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곡물값 내렸는데 꿈쩍 않는 식품가격…애끓는 소비자

2024-03-08 13:00:14 게재

밀·대두유 등 30~40% 폭락했지만 밀가루·식용유값 그대로

작년 국제곡물가격 폭등하자, 식품회사 줄줄이 인상 경쟁

소비자단체 “원재료 인하분 소비자 가격에 반영해야” 촉구

국제곡물가격이 최근 30% 이상 하락했지만 이를 원자재로 쓰는 식품가격은 그대로다. 2022년과 2023년 초 국제곡물가격이 급등하자 이를 근거로 식품회사들이 가격인상경쟁을 벌였던 때와는 거꾸로다. 실제 식품회사들은 소비자가격 인상과 원자재값 하락 덕분에 순이익이 전년보다 2배 가량 늘었다. 소비자만 ‘봉’이란 말이 딱 맞는 셈이다.

지난달 식료품 물가 1년 전보다 6.0% 상승 새해 들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대로 떨어졌지만 상반기 다시 상승 폭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지난 달 식료품 물가는 1년 전보다 6.0% 상승했다.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 폭(2.8%)의 두배를 웃도는 수준이다. 연합뉴스

정부는 기업의 과도한 이윤 추구로 물가 불안이 커지는 ‘그리드플레이션(Greedflation·탐욕 인플레이션)’을 정면으로 지적하고 나섰다. 그래도 식품업체들은 “당장 가격을 내리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국제곡물가격 얼마나 내렸나 = 8일 소비자단체협의회 관계자는 “소맥과 대두유 가격이 2022년 대비 2023년에 뚜렷하게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음에도 이를 가공해 제품을 제조하는 밀가루와 식용유 가격에 적절히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협의회 분석에 따르면 콩기름 1.8L 국제 가격은 우크라이나 전쟁 등 여파로 2022년 1분기(1~3월) 2952.1원에서 3분기(7~9월) 4394.3원으로 정점을 찍었으나 이후 점차 하락했다. 지난해 4분기(10~12월) 가격은 2888.6원까지 내려와 2021년 수준으로 돌아갔다. 밀 1kg 국제 가격도 2022년 1분기 497.8원에서 같은 해 4분기 630.6원까지 올랐다가 지난해 4분기 435.1원으로 내렸다.

식용유의 주재료인 대두유(1.8ℓ) 수입 가격 역시 지난 2022년 3분기 4394.3원을 정점으로 하락세를 보였다. 2023년 3분기에는 2698.8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과 견줘 38.6% 하락했다. 4분기 가격(2888.6원)도 전년 동기 대비 28.7% 하락해 2022년 1분기(2952.1원) 수준이다. 주요 국제곡물가격이 2년 전 가격으로 ‘정상화’된 셈이다.

◆소비자가격에는 왜 반영안되나 = 하지만 국제곡물가격 하락이 출고가와 소비자가에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씨제이(CJ)제일제당과 대한제분 등의 밀가루 출고가는 2023년 1분기에 전년 같은 기간과 견줘 19.2% 상승했으며, 2분기엔 12.7%, 3분기엔 7.9% 상승했다. 밀가루 소비자 가격 역시 2023년 1분기에 24.1%, 2분기 10.8% 상승했다. 3~4분기에는 원재룟값이 급속히 하락했지만, 소비자 가격은 그대로였다. 2023년 밀가루 소비자 가격 상승률은 2022년에 견줘 7.9%였다.

식용유 출고가·소비자가 역시 비슷한 흐름이다. 씨제이제일제당과 사조해표의 출고가는 2023년 1분기엔 전년 동기 대비 29.5%, 2분기엔 15.7%, 3분기엔 1.4% 꾸준히 상승해 2023년 평균 14.9% 올랐다. 소비자 가격은 2023년 3분기와 4분기 원재룟값이 각각 38.6%, 28.7% 내릴 때 0.3%와 3.8% 내리는 데 그쳤다.

소비자단체협의회는 “지난해 가공식품 물가는 6.8%, 외식물가는 6.0% 각각 상승했는데, 이는 소비자물가상승률 3.6%의 두배에 육박한다”며 “최근 주요 식품 기업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년도에 견줘 월등한 것은 원재료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한 탓이므로 하루빨리 출고가와 소비자를 내려 소비자의 부담을 덜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식품회사 영업이익 급등 = 재료값은 폭락했는데 소비자가격을 유지하니 식품회사 순이익만 커지고 있다.

실제 주요 식품업체 중에서 빙그레는 2022년 394억원이었던 영업이익이 지난해 1124억원으로 2.9배로 늘었다. 이 기간 풀무원의 영업이익은 263억원에서 620억원으로 급등했다. 농심의 영업이익도 1122억원에서 2121억원으로 2배 증가했다. 모두 역대 최대급이었다.

삼양식품도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31.2%와 62.5% 각각 증가한 1조1929억원과 1468억원이었다. 창사 이후 처음 매출 1조원과 영업이익 1000억원을 돌파했다.

식품업체들은 일부 원재료 값은 하락했지만 인건비와 물류·시설 등 부자재 비용이 여전히 높은 상황이라 당장 가격을 내리긴 어렵다고 맞서는 형국이다. 밀과 콩기름 등 원재료는 실제 공급일보다 수개월 이전에 계약이 이뤄지는 만큼 국제 원재료 값 하락이 가공식품 가격 인하 요인으로 작용하기 위해선 3~6개월 이상 장기간 지속해서 하락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또 식품업체들이 가격 인상으로 수익을 올렸단 지적에 대해서도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영업이익이 크게 오른 건 사실이지만 국내 사업보단 해외 진출로 매출이 크게 성장한 영향이 크다”며 “팬데믹 기간 영업이익이 저조했던 데 따른 기저효과도 있다”고 설명했다.

◆뿔난 정부, 다그쳐 보지만 = 이같은 식품업체들의 행태에 정부가 직접 나섰다. 원료 가격 상승을 이유로 식료품값을 올렸다면, 원료 가격이 내려갈 때에도 하락분을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 “최근 국제 곡물 가격이 2022년 고점 대비 절반가량 하락했으나 밀가루·식용류 등 식품 가격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고물가를 유발한다는 지적이 있다”고 말했다. 물가 안정을 위해 기업의 동참이 필요하다고 촉구하면서 고물가를 주도하고 있는 식품기업을 향해 경고성 발언을 내놓은 것이다.

정부는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식품기업과 간담회를 열어 국제 원재료 가격 하락분이 식품 가격에 반영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계획이다. 아울러 주요 식품원료 관세 인하와 세제 지원, 제분업체 경영안정자금 등 업계 부담 경감 지원도 병행하기로 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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