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ELS ‘무리한 실적 경쟁 조장' 본점 차원 불완전판매 확인

2024-03-11 13:00:43 게재

금융감독원, 금융회사 판매시스템 전반적 부실 확인

판매사 기본배상비율 최대 40% … 은행 10%p 추가

예적금 가입 목적, 고령층 등 최대 45%p 배상비율 가산

ELS 투자경험 많고 이전 수익 크면 최대 45%p 차감

은행과 증권사들이 홍콩H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상품을 팔면서 본점 차원의 판매정책과 소비자보호 관리실태가 전반적으로 부실하고 판매시스템 차원의 불완전판매도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11일 금융감독원은 홍콩ELS를 판매한 은행과 증권사에 대해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현장검사 결과와 판매사의 투자자 배상을 위한 분쟁조정기준안을 마련해 발표했다.

홍콩ELS 판매 과정에서 은행과 증권사들은 △무리한 실적 경쟁 조장 △고객 투자성향 고려 소홀 △영업점 단위의 불완전판매를 한 것으로 금감원 검사결과 확인됐다.

현장 검사를 실시한 은행은 국민·신한·하나·농협·SC 등 5곳이며 증권사는 한국투자증권·미래에셋·삼성·KB·NH·신한 등 6곳이다.

검사결과 전 세계적으로 주가지수 변동성이 확대되던 시기에 A은행은 2021년 영업목표 수립시 WM수수료 중 신탁수수료 목표를 2020년 예상실적 대비 56.9%로 상향 설정해 전사적 판매를 독려했다. B은행은 2021년 1분기 중 두 차례 프로모션을 실시하고 이 과정에서 실적 데이터를 회사 게시판에 안내하는 등 실적 경쟁을 독려했다.

성과평가지표(KPI)는 고객 보호 관점에서 보수적으로 운영해야 하지만 ELS 판매에 유리하게 설계해 판매 유인을 증대시켰다.

C은행은 녹인(손실발생구간)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H지수가 하락하더라도 판매 당시 ELS 수익률을 영업점 KPI로 인정했다. D은행은 고위험 특정금전신탁의 경우 신탁수수료의 최대 2배를 성과이익으로 평가, 고위험 상품 판매를 유도했다.

은행들은 고객 손실 위험이 증가하는데도 불구하고 내부승인 절차 우회 등을 통해 판매한도를 오히려 확대하기도 했다. E은행은 주가지수 변동성 확대시 판매한도를 감축하도록 한 내부 리스크 관리기준을 완화해 판매한도를 확대하고 실제 판매금액이 완화된 판매한도마저 초과하자 예외한도를 설정했다.

이밖에도 상품선정 등에 있어 비예금상품위원회를 형식적으로 운영하고 모니터링 등 사후관리도 미흡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본점·영업점 모두 불완전판매 = 본점 차원의 판매시스템 부실로 인한 불완전판매와 일선 영업점 창구에서 불완전판매가 함께 이뤄졌다.

F은행은 투자자성향 분석시 ‘거래목적’ 항목에 평가점수를 배정하지 않아 투자자가 ‘노후자금 마련’, ‘단기운영목적’ 등을 선택하더라도 투자성향 평가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G증권은 투자자성향 분석시 ‘재산상황’에 대한 확인을 누락했다.

‘손실 감내 수준 20% 미만’, ‘단기투자 희망’ 등 H지수 ELS에 부적합한 투자자도 가입이 가능하도록 판매시스템을 운영했다. H증권은 원금보존을 희망하는 투자자에게도 자산규모, 소득수준 등 다른 항목 평가결과에 의해 ELS 가입이 가능하도록 운영했고, I은행은 투자기간 ‘1년 미만’으로 응답한 투자자도 타항목 평가결과에 따라 가입이 가능하도록 했다. 투자위험 안내 미흡 등 설명의무 위반 사례도 드러났다.

영업점에서는 판매 직원이 투자자의 투자성향 분석상 가입이 불가능한 '위험중립형'으로 나오자 작은 목소리로 ‘이 상품에 가입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라고 유도하기도 했다.

또 다른 판매 직원은 지점 방문이 어려운 고객에게 본인이 투자성향 진단 설문지, 상품설명서, 가입신청서를 모두 작성·서명하고 판매과정 녹취시 타직원이 고객역할을 하면서 허위로 진행하는 등 대리가입·허위녹취를 벌였다.

87세 고객이 청력이 약해 ‘들리지도 않고 알지 못하겠다’는 취지로 이야기하는데도 은행 판매 직원은 ‘이해했다’고 답할 것을 반복해 요청하고 중도해지수수료에 대해 ‘가능하면 해지하시면 안된다는 내용’이라고 왜곡 설명하기도 했다.

