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용 ‘퍼주기 공약’ 남발…‘곳간지기’ 기재부 고심 커진다

2024-04-03 13:00:01 게재

총선 앞으로 일주일, 민생 빌미로 공약 쏟아져

재정펑크에도 국힘 “부가세 절반 인하하겠다”

민주는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난감한 기재부 “총선 이후 재정상황 종합검토”

4·10 국회 총선거를 딱 일주일 앞두고 여야가 민생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정치권이 경기침체와 고물가에 시달리는 국민생활을 지원하겠다는 데 이론이 있을 수 없다. 문제는 국가재정 상황과 현실성이다. 대부분 공약은 ‘막 던져보는’ 식이다. 재원마련 방안이나 세제 형평성을 따져보면 불가능한 약속들이다.

숙제를 받아든 재정·세제 담당부처인 기획재정부는 난감한 상황이다. 공약 현실화에는 천문학적 재정·조세 지원이 수반되는데, 그 효과와 형평성을 따져봐야 하기 때문이다. 3일 기재부 고위관계자는 “최근 최상목 부총리가 확대간부회의에서 ‘기재부의 시간이 오고 있다’고 언급했는데 여기에 기재부 입장이 녹아있다”면서 “총선 이후 제기된 공약과 대통령 지시사항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반영할 것은 반영하고, 버릴 것은 버리는 절차를 밟지 않겠느냐”고 했다.

기재부가 총선 공약에 대한 재정검토를 미룬 것은 과거의 ‘선거법 위반’ 논란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기재부는 12년 전인 2012년 정치권의 공약에 대한 의견 발표를 공식화했다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제재를 받은 전력이 있다.

난감한 기획재정부 연일 수조원대 예산이 소요되는 총선용 공약이 발표되면서 기재부 입장이 곤혹스럽다. 사진은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일 대구광역시 군위군 사과 생산 농가를 방문, 애로사항을 듣고 있다. 사진 기획재정부 제공

◆다급한 여, 부가세까지 건드리다 = ‘퍼주기 공약’의 포문을 연 것은 여당이다. 지난 1월부터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하는 민생토론회를 24차례 열고 지역·직능별 ‘대국민 약속’을 쏟아냈다. 굵직한 것만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추가 △철도 지하화 △국가장학금 지급 대상 확대 △가덕신공항 건설과 부산 북항 재개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영암과 광주를 잇는 한국형 아우토반 건설 등이다. 모두 수십조~수백조원의 비용이 드는 사업이다. 소요 예산만 수백조원으로 추산된다. 야당은 관권선거로 규정하고 윤 대통령을 경찰에 고발했고, 시민단체는 선관위에 신고하기도 했다.

총선에 임박해서도 판세가 불리하다는 여론조사가 잇따르자 부가세 경감 카드까지 꺼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연일 ‘부가세 경감’ 공약을 내놓고 있다. 지난달 28일엔 서울 동대문구 회기역 사거리 총선 지원 유세에서 “출산·육아용품, 라면·즉석밥·통조림 등 가공식품, 설탕·밀가루 등 식재료 등 서민 생활과 밀접한 분야에 대해 한시적으로 부가가치세를 10%에서 5%로 절반 인하하는 것을 정부에 강하게 요구했다”고 말했다.

모든 상품에는 10%의 부가가치세가 부과된다. 다만 일부 품목에 대해서는 면세하고 있다. 기초생활필수품으로 여겨지는 쌀·고기·소금, 연탄, 양육비 지원을 위한 영유아용 기저귀·분유 등에 대해서는 부가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한 위원장은 이어 지난 1일 부산 사상구 애플아울렛 지원 유세에선 “부가가치세 간이과세자 적용 기준을 현행 연 매출 8000만원에서 2억원으로 상향 조정하겠다”고 했다. 간이과세자가 되면 세금 부담이 덜어지는 효과가 있는데, 이를 연 매출 2억원이 안 되는 자영업자·소상공인에게 무조건 적용하자는 것이다.

◆증세도 모자랄 판에 너도나도 감세 = 하지만 부가세 감면이나 간이과세자 확대는 세수 기반만 약화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부가세율 인하 공약을 처음 제안했던 여당 후보 모임 ‘체인저벨트’는 100대 생필품의 부가세를 6개월간 인하할 경우 세수가 약 5000억원 줄어든다고 추산했다. 간이과세자 기준 상향도 최소 수천억원대 세수를 감소시킨다.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22년 연 매출이 7200만원 이상 1억원 미만인 전국의 일반사업자는 33만5000명이었다. 반면 연 매출이 1억원 이상 2억원 미만인 일반사업자는 50만5000명에 달했다. 앞서 기재부는 간이과세 기준을 8000만원에서 1억400만원으로 상향하면서 해당 조치로 세수가 약 4000억원 줄어든다고 예측했다. 유사한 비율로 간이사업자가 증가할 경우 2억원으로 상향하면 줄어드는 세수는 이보다 훨씬 클 수밖에 없다.

두 공약이 현실화하면 매년 세수가 적어도 1조원 이상 줄어들게 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줄어드는 세수에 비해 공약의 실효성은 미흡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생필품 부가세율 인하의 경우 서민층에 혜택을 제대로 전달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부가세율 인하는 유통단계에도 감면혜택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서민 생계를 도우려면 구체적인 타깃을 설정하고 보조금·바우처 등을 지원하는 형태가 더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또 세무 자료를 제출하지 않는 간이과세자를 대폭 늘렸다가 과세 행정의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

◆야당 “전 국민에 민생지원금” = 야당도 퍼주기 공약 비판에 자유롭지 못하다. 앞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겸 상임공동선대위원장은 “국민 모두에게 1인당 25만원, 가구당 평균 100만원의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제안한다”며 13조원의 예산이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때 ‘코로나 재난지원금’을 지급한 것처럼 고물가에 고통받는 국민에게 예산을 풀어 돕자는 것이다.

기재부 안팎에선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생회복지원금 재원마련을 위해서는 예비비나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해야한다. 추경의 경우 국가재정법상 천재지변이나 전쟁과 같은 국가비상상황이나 극심한 경기침체로 대량 실업이 발생하는 경우여야 편성이 가능하다. 하지만 ‘민생 회복’이란 명분으로 예비비·추경 요건을 충족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기재부, 일단 총선 이후로 = 여당의 부가세 감면과 간이과세자 확대 공약에 대해 “지원 효과와 재정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결정할 예정”이라는게 기재부 세제실의 공식 입장이다. 하지만 부가세 경감을 겨냥한 한 위원장의 연이은 발언으로 난감한 모습이다. 지난해 50조원대 세수결손사태 속에서 그나마 현재 세수 증가세를 이끄는 세목이 부가가치세여서다. 부가가치세는 전체 국세 수입의 20% 이상을 차지한다. 소득세·법인세에 이어 세 번째로 규모가 큰 세목이다. 각종 감세 정책 홍수 속에서 부가세를 또 건드리는 것이 기재부로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도 이를 의식해 지난 1일 확대간부회의에서 “이제 곧 기재부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언급했다. 총선 이후 4월 재정전략회의, 7월 세법개정안 발표를 앞둔 가운데, 정치권의 요구를 한정된 재정 속에 담아내는 것이 기재부의 과제라고 강조했다는 것이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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