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임을 위한 행진곡' 작곡한 김종률 광주문화재단 사무처장

"제창거부, 민주주의 후퇴가 빚은 결과"

2016-05-18 10:59:32 게재

"박근혜 대통령 의지 없다 … 정권교체가 해법"

"정말 답답하네요. 국론분열이라구요. 예전부터 노래를 불렀는데 국론이 분열됐습니까. 5·18 전야제 때 수많은 사람들이 목 터져라 불렀는데 국론이 분열됐냐고요."

'임을 위한 행진곡'(노래악보)을 작곡한 김종률(사진) 광주문화재단 사무처장은 5월이 되면 수년째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지내고 있다. 여기저기에서 찾아온 언론을 상대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거부한 현 정부를 비판해 보지만 도무지 답답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그가 17일 오후 5·18 기념식 전야제에 참석해 답답한 심정을 토해내 듯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목 터지게 불러대는 게 먼발치에서 보였다.

전남대 78학번인 그는 음악을 좋아하는 청년이었다. 전남 강진이 고향인 그는 1979년 김영랑 시인과 강진을 소재로 한 노래 '영랑과 강진'으로 MBC대학가요제에서 은상을 받을 정도로 '끼'가 많았다.

그러나 5·18이 그의 인생을 '확' 바꿨다. 어깨동무를 함께 하며 시위에 참여했던 동료가 계엄군 곤봉에 무참히 유린당하고, 심하게 훼손된 광주시민의 시신을 숨죽이며 지켜봐야만 했다. 그는 "살아남아 있다는 죄책감 때문에 더 이상 음악을 할 수가 없었다"면서 고개를 창밖으로 돌렸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2년 4월 5·18 2주년을 준비하면서 만들어졌다. 그래도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노래패 동료들과 함께 며칠 동안 머리를 쥐어뜯었다. 경찰이 학교에 상주할 정도로 엄혹한 시절이라 공개적인 활동은 엄두도 못 냈다. 그러던 차에 5·18 시민군 대변인이었던 윤상원 열사와 야학을 했던 박기순씨가 영혼결혼식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정말 좋은 소재라는 생각이 들어 '노래극'을 준비했다.

노래극에 사용될 음반은 당시 광주에서 문화운동을 하던 소설가 황석영씨 집에서 소리가 새나가지 않도록 군용 담요로 창문을 둘러막은 뒤 소형 카세트를 놓고 1박 2일 동안 만들었다. 틈틈이 써놓았던 7곡을 조금 바꾸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4시간 만에 작곡한 뒤 30분짜리 노래극 '넋풀이-빛의 결혼식' 음반에 마지막 합창곡으로 삽입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가사는 백기완 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1980년 12월 서대문구치소 옥중에서 지은 장편시 '묏비나리' 일부를 고쳐 황석영씨가 붙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2년 10월 전남대 총학생장이었던 박관현 열사 추모식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소개됐고, 이후 기독교단체를 통해 전국에 전파됐다. 당시 그는 군대에 입대해 전파과정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그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북한과 연관돼 있다는 '괴변'에 느닷없이 목소리를 높였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너무 안타깝습니다. 정부도 그런 게 아니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박근혜 대통령도 전향적 검토를 지시한 것 아닙니까."

그에 따르면 가사에 나오는 임(님)은 5·18 희생자와 광주시민, 민주·자유를 위해 노력하신 분들을, 그리고 민주주의를 지칭한다. 그리고 '새날'은 군부독재가 없는 세상을 의미한다.

김 사무처장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거부가 '5·18에 대한 역사적 훼손'과 연관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노래가 정리되면 다른 논리를 가지고 5·18의 역사적 가치를 훼손시킬 것"이라면서 "그런 속셈이 빤히 보이기 때문에 기필코 기념곡 지정과 제청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 정부에 대해선 기대가 없었다. "보훈처장 얘기하는데 박근혜 대통령 뜻이다. 따라서 민주주의가 진전되고 정권이 교체되면 당연하게 제창될 것이다"라고 해법을 제시했다.

그는 광주와 자신에게도 문제를 돌렸다. 광주와 자신이 5·18에 대한 역사적 가치를 지키려고 노력했는지, 또 자부심을 가지고 살고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발전이 있다고 강조했다.

김 사무처장은 "광주시민이 많이 지쳐 있는 것 같다"면서 "1980년 5월 우리는 하나였고 정말로 용감했다는 자부심을 자녀들에게 가르치고 이를 교육 자료와 문화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과제를 완성하기 위해 해마다 5월이 되면 한달 동안 금남로와 아시아문화전당 일대에서 광주정신을 전 세계에 알리는 '메이 페스티벌'을 여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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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국진 기자 kjb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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