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감사방해’ 전 공무원 3명 무죄 확정

2024-05-09 13:00:35 게재

대법 “단순보관용 자료” … 감사원 ‘무죄 파기 요구’ 불응

문재인정부 정책에 대한 무리한 감사·검찰 수사에 제동

문재인정부에서 진행된 원전정책(월성원전 1호기 조기폐쇄 등)에 대한 현 정부의 감사원 감사에 이은 검찰 수사가 무리하게 진행된 것으로 드러났다.

대법원이 월성 원전 1호기와 관련해 감사원이 요구한 자료를 삭제해 감사를 방해하고 공용전자기록을 손상했다는 검찰의 공소사실에 대해 모두 무죄를 확정한 것이다.

감사원이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항소심 판결을 파기해달라고 의견서까지 제출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9일 오전 공용전자기록손상, 감사원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산업통상자원부 전 국장급 공무원 A씨와 과장 B씨, 서기관 C씨 등 3명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앞서 감사원은 월성원전 의혹에 대해 감사를 진행해 월성 1호기 원전을 부당하게 조기폐쇄 및 가동중단하게 한 혐의로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과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 등을 수사의뢰하고 A씨 등 전 산업부 직원 3명에 대해선 자료 삭제 등 감사방해 행위를 했다며 징계를 요청한 바 있다.

이에 검찰은 감사원 감사 결과를 토대로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그 결과 백 전 장관 등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기소하고 A씨 등에 대해서도 감사원 감사를 방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A씨와 B씨는 감사원의 자료 제출 요구 직전인 2019년 11월쯤 월성 1호기 원전 관련 자료를 삭제하라고 지시하거나 이를 묵인·방조한 혐의 등을 받았다.

부하직원이던 C씨는 같은 해 12월 2일 오전에 감사원 감사관과의 면담이 잡히자 일요일인 전날 오후 11시쯤 정부세종청사 산업부 사무실에 들어가 약 2시간 동안 월성원전 관련 자료 530건을 지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감사원 감사 활동을 방해하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받는다.

1심은 A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B·C씨에는 각각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감사원이 제출을 요구하는 자료를 제출하지 않고 삭제하기까지 해 감사원은 한국수력원자력의 월성원전 조기폐쇄 결정과 관련한 산업부의 개입 의혹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다”며 “이 때문에 감사 기간이 예상했던 기간보다 7개월가량 지연되는 등 감사원의 감사를 방해했다”고 판시했다. 다만 C씨가 자료 삭제를 위해 산업부 사무실에 침입했다는 방실침입 혐의는 무죄 판단했다.

이들은 1심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뒤 지난해 인사혁신처 징계위원회를 거쳐 해임 처분됐다.

2심은 이같은 1심 유죄 판단을 뒤집었다.

2심 재판부는 “이 사건 자료는 담당 공무원이 개별적으로 보관한 내용으로 공용전자기록 손상죄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며 “공공기록물에 해당하는 중요 문서는 문서관리 등록 시스템에 등록돼 있고, 상당수 파일은 다른 공무원의 컴퓨터에도 저장돼 있어 손상죄 객체가 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고 공용전자기록 등 손상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특히 2심 재판부는 “이 사건 삭제 파일을 공용전자기록으로 보기 어려운 점에 비춰 범위를 넓힐 경우 공무 보호에 아무런 지장이 없는 행위까지 처벌 대상이 될 위험이 상당하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오히려 감사원 감사과정의 문제를 지적했다. 재판부는 “법령에서 정한 절차에 따른 감사활동으로 보기 어렵고, 디지털 포렌식 또한 적법하게 실시되지 않은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면서 “감사원법 위반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오히려 “감사 지연은 감사원의 부실한 업무 처리로 인한 결과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며 피고인들의 행위로 인해 감사 방해의 위험이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아울러 “감사원법에 따르면 감사를 방해한 경우 모두를 처벌 대상으로 하고 있어 감사원법 위반죄가 광범위하게 적용될 우려가 있는 만큼 범죄 구성요건을 엄격히 해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방실침입 혐의에 대해서도 “사무실의 평온 상태를 해친 행위로 보기 어렵다”며 1심과 마찬가지로 무죄로 판단했다.

당초 검찰은 이들이 백 전 장관, 채 전 비서관,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 윗선 지시에 따른 위법행위를 은폐하기 위해 자료 삭제 등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봤다.

감사원도 지난 2일 대법원 판결에 앞서 월성 1호기 원전 관련 자료를 삭제한 혐의로 기소된 산업부 공무원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항소심 판결을 파기해달라고 대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했다.

감사원 의견서에는 월성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에 대한 감사는 적법했고, 산업부 전 공무원들의 자료 삭제로 감사 방해 결과가 발생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이번 사건에서 감사 방해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권력자의 지시로 법과 원칙에 맞지 않는 행위를 한 경우일수록 관련자들이 자료를 제출하지 않거나 삭제할 것이라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감사원의 의견과 검찰의 상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무죄로 판단한 원심 판결에 대해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상고 기각해 무죄를 확정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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