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통령 기념사업 찬반 논란 뜨겁다

2024-04-22 13:00:02 게재

대구 박정희, 서울 이승만, 부산 김영삼

공감대 없이 추진, 시민사회 반발 자초

전직 대통령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지자체들마다 찬반 논란이 뜨겁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상황에서 지자체들이 충분한 주민 공감대 형성 없이 사업을 추진해 논란을 자초했다. 현재 논란이 일고 있는 곳은 박정희 기념사업을 추진 중인 대구시, 이승만 기념관을 지으려는 서울시, 그리고 김영삼민주역사기념관 설계공모에 나선 부산시다.

22일 내일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대구시의 박정희 기념사업 논란은 홍준표 대구시장이 불씨를 당겼다. 홍 시장은 지난 3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광주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업적 흔적이 곳곳에 스며있는데 대구에는 대구경북을 대표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 흔적이 보이지 않아 유감스러웠다”며 “동대구역광장을 박정희광장으로 명명하고 박 전 대통령의 동상을 건립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임성종 대구경북추모연대 대표가 지난 16일 대구시의회 앞에서 ‘박정희 기념 사업 반대’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박정희우상화사업반대 범시민운동본부 준비위원회 제공

이후 홍 시장은 기자간담회 등에서 구체적인 계획을 밝혔고, 대구시는 조례안 제정과 추경예산 반영 등을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관련 조례안은 입법예고 기간을 거쳐 시의회에 제출돼 있고, 관련 예산은 1차년도에만 14억5000만원을 책정했다.

하지만 지난 1일까지 입법예고 기간에 개인과 단체가 접수한 의견 886건은 모두 ‘반대’였다. 백 모씨 등 개인 507명은 “명백한 예산낭비이고 대구시민정신으로 꼽히는 2.28민주정신을 부정한 것”이라며 “특히 박 전 대통령은 국민의 기본권과 인권을 침해했고 현재도 여전히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어 매우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대구시가 사업을 강행하자 시민단체들도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박정희 우상화사업 반대 범시민운동분부 준비위원회’는 지난 17일 “대구시의회가 홍준표 시장의 입법거수기를 자처한다면 시의회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저버리는 것”이라며 시의회의 조례안 부결을 요구했다.

서울시는 이승만 전 대통령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다 한발 물러선 상태다.

시는 당초 이건희기증관 건립이 예정된 종로구 송현동 광장에 이승만기념관을 짓는 것을 검토했다. 전직 대통령 자녀들과 김황식 전 총리 등이 대거 망라된 이승만대통령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가 해당 부지를 적극 제안해 추진된 일이다.

하지만 송현동 부지는 종교계 반발에 부딪혔다. 불교를 노골적으로 탄압했던 이승만 기념관을 조계종 본산인 조계사 인근에 짓는 것에 불교계가 강하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여론지형이 바뀐 것도 기념관 사업 추진에서 발을 빼는 요인이 됐다. 홍범도장군 흉상 철거 등 역사 재평가를 시도하던 정권의 기세가 지난 4.10총선을 기점으로 약화됐고 뒤이은 4.19혁명 기념 주간에 곳곳에서 이승만기념관 건립 반대 집회가 열렸다.

당초 이승만기념관 건립에 긍정적이던 오세훈 시장은 4.19혁명 기념행사에 참석해 4.19기념관을 확장 건립해야 한다는 참석자들 제안에 “마음에 깊이 새기겠다. 충분히 검토할 가치가 있는 사업”이라고 응답했다.

서울시 안팎에선 이날 답변으로 오 시장의 입장은 어느 정도 정리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4.19기념관을 지으면서 이승만기념관을 동시에 추진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더구나 송현동 부지는 4.19혁명 당시 학생과 시민 수십명이 다치거나 사망했던 경무대를 바로 옆에 두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승만기념관 건립 추진 유보는 총선 전에 이미 정해졌다”며 “찬성 의견이 있지만 비판 여론도 만만치 않은 만큼 시민 의견을 들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념관을 추진하는 이승만대통령기념재단 측은 서울시와 논의해 추후 기념관 부지에 대해 공식적으로 입장을 발표할 계획이다. 재단에 따르면 지난 5일 기준 이승만기념관 모금에 7만2200여명이 참여했고 모금액은 약 116억5000만원이다.

부산에서는 김영삼 전 대통령 기념관을 두고 찬반 논란이 뜨겁다. 형식적인 공론화 과정을 통해 밀어붙인 것이 문제가 됐다.

논란은 부산시가 자초했다. 박형준 시장은 지난 2021년 6월 취임 직후 “민주주의 역사기념관을 짓겠다”고 발표했고 이후 용역이 진행됐다. 하지만 용역 과업지시서나 시민여론조사 과정에서는 없었던 ‘YS’와 ‘김영삼’ 명칭을 특정한 기념관 건립이 추진되면서 반발이 일었다. 부산시민운동단체연대는 “공론화를 한다더니 갑자기 한 대통령의 업적을 칭송하는 시설물 건립으로 사업의 성질이 변했다”고 비판했다.

부산시는 두차례의 시민토론회를 끝으로 공론화 과정을 마쳤다는 입장이다.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추진하겠다”고 하면서도 지난 3월 ‘YS민주역사기념관’ 건립사업 설계공모를 공고했다. 결과는 6월 발표된다.

부산 중구 중앙공원에 건립되는 YS기념관은 연면적 3934㎡ 규모로 총사업비는 250억원이 투입된다. 이곳에는 민주주의 체험관과 부산 민주주의관, 김영삼 전 대통령 관련 시설물 등이 들어선다.

최세호 이제형 곽재우 기자 seh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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