◆은행 기본배상비율 최대 50%, 증권사 45% = 현장검사 결과를 토대로 판매사의 책임을 고려한 금감원의 분쟁조정기준안에 따르면 적합성(적정성) 원칙 위반과 설명의무의 경우 배상비율은 각 20%, 부당권유는 25%로 정해졌다.

적합성과 설명의무 위반 등 2가지 동시 위반은 30%, 적합성과 부당권유는 35%, 설명의무와 부당권유는 35%로 정해졌다. 3가지 모두 위반한 경우 기본배상비율은 40%다.

여기에 내부통제부실을 공통가중 요소로 뒀다. 은행의 경우 대면판매는 10%p, 온라인판매는 5%p 가중되고, 증권사는 각각 5%p, 3%p 가산하기로 했다. 은행은 최대 50%, 증권사는 최대 45%의 기본배상비율이 정해진 것이다.

기본배상비율과 별개로 투자자별 가입 형태에 따라 판매사의 책임가중 사유가 늘어 배상비율은 최대 45%p까지 증가한다. 예·적금 가입목적 고객에서 ELS를 팔았다면 10%p, 고령층 등 금융취약계층에 대해서는 5~15%p, ELS 첫 투자자는 5%p, 판매사의 자료유지·관리 및 모니터링콜 부실은 5~10%p, 비영리공익법인은 5%p 가산된다.

반면 투자자별로 경험이 풍부하거나 ELS 투자로 수익을 얻은 경우 배상비율은 최대 45%p 차감된다. ELS 투자경험이 많으면 2~25%p, 매입·수입규모에 따라 5~15%p, 금융상품 이해능력에 따라 5~10%p 차감된다.

◆80세 이상 가입자 15%p 가산, 62회 가입경험 10%p 차감 = 80대 초반의 J씨는 지난 2021년 1월 예·적금 가입 목적으로 은행 지점을 방문했지만 ELS 상품 가입을 권유받아 2500만원을 투자했다가 올해 1월 손실이 확정됐다. 금감원 검사결과 해당 은행은 ELS 상품을 설명하면서 투자위험 일부를 누락하거나 왜곡된 내용을 전달하는 등 설명의무 위반 및 내부통제 부실 소지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영업점 창구 등에서 개별적인 적합성 원칙 위반, 부당권유 금지 위반 및 고령자 보호기준을 준수하지 않은 사실이 추가로 발생했다.

금감원은 분쟁조정기준안 적용시 판매자 요인을 50%로 볼 수 있고, 초고령자(만 80세 이상)에 대한 보호기준 미준수(15%p), 예·적금 가입목적(10%p) 등을 고려해 손실에 대한 배상비율은 75% 내외 수준에서 결정될 것으로 예상했다. 차감 요소인 ELS 가입경험(2회), 지연상환·녹인·손실경험 없음, 가입금액 5000만원 미만 등의 차감비율은 0%p로 판단했다.

80대 K씨의 경우는 J씨와 비슷하지만 은행의 투자권유자료 보관의무 위반(5%p)이 가중된 반면, 예·적금 가입목적(10%p)은 아니어서 배상비율은 70% 내외 수준으로 예상됐다.

이밖에도 금감원은 6개의 추가 사례를 예시로 제시했다. 기준안 적용 예시를 보면 가입당시 연령이 65세 이상이면 배상비율이 5%p 가산되는 반면, 가입금액이 5000만원 초과 1억원 이하인 경우 5%p 차감된다. ELS 가입경험이 17회까지는 차감 비율이 0%p 이지만 62회인 경우 10%p가 차감된다. 또 ELS 누적이익이 이번 손실규모를 초과할 경우 10%p 차감된다.

50대 중반의 L씨는 ELS 상품을 62회 가입한 경험이 있으며 은행직원의 가입 권유를 받아 1억원을 투자했다. 해당 은행은 투자권유자료 보관의무 위반 등 판매사 요인으로 35%의 배상책임이 인정되지만, L씨는 ELS 가입 경험(10%p 차감)이 많고, 손실 1회 경험(15%p 차감), 가입금액이 5000만원 초과 1억원 이하(5%p 차감), ELS 누적이익이 이번 손실규모를 초과(10%p 차감)하면서 배상비율은 0% 내외 수준으로 예상됐다.

금감원은 검사결과 확인된 위법부당행위에 대해 기관·임직원 제재, 과징금·과태료를 엄중하게 부과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해당 판매사의 고객 피해 배상, 검사 지적사항 시정 등 사후 수습 노력에 대해 관련 기준 및 절차에 따라 참작하기로 했다.

분쟁조정위원회 개최 등 분쟁조정 절차를 내달 시작해 대표 사례를 내놓기로 했다. 판매사들은 분쟁조정 절차와 별개로 이번 분쟁조정기준안을 토대로 자율적인 배상에 나설 예정이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이경기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