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 가입 25주년, OECD 가입 20주년인데 ①

한국은 아직 노동기본권 후진국

2016-12-12 15:16:31 게재

ILO 4개 핵심협약 비준 외면 … OECD 가입 때 한 약속도 안 지켜

우리나라가 국제노동기구(ILO)에 가입해 올해로 25주년을 맞았지만 노동기본권은 후진국을 못 벗어나고 있다. 189개 ILO협약 중 한국 정부가 비준한 것은 29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63개)에 비해 절반에도 못 미친다.

국제노총(ITUC)은 2014년과 2015년 한국의 '국제권리지수'를 '노동기본권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나라'인 최하위 5등급을 매겼다. 이 분류에 따르면 한국은 방글라데시, 짐바브웨 등과 동급인 셈이다.

정부 "핵심협약 비준 어렵다" = 1991년 12월 9일 ILO에 가입했지만, ILO의 핵심협약을 비준하지 않아 국제사회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1998년 6월 ILO는 제86차 총회에서 △차별 금지(제100호·111호) △아동노동 금지(제138호·182호) △강제근로 금지(제29호·105호) △결사의 자유(제87호·98호) 등 4개 분야 8개 협약을 핵심협약으로 정했다. 또한 회원국은 8개 협약을 반드시 비준해야 하고 비준하지 않더라도 협약내용을 적용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결사의 자유(제87호·98호) △강제근로 금지(제29호·105호) 4개 협약을 비준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강제노동 논란이 있는 공익근무요원이 의무병역제 대체방안이기 때문에, 또 파업참가 때문에 징역형을 받을 경우 강제노역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강조근로 금지'의 29호·105호는 비준이 어렵다고 주장한다.

모든 노동자가 자주적으로 노조를 설립하고 가입할 수 있는 권리와 정부에 의한 노조해산이나 활동중지 금지, 노조활동에 따른 차별금지, 자발적인 단체교섭 보장하는 '결사의 자유'의 87호·98호 협약에 대해서도 정부는 "공무원 단결권과 관련한 국내 법조항이 ILO 협약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다"고 발뺌한다. 하지만 지난해 8월 현재 ILO 186개 회원국 가운데 87호 협약은 153개국, 98호 협약은 164개국, 29호 협약은 178개국, 105호 협약은 175개국이 비준했다. 핵심협약 비준만 보면 우리나라는 후진국 중에서도 후진국인 셈이다.

노조조직률은 OECD 평균의 1/3 수준 = 전문가들은 이 중에서도 '결사의 자유'가 더 시급하다고 이야기 한다. 이광택 국민대 법학과 명예교수는 "강제노동 금지도 시급하지만 최저임금이나 비정규직 문제 같은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려면 노조설립과 활동을 보장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우리나라의 지난해 노조조직률은 10.2%이다. 이는 OECD 평균인 27.8%의 1/3 수준으로 29개 회원국 가운데 끝에서 4번째다. 낮은 노조조직률은 노동자에게 법적으로 보장된 최소한의 자기방어권이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는 ILO에 가입한 뒤 단결권 등 기본노동권을 보장하라는 수많은 권고를 받고 있지만 대부분 묵살하거나 거꾸로 가고 있다. 정부는 공무원노조와 이주노조에 대한 설립신고 반려, 전교조 불법화 등으로 ILO 결사의 자유와 배치되는 정책을 폈다. 박근혜정부는 전교조의 법외노조 통보에 대해 ILO로부터 3차례나 철회를 권고 받고도 무시했다.

ILO는 올해 3월부터 고용노동부가 노조가 있는 1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단체협약시정명령 제도를 실시하는 것이 국제기준을 위반했다며 "교섭 당사자들의 자율에 맡겨야 할 영역에 정부가 단체협약을 변경할 목적을 가진 조치를 더 이상 취하지 말 것"을 9일 권고했다. ILO는 정당한 파업권 행사를 방해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쟁의행위의 성격이나 규모, 형태에 관계없이 대부분 경찰이 개입해 노조간부 등에 대한 체포나 구금이 잦다.

GDP 2.5배 커졌지만 노동권은 제자리 = 1996년 12월 12일 김영삼정부는 세계화전략에 따라 선진국 클럽인 OECD에 가입했다. 노사관계법령을 국제기준에 맞추겠다는 외무부장관의 약속편지까지 제출하고서야 어렵게 회원국이 됐다. 이후 2007년까지 OECD의 특별감시활동(모니터링) 대상이 되는 수모를 겪었다.

1996년 가입당시 OECD 노동조합자문기구(TUAC)는 ILO협약 87호·98호 비준을 촉구하면서 △복수노조 허용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노사자율 결정 △교원·공무원의 단결권 보장 △필수공익사업장 축소 △해고자 및 실업자의 노조가입 허용(자율결정) △민주노총 합법화 △제3자 개입금지 폐지 △형법상 업무방해죄 적용의 개선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제대로 이행된 것을 민주노총 합법화, 제3자 개입금지 폐지 밖에 없다. 복수노조 허용과 필수공익사업장 축소는 일부 개선에 그쳤다.

정부는 OECD 가입 20주년을 맞아 "국내총생산(GDP)와 1인당 GDP는 당시보다 2.5배 커졌다"고 자랑하는 자료를 냈지만, 노동기본권은 20년이 지나도록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셈이다.

['ILO 가입 25주년, OECD 가입 20주년인데' 연재기사]
① 한국은 아직 노동기본권 후진국 2016-12-12
② 헌법·법률부터 노동기본권 제약 2016-12-13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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