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은행 ‘109억 배임’ 적발…또 터진 부당대출

2024-03-07 13:00:02 게재

대출 서류 조작혐의 … 재작년 국민은행과 유사한 사고

금융감독원 “시스템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살펴볼 필요”

잇단 은행권 사고에 “개별 여신 검사 부활해야”지적도

NH농협은행에서 109억원 가량의 배임 사고가 발생했다. 재작년 KB국민은행에서 발생한 배임사고와 유사한 일이 또 터졌다. 부동산 담보대출 과정에서 대출금액을 과다 산정해 부당대출이 일어난 것이다. 은행권의 연이은 횡령 사고에 이어 배임까지 잇따라 불거지면서 부실한 내부통제가 도마 위에 올랐으며, 금융감독원의 검사시스템에도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7일 금감원 관계자는 “농협은행의 자체 조사 결과를 지켜본 뒤에 현장 검사를 나갈지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임 규모가 커서 금감원이 현장 검사를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농협은행은 5일 ‘금융사고 발생’ 공시를 통해 2019년 3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109억4733만원의 업무상배임 사고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배임혐의를 받고 있는 지방 지점에서 여신업무를 담당했던 직원에 대해 형사고발했고 인사위원회를 거쳐 징계할 예정이다. 농협은행은 자체 정기검사에서 이 같은 배임혐의를 적발했다.

농협은행은 내부 감사과정에서 부동산 담보대출 매매계약서상 거래금액과 실거래금액이 약 12억원 가량 차이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대출금액을 과다 상정한 것으로 의심해 여신을 담당했던 직원의 고의적인 의도 여부를 경찰에 수사의뢰했다. 담보가 되는 부동산 가치를 실제보다 부풀려 취급한 혐의다. 해당 직원은 ‘단순 착오’라며 혐의를 부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농협은행은 다른 대출 건에 대해서도 문제가 있는지 조사를 확대하고 있다.

지난 2022년말 KB국민은행도 금융사고 공시를 통해 120억원의 업무상 배임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당시에도 여신 담당 직원이 부동산 중개업자 및 대출 브로커와 공모해 부동산 담보 서류를 조작, 담보 가치를 부풀려 과다 대출이 이뤄지도록 한 혐의를 받았다.

금감원은 현장 검사에 착수했고, 2개월 후 국민은행은 금융사고 규모를 30억원 가량 늘어난 149억4900만원이라며 공시를 정정했다.

농협은행도 자제조사와 금감원 검사를 통해 사고 금액이 늘어날 수 있다. 해당 직원이 담보 가치를 실제보다 부풀리기 위해 제3자와 공모했을 가능성도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장 검사에 착수하면 사건 실체를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사건들이 왜 발생했는지 시스템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대출가액과 감정평가액을 전산 관리하는데 그 과정의 문제도 따져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은행권에서 잇따라 횡령·배임 사고가 터지면서 금감원이 개별 여신에 대해서도 검사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3000억원에 육박하는 횡령사고가 발생한 경남은행의 경우 직원이 2009년부터 2022년까지 14년간 77회 횡령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직원이 실제 은행에서 빼낸 금액은 500억원이지만, 횡령이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또 다른 횡령을 통해 기존 횡령 금액을 메우는 등 돌려막기를 했다. 횡령한 금액을 다시 채워 넣어도 횡령이기 때문에 직원이 인출한 금액을 모두 합산, 횡령 규모가 2988억원으로 불어난 것이다.

금융당국 전직 직원은 “금감원이 지난 2014년 검사 혁신 방안을 발표한 이후 은행권의 개별 여신에 대해서는 검사를 하지 않고 있다”며 “비록 샘플링을 통한 개별 여신 검사이지만 실제 부정을 잡아내는 것보다는, 금융회사 임직원들에게 ‘언제든지 내가 담당한 대출을 금감원이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경고를 주는 사전 예방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2014년 ‘검사 및 제재업무 혁신방안’을 발표하면서 “부실여신에 대한 책임규명 검사를 지양하고, 전반적인 여신관리시스템 및 운영의 적정성을 점검하는 방식으로 여신검사 방식을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금감원 관계자는 “한동안 개별 여신을 들어다보지 않았지만 PF대출이나 금액이 크고 부실화된 경우 개별 여신에 대해서도 검사를 하고 있다”며 “예전처럼 샘플링을 통한 검사를 하지 않고 있지만 리스크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테마검사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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