사업체 규모별 일자리 비중에서 300인 이상 대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3.8%에 그쳤다. 1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체는 40.6%, 10인 미만은 45.6%에 달했다.

실제 사업체 규모에 따른 근로조건도 큰 차이를 보인다. 2022년의 경우 5~9인 사업체의 임금은 300인 이상 사업체의 54%에 불과하다. 비교적 큰 규모인 100~299인 사업체의 임금도 71%에 그친다. 이러한 임금 격차는 1990년대 초부터 꾸준히 커지다가 2015년 이후에는 다소 줄어들었으나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심지어 30인 미만 사업체의 경우 출산 전후 휴가제도가 필요한 사람 중 일부 또는 전부가 사용하지 못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약 30%였다. 육아휴직제도의 경우에는 이 비율이 약 50%에 달했다.

◆세법 기조 흔들릴 수도 =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미 고액 연봉을 받고 있는 대기업 근로자들이 혜택을 보지 않겠느냐”며 “이들은 출산하면 1억원이 생기는데 중소·중견기업 근로자들은 그렇지 못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민간 영역에서의 불평등이 박탈감이나 양극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일가 친척들이 함께 경영하는 소규모 기업들이 제도를 악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사실상 증여세를 회피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정정훈 기재부 세제실장은 “소득세법을 개정하면서 형제·자매·사촌 특수관계자는 제외한다는 내용을 넣어 조세 형평성을 유지할 생각”이라며 “지원금을 받은 근로자의 기본급이나 호봉을 낮추는 등의 악용 사례가 발생할 경우 조세 회피로 보고 추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 안팎에서는 세법 기조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과세대원칙이 무너지면서 곳곳에서 ‘세금감면’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올 수 있다는 우려다. 정부 스스로 과세원칙을 지키지 않은 상황이 된 만큼, 이런 요구를 무마할 논리가 마땅치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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