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노조동의 없는 성과연봉제 무효"

2017-05-19 10:42:30 게재

본안소송 첫 승소판결

"통념상 합리성도 없어"

문재인정부가 성과연봉제 원점 재검토를 고려하고 있는 가운데 박근혜정부의 일방적 성과연봉제 도입이 무효라는 법원의 본안소송 첫 판결이 나왔다. 새정부의 공약이행에 법적인 정당성이 부여한 셈이다. 또한 지난해 정부 지침에 따라 이사회 의결만으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다른 금융·공공기관의 본안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18일 노조 동의를 받지 않은 사측의 일방적인 성과연봉제 도입은 위법하다는 법원의 첫 판결이 나와 문재인정부의 성과연봉제 원점 재검토 공약이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사진은 지난해 9월 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노총, 민주노총 등 양대노총 공공부문 노동조합 공동대책위원회의 성과연봉제 도입 중단 촉구 기자회견 장면. 연합뉴스 서명곤 기자


18일 서울중앙지법 제41민사부(권혁중 재판장)는 금융노조 주택도시보증공사지부(지부) 조합원 10명이 "노동자 과반수 동의 없이 도입한 성과연봉제는 무효"라며 사측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주택도시보증공사는 지난해 5월 기획재정부의 성과연봉제 도입 지침에 따라 이사회 의결로 성과연봉제 적용대상·비중·차등지급률을 확대하는 내용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했다.

이에 지부 노동자들은 "성과연봉제 확대로 일부 노동자가 임금에 상당한 불이익이 있고 근로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조의 동의를 얻지 않은 것은 근로기준법 위반"이라며 지난해 11월 취업규칙 무효확인소송을 냈다. 근로기준법은 취업규칙을 노동자에게 불이익하게 변경할 경우 과반수 노동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사는 "(성과연봉제 확대 등이)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에 해당하지 않고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어 적법하다"며 지부의 동의를 구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취업규칙 개정으로 하위평가를 받게 되는 노동자는 기존 임금이 저하될 것으로 보인다"며 "(전체 노동자) 임금총액이 기존 급여체계에 비해 증가했다 하더라도 개인에 따라 유·불리의 결과가 달라진다면 노동자에게 불이익한 것으로 취급해 근로기준법에 따른 변경절차를 따라야 한다"고 판단했다.

또한 재판부는 "방만경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공기관 개혁의 일환으로 성과연봉제 확대 추진 필요성이 인정되지만 사용자가 노동자들의 명백한 반대 의사표시에도 일방적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할 정도로 절실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한편 기재부에 따르면 지난해 119곳 공기업·준정부기관 가운데 49곳 기관이 노사합의 없이 이사회 의결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다. 이들 중 많은 수가 본안소송 중이다.

이날 한국노총 금융노조는 성명을 내고 "법원의 성과연봉제 무효 판결을 환영한다"며 "금융·공공부문에 강제도입된 모든 성과연봉제를 즉시 원상회복할 것"을 요구했다. 이어 "성과연봉제를 핑계로 사용자협의회를 탈퇴한 금융노조 사업장 경영진은 복귀해 산별교섭을 복원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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