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건설 부동산PF사업장 처리방안…대주단·실사법인 타당성 줄다리기

2024-03-20 13:00:02 게재

60곳 중 59곳 제출했지만 검증에 시간 걸려

채권자협의회, 기업개선계획 의결 한달 늦춰

태영건설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의 핵심적인 요소인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사업장 처리방안을 놓고 회계법인이 본격적인 실사 작업에 착수했다. 60개 사업장 중 59곳이 처리방안을 제출했지만 사업장별 대주단과 실사를 맡은 회계법인이 처리방안의 타당성을 놓고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다.

20일 금융당국 관계자는 “대부분 사업장이 공사를 계속 진행할지, 경공매를 통해 사업장을 정리할지 처리방안을 제출하기는 했지만 구체적인 정상화 계획이 없거나 사업성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곳들이 많아서 실사법인이 검증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PF사업장에 대한 처리방안이 중요한 이유는 사업장 정상화에 따라 태영건설에 미치는 재무적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실사결과를 토대로 태영건설에 대한 기업개선계획이 작성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확한 실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주단에서 사업을 접고 사업장 부지를 경공매로 넘긴다는 결정을 할 경우 태영건설이 부담할 채무가 얼마나 되는지 판단할 수 있다. 일부 사업장은 태영건설이 책임준공확약 등 연대보증을 한 곳이어서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하면 정리하는 게 태영측에 유리하다.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해 공사를 계속한다고 할 경우에는 사업성 판단이 합리적인 예측에 따라 정확히 이뤄졌는지, 신규 자금을 어떻게 부담할지 등 실사를 맡은 회계법인이 따져봐야 한다.

사업장마다 대주단 사이에 이해관계가 엇갈리기 때문에 의견조율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대주단 합의를 거쳐 제출한 처리방안을 실사법인이 의견 교환을 통해 수정하는 과정 역시 만만치 않을 수밖에 없다.

일부 사업장에 대해서는 대주단의 신규자금 투입이 어려울 경우 태영건설 채권자들이 회사 차원에서 신규자금을 투입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실사법인이 합리적인 방안을 내놓더라도 결국은 대주단과 채권단이 결정권을 쥐고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사법인과 대주단의 줄다리기가 길어지면서 채권자협의회는 태영건설 기업개선계획 의결을 당초 예정보다 한달 늦춘 5월11일로 연기했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실사법인들이 대주단이 제출한 PF사업장 처리방안을 분석하고 태영건설에 미치는 제반 경제적 영향을 분석하는 데에 추가적인 시간을 요청했다”며 “주채권은행은 PF사업장의 다양한 여건을 감안할 때 실사법인의 요청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은 일정이 더 늦어지더라도 정확한 재무현황을 바탕으로 한 기업개선계획이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사업장 처리방안을 제출하지 않은 1곳이 끝내 방안을 내지 못하면 실사법인이 자체적으로 판단한 처리방안을 바탕으로 기업개선계획이 작성될 것으로 보인다.

채권단은 지난 2월 금융채권자협의회를 열고 태영건설에 4000억원을 지원을 결의했다. 따라서 당분간 태영건설이 유동성 부족을 겪을 가능성은 낮다.

기업개선계획이 마련되고 채권단이 동의하면 출자전환이나 채무조정을 통한 태영건설의 자본잠식 해소 등 경영정상화가 추진된다.

태영건설은 지난해 말 기준 자본잠식이 발생했다. 자본총계는 -5626억원으로 집계됐다. PF사업장 우발채무들이 태영건설의 주채무에 반영되면서 자본잠식이 발생한 것이다. 자본잠식에 따라 한국거래소는 태영건설 주식의 거래를 중지했다.

외부감사를 맡은 삼정회계법인의 감사의견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태영건설의 상장폐지 여부가 결정된다. PF 관련 우발채무 규모가 추정이고 향후 경기 변동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태영건설에 대한 ‘감사의견 거절’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감사의견 거절은 상장폐지 사유지만 이의신청을 통해 1년간 개선 기간을 부여받을 수 있다. 채권단은 감사의견 거절이 나올 경우 이의신청을 하고 기업개선계획 실행을 통해 자본잠식을 해소한 후 상장을 유지한다는 계획이다.

감사의견 거절은 시장에서 예견되고 있는 만큼 충격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실사 과정에서 숨은 부실이 크게 드러나거나 기업개선계획 마련과 실행이 예정대로 진행되지 않을 경우 태영건설 워크아웃은 난항을 겪을 전망이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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