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피해자들 '2차 피해' 시달려

2015-01-30 17:43:18 게재

성폭력 피해자 5명 중 2명 '이사,도피', 가족해체도 13% … 수사·재판과정 어려움 호소

납치·감금·성폭행·성매매 피해자인 40대 주부 B씨는 사건 후 정부로부터 주거 및 주거이전비 지원과 치료지원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극심한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 탈모가 급격히 진행돼 뒷머리가 완전히 빠지고 우울증 때문에 자살충동을 계속 느끼고 있다. 반복적인 호흡곤란으로 3개월에 한 번씩은 입원을 하는 상태다.

살인미수로 가족이 중태에 빠진 50대 여성 C씨는 사건 후 딸과 함께 살던 집을 팔았다. 치료비 마련 때문이다. 정부의 치료지원이 있고 자신도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었지만 간병 때문에 돈을 벌 수 없는 상황이다. 그는 딸을 다른 집에 맡기고 떨어져 살고 있다. 그는 가해자가 출소 후 보복할지 모른다는 불안에 떨고 있다.

◆5명 중 1명 "임시도피 경험"= 범죄 피해자(가족 포함) 중 상당수가 사건 이후 정부 지원제도에도 불구, 경제적·정신적으로 계속 고통 받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도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29일 형사정책연구원은 범죄피해자 987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 939명 중 19.9%(187명)은 범죄피해를 입은 후 임시도피를 경험했으며 이사를 한 응답자가 17.1%(191명)에 달했다. 실직을 했다는 응답자도 14.8%, 별거·이혼 등 가족해체를 경험한 경우도 13.6%로 나타났다.

유형별로는 가정폭력 피해자 중 36.8%가 임시도피를, 성폭력 피해자의 39.9%가 이사 또는 임시도피를 경험했다. 가해자에 의한 보복우려, 이웃의 시선 등의 이유 때문이다. 폭행상해 피해자 중 20.8%는 실직 경험이 있었다.

살인 피해자들의 경제적·정신적 회복은 특히 더딘 것으로 조사됐다. 일반 강·절도 피해자의 경우 경제적·심리적 회복 수준은 각각 6.66점, 5.90점을 기록한 반면 살인 피해자는 4.73, 3.77점으로 낮게 나타났다. 가정폭력 피해자는 경제적인 회복수준이 4.62점, 성폭력 피해자는 심리적 회복수준이 4.19점으로 낮았다.

범죄피해자 중 상당수는 경찰을 통해 정부 및 민간의 범죄피해자 지원제도를 인지,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637명 중 32.2%인 205명이 피해자 지원기관을 알게 된 계기가 "경찰에서 알려줬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범죄피해자들이 가장 시급히 필요한 것은 경제적 지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응답자 620명 중 30.3%에 달하는 188명은 생계비, 장례비, 학자금, 각종 생필품 등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답했으며 다음으로 의료지원이 14.7%(91명)를 차지했다.

◆"같은 조사 반복 고통" 41% = 한편 보고서에 따르면 수사를 받은 경험이 있는 피해자 401명 중 41.1%에 달하는 165명은 이 과정에서 "같은 조사를 여러 차례 받았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수사기관의 사건처리 결과가 부당했다"는 응답도 22.4%(90명), "사건과 무관한 사생활에 관한 질문을 했다" "취조하듯이 무례하게 대했다"는 응답이 각각 17.0%(68명)로 뒤를 이었다. "원치 않는 합의를 권유했다"(12.0%) "피해가족을 범인인 것처럼 의심하거나 심문했다"(10.5%)는 응답도 있었다.

재판 경험이 있는 피해자 391명 중 가장 많은 88명(27.6%)은 "재판에서 할 말이 많았지만 말할 기회를 못 얻었다"는 점을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다.

황지태 연구위원은 "특히 성폭력 피해자들이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어려움을 호소한 경우가 많았는데 여성에 대한 수사기관의 보이지 않는 편견, 무언의 폭력 등의 요인이 결합돼 있을 개연성이 작지 않아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어 "범죄피해자들의 회복 정도가 본인여부, 성별, 범죄유형별로 차이를 보이는데 피해지원서비스에 대한 지원서비스에 있어 좀 더 세심하게 신경써야 할 지점들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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