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도서관에 가다│서울 봉영여자중학교 도서관

독서치료로 '마음의 문'을 열다

2014-08-04 10:44:16 게재

책 매개, '나의 꿈찾기' '왕따' 등 다양한 주제로 대화 … 사서·친구들과 어울리며 학교에 적응

건전하게 스트레스 해소하고 자존감 높여 … 부모참여 행사 통해 사춘기 딸과 엄마, 서로 이해

지난 3월 29일 봉영여자중학교 독서치료동아리 도란도란 책모임 활동을 하는 학생들이 '누구에게나 우울한 날은 있다'라는 주제도서를 읽은 후 독후활동으로 '나만의 감정책' 만들기를 하고 있다. 이 활동에서 학생들은 주로 친구, 학업 문제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사진 봉영여자중학교 도서관 제공


서울 양천구 봉영여자중학교 도서관의 독서치료동아리 '도란도란 책모임'이 학생들과 학부모들 사이에서 호평 받고 있다. 단순히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을 넘어 학생들이 책을 매개로 '내면의 나'를 바라보며 자신의 감정 상태를 인지하고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평이다.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던 학생들이 동아리 활동을 계기로 생활에 재미를 붙인 사례도 상당수다.

담임 통해 상담 필요한 학생 추천

독서치료는 책을 매개로 사람들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는 심리상담의 한 유형이다. 상담을 전공한 전윤경 사서는 학생들이 자신의 내면을 보다 잘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6~9명 내외의 소규모 모임 여러 개를 꾸려 독서치료 과정을 진행하는 동아리를 만들었다.

지난해 20명으로 시작했으며 올해는 50여명의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다. 선착순 신청에 150여명이 지원, 여건상 다 함께 할 수 없어 학생 수를 조정했을 정도로 호응이 높다.

전 사서는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기에는 유대감을 형성하기 전에는 마음을 열지 않는다"면서 "책을 사용해 주인공과 같은 경험이 있었는지 묻고 그 때 자신의 심정은 어떨 것 같은지 묻는 식으로 이야기를 해 나가면 상당수의 학생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고 말했다.

사실 학교에는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 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학교 폭력을 휘두르는 '일진'이 있는가 하면 '왕따'를 당하는 학생도 있다. 그렇게까지 문제가 불거지지는 않더라도 초등학교와는 다른 경쟁 위주 수업에 친구·가정 문제 등으로 고민하는 학생들이 상당수다.

전 사서는 "각 반 담임교사와 상의, 학교생활에서 오는 문제들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추천받은 학생들이 30% 정도다"면서 "초등학교 때는 전교회장까지 했었으나 중학생이 된 이후 반 아이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던 학생이 있었는데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친구 관계가 부드러워졌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새터민으로 한국 사회·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던 학생, 정서행동장애의 경계에 있던 학생 등이 동아리 활동을 통해 친구를 사귀며 차츰 학교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 깨달아야"

동아리 수업은 '치유적 책읽기'를 하는 1권의 책을 선정, 사서와 읽은 후 책과 관련한 대화를 나누고 다양한 독후활동을 하는 식으로 구성된다. 예컨대 지난 3월 29일에는 '누구에게나 우울한 날은 있다(원제 The Blue Day Book)'를 주제도서로 선정, 해당 책을 읽고 서로의 감정을 나눴다.

사서는 '이 작품에 나오는 동물들처럼 손 까딱 하기 싫을 정도로 우울했던 적이 있었나요' '자신이 하찮고 비참하게 느껴져서 몹시 보잘 것 없다고 느꼈던 적이 있었나요' 등의 질문을 마련, 학생들이 자신의 내면에 가깝게 다가가 이야기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어 학생들은 '나의 감정책'이라는 이름을 붙인 자신만의 책을 만드는 독후활동을 했다. 다양한 종이를 오려 붙이고 자신의 감정을 써서 1권의 책을 완성한 것.

'내 안의 감정 이해' '나 바로보기' '가족' '친구' '왕따' '나의 꿈 찾기' 등 다양한 주제를 가진 책을 읽는 동안 학생들은 자신의 스트레스를 건전하게 해소하는 방법을 찾고 친구들과 고민을 나누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된다. 내가 누구인지 이해하고 자존감을 향상시키는 것은 물론이다.

전 사서는 "학생들이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것,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게 중요하다"면서 "아픈 아이들이 이 과정을 통해 정신적으로 쉬면서 친구들과 맛있는 것을 먹고 속상했던 일을 이야기하며 한 주를 견딜 수 있는 힘을 얻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동아리에서는 김유정 문학관 탐방, 연극·영화·전시 관람, 요리 대회 등 다양한 체험 활동을 진행한다.

2년째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는 2학년 반규리양은 "'용기'라는 책을 읽었는데 저는 '싫을 때 싫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부족하다'고 이야기했고 친구들은 저마다 겪고 있는 다양한 상황과 가치관에 따라 다른 답을 했다"면서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규리양의 어머니 안수임(45)씨는 "아이가 여자중학교에서 생활하는 것을 쉽지 않아 했는데 동아리 활동을 통해 학교를 좋아하게 됐다"면서 "사서와 함께 다양한 체험을 하는 것도 아이에게 좋은 경험이 됐다"고 말했다.

"딸 또래 아이들의 생각 알 기회"

도서관은 지난달 18일에는 학부모들과 함께 하는 '한여름밤의 힐링 북토크' 행사를 개최했다. 학부모들에게 동아리 활동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 것.

활동은 부모들과 하는 게임으로 시작, '우리 엄마 맞아요?'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책을 함께 읽고 엄마는 딸에게, 딸은 엄마에게 편지를 쓰는 식으로 구성됐다.

규리양은 "엄마랑 많이 얘기한다고 생각했는데 얘기하지 않는 것도 많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면서 "고등학생 오빠가 있어서 엄마가 오빠를 더 챙겨줘서 서운했다는 내용을 적었는데 엄마도 같은 내용을 적으며 미안해해서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소감을 말했다.

안씨는 "얘기를 잘 하지 않는 사춘기 딸의 마음을 알게 됐고 딸 또래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생활하는지 알 수 있는 기회가 됐다"면서 "다음에도 또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독서치료는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일반화된 상담의 한 유형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시작하는 단계다. 현재 30여명의 관심 있는 교사들이 교과와 연계하는 '독서치료 활용수업'의 커리큘럼을 개발하고 있다. 올 연말 자료집을 발간하는 것이 목표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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