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민주화운동 36주년

교과서에서 '계엄군, 발포' 단어·사진 사라져

2016-05-18 11:24:04 게재

5·18 재단 등 시민단체, 교과서 폐기·수정 촉구 … "민주화운동 왜곡 및 비하 처벌법 필요"

올해 나온 초등학교 6학년 사회교과서에 나온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술내용에는 '계엄군'과 '발포'라는 단어가 없다. 지난 2011년 발행된 교과서에 있던 계엄군의 무자비한 진압사진과 시민을 향해 발포하는 사진도 사라졌다. 5·18에 대해 광주시민의 폭동 또는 북한개입설을 주장하는 극우 보수 세력의 주장도 잇따르고 있다.


5·18재단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오래전 '폭도'라는 이름으로 진실이 왜곡되고 통제됐음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찾는 작업을 꾸준히 이어왔는데 36년이 지난 지금도 이런 논란에 서 있다는 점이 너무 안타깝고 억울하다"며 "반드시 진실을 밝히고 역사를 왜곡하는 자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1년보다 후퇴된 역사인식 = 올해 바뀐 교과서의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면 지난 2011년 발행된 교과서 내용과 많은 차이가 있다. 가장 큰 차이는 5·18의 원인과 결과가 바뀐 것이며 계엄군과 발포하는 단어와 사진이 삭제됐다.

2016년 발행 교과서에는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는 민주주의의 회복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일부 군인들은 군대를 동원하여 이를 폭력적으로 진압하였고, 이 과정에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였다'라고 되어있다. 지난 2011년 5·18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사실은 아예 반영되지도 않았다.


지난 2011년 발행된 교과서 내용은 '박정희 대통령이 죽은 후 민주주의가 회복되리라는 국민의 기대가 커져갔으나 전두환을 중심으로 일부 군인들이 정변을 일으켰다. 이에 1980년 초부터 시민과 대학생들의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위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전두환은 비상계엄을 확대해 정치인과 시민들을 체포하였다. 특히 광주에서는 계엄군에 의해 많은 시민이 죽거나 다치는 비극이 발생하였다. 1980년 광주에서 일어난 이 민주화 시위를 5·18 민주화운동이라고 한다'고 나와 있다.

이에 대해 시민사회단체들은 2011년보다 더 후퇴된 역사인식으로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이들은 "마치 시위가 일어났기 때문에 계엄군이 투입된 것처럼 계엄군의 학살행위와 대규모 항쟁의 인과관계를 틀리게 서술했다"며 "또 '계엄군' '발포'라는 서술과 사진이 없어지면서 이 교과서를 본 학생들은 광주시민을 죽게 한 장본인이 누군지, 어떻게 죽였는지 알 수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교육부가 뒤늦게 교사용 참고자료를 내기는 했지만 5·18재단 등 시민단체들은 역사를 왜곡한 교과서 내용을 직접 수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극우보수세력들 5·18 비방·폄하 잇따라 = 5·18 기념재단과 광주시가 5·18 광주민주화운동 왜곡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신고 센터까지 운영하고 있지만 5·18을 왜곡·축소하는 움직임은 사회곳곳에 노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지난달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시민 등을 비방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보수논객 지만원(75)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5·18 당시 촬영된 사진에 등장한 시민 4명을 '5·18 때 광주에서 활동한 북한특수군'이라는 의미의 '광수'라고 지칭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씨는 또 같은 홈페이지에 천주교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를 두고 '신부를 가장한 공산주의자들'이라고 비방한 혐의도 받고 있다.

현직 경찰 간부가 2014년부터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일베)와 인터넷매체 뉴스타운에 실린 5·18북한군 개입설 등 5·18민주화운동을 왜곡·폄훼하는 글을 자신의 SNS에 실어 논란을 빚기도 했다.

군부대 내에서는 5·18민주화운동을 북한군 소행이라며 왜곡된 안보교육을 실시하기도 했다. 지난 3월 5·18 기념재단과 군 인권센터 등에 따르면 지난해 4~5월쯤 육군 모 부대 신병교육대에서 안보교육 강연자로 나선 탈북자가 "4·19혁명과 5·18민주화운동은 북한 간첩들이 남한에 넘어와 사람들을 선동해 일으킨 폭동"이라고 강의했다. 이에 대해 5·18 기념재단은 "역사왜곡대책위원회를 통해 국방부에 재발 방지와 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요구했다"며 "곳곳에서 일어나는 5·18 왜곡 시도에 대응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5·18 왜곡, 강력 처벌해야 = 문제는 정부와 우리 사회가 '민주화운동'으로 공식 인정한 5·18 항쟁에 대한 왜곡과 폄훼가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규제하기 위한 정부의 태도가 미온적이라는 점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은 보수 정권이 들어선 이후 대통령 비판 등 정부 정책 왜곡에 대해서 적극적·공격적으로 대응하면서도 5·18 왜곡에 대해선 손을 놓고 방치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5·18 왜곡에 대해 법적으로 강력한 규제를 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현재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 다수의 유럽 국가들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을 법에 명시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형법의 국민선동죄로, 프랑스에서는 게소법(Gayssot Law)으로 처벌받으며, 오스트리아에서는 최대 20년간 감옥생활을 해야 한다.

최경환 국회의원 당선자(광주 북구을,국민의당)는 20대 국회에서 첫 입법안으로 '5·18민주화운동 왜곡 및 비하발언 처벌법을 발의할 계획이다. 최 당선자는 "5·18민주화운동을 비롯한 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 및 비하발언 처벌법을 통해 민주화 운동을 왜곡·날조하는 행위를 엄히 처벌함으로써 헌법상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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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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