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홍콩ELS 배상절차 개시…1분기 충당금 2조원 육박

2024-03-25 13:00:19 게재

이사회 의결 거쳐 내달 투자자 배상 협의

손실률 50%, 평균 배상률 40% 추정시

대규모 투자 손실이 발생한 홍콩H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사태와 관련해 은행권이 투자자 배상을 위해 올해 1분기에만 2조원에 육박하는 충당금을 쌓을 전망이다. 올해 2월말까지 누적 손실률이 53.5%인 홍콩ELS는 H지수가 현재 수준인 5700선을 유지할 경우 향후 만기 도래 상품의 손실률도 50%대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홍콩ELS를 판매한 6개 은행은 이사회 개최 등을 거쳐 배상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

하나은행은 오는 27일 이사회를 열고 자율배상에 관한 의결을 추진하고 NH농협은행과 SC제일은행도 28일 열리는 이사회에서 배상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판매액이 가장 적은 우리은행은 22일 이사회를 열고 금감원이 제시한 분쟁조정기준안을 수용해 투자자들에 대한 자율배상에 나서기로 했다.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아직 이사회 일정을 확정하지 않았지만 이번주말쯤 개최가 예상된다.

이들 은행들은 이사회에 ELS 배상규모 추정치를 보고하고, 이사회는 배상 관련 손실을 충당금 등의 방식으로 1분기 실적에 반영하는 것을 승인할 것으로 보인다. KB국민은행은 2021년 1~7월(H지수 최고점 전후 기간) 판매한 H지수 ELS계좌 8만여개에 대한 전수조사를 벌이고 있다. 금감원 분쟁조정기준안을 토대로 배상 규모를 추정하기 위해서다. 전수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이사회에 자율배상방안을 보고할 예정이다. 신한은행도 ELS 사후 관리 전담 태스크포스(TF)를 운영 중이며 자율배상 관련 시뮬레이션(모의실험)을 진행해왔다.

◆올해 들어 평균 손실률 51.2% = 6개 은행이 판매한 홍콩 ELS 상품 중 올해 들어 이달 22일까지 3조1393억원 가량의 만기가 도래했다. 고객이 돌려받은 금액은 1조4942억원으로 평균 손실률은 51.2%(손실액 1조6066억원/원금 3조1393억원)로 나타났다. H지수가 5000선 아래로 떨어진 올해 1월 하순 만기가 도래한 상품 일부의 손실률은 약 60%에 달했다.

지난해말 기준 은행권의 홍콩ELS 판매잔액은 19조3000억원이다. KB국민은행이 8조1972억원으로 가장 많고, 신한은행(2조3701억원), 농협은행(2조1310억원), 하나은행(2조1183억원), SC제일은행(1조2427억원), 우리은행(413억원) 순이다.

올해 상반기 만기도래 규모는 KB국민은행 4조7447억원, 신한은행 1조3329억원, NH농협은행 7380억원, 하나은행 7330억원, SC제일은행 6187억원, 우리은행 367억원이다. 투자자 손실률 50%, 평균 배상률 40%를 적용하면 배상 규모는 1조6408억원에 달한다.

판매액이 가장 많은 KB국민은행의 경우 예상 배상액은 9489억원으로 1조원에 육박한다. KB국민은행은 약 1조원을 충당부채와 영업외 비용(손실) 항목으로 각 대차대조표, 손익계산서에 반영하고 실제 배상액이 이를 넘어서면 이사회 결의를 다시 거쳐 손실을 반영할 것으로 보인다.

◆올 한해 예상 배상액 2조 넘을 듯 = 올해 하반기까지 홍콩H지수가 크게 반등 하지 않으면 6개 은행에서 발생하는 손실 규모는 5조980억원으로 늘어난다. 40% 배상률을 적용하면 예상 배상액은 2조390억원에 달한다.

다만 H지수가 반등할 경우 손실 규모와 배상액은 줄어든다. 6000선까지 상승하면 손실 규모는 4조5960억원, 예상 배상액은 1조8380억원이 된다. 6500선을 넘으면 손실 규모는 3조9570억원, 배상액은 1조5830억원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은행들의 이사회 결의를 마치면 손실을 본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내달부터 자율 배상 절차를 밟게 된다. 개별 투자자들과 배상비율을 놓고 협의를 진행하고 은행별 배상위원회를 거쳐 배상 비율을 확정해 배상이 이뤄지게 된다. 하지만 배상비율을 놓고 투자자와 은행간 합의가 실패할 경우 금감원 분쟁조정을 거치거나 소송을 통해 법적 판단을 받게 된다.

은행들의 자율배상은 불완전판매에 따른 책임을 이행한다는 차원 이외에도 금융당국의 제재 등과 연계돼 있기 때문에 보다 적극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이지만, 과도한 배상 요구에는 합의가 이뤄지기 어렵다.

투자자들의 경우 계약취소 등 투자원금 전액 반환을 요구할 수 있지만 은행과의 합의가 결렬되면 상당 기간이 소요되는 금감원 분쟁조정 또는 소송으로 갈 수밖에 없고, 보다 엄격하게 투자자의 자기책임원칙을 따지는 법원에서 더 많은 배상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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