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환율조작국 다시 '안갯속'

2017-07-07 10:55:56 게재

금융연 "미, 요건바꿔 지정 가능성"

미 연준 '중국 국제수지 조작' 의심

FTA재협상·통화절상압박 등 악재

한국과 중국이 '미국의 환율조작국' 악몽에 다시 시달리고 있다.

지난 4월 미국 재무부 환율보고서에선 다행히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받지 않았지만 석달이 지난 요즘 세계 무역시장 사정이 그때보다 더 심상찮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무역적자가 올들어 5개월간 2331억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13% 이상 늘었다는 게 가장 큰 골칫거리다. '미국 무역적자를 줄이겠다'고 공언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멕시코 캐나다와 함께 한국과 중국을 '불공정한 거래를 개선해야 하는 나라'로 콕 찝은 점이 예사롭지 않은 이유다. 오는 10월 환율조작국 지정을 염두에 둔 사전 정지작업이 아니겠냐는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환율조작국 지정 앞 정지작업? =한국금융연구원의 환율보고서관련 분석도 이런 우려감을 반영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있는 만큼 다른 무역수지 흑자국들과 공조해 대응을 서둘러야 한다는 게 금융연구원 판단이다.

이윤석 한국금융연구원 국제금융연구실장은 6일 '한국금융산업과 서비스산업의 미래'를 주제로 열린 한국국제경제학회 40주년 하계정책 세미나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올해 4월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지 않았지만 모호한 지정기준을 갖고 있어 그동안의 강경 무역정책 기조와 과거 선례를 고려할 때 민간 압력을 이유로 지정을 추진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미국 재무장관 재량에 따라 환율조작국 지정요건이 변경될 수 있어 향후 지정요건 변경을 통해 주요 교역국에 지정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국제수지 균형조정을 위한 협상을 개시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돼 협상 과정에서 미국으로부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이나 원화 강세 유도 압력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앞서 미국은 한국을 1988년 10월 환율조작국으로 지정, 1년 반 동안 유지했었다.

미국 재무부는 △대미 무역흑자가 200억 달러 이상이고 △경상수지 흑자가 해당국 국내총생산(GDP)의 3% 이상이며 △자국 통화가치 상승을 막기 위해 한 방향으로 외환시장 개입을 반복적으로 단행하는 등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하는 국가를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다.

미 재무부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지난 4월 14일 발간한 환율보고서에서 한국은 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 7%, 대미 무역흑자 277억 달러로 2가지 요건을 충족했지만, 외환시장은 GDP 대비 0.5%, 66억 달러 규모 매도 개입을 한 것으로 평가하면서, 환율조작국 전 단계인 관찰대상국으로 지정하는 데 그쳤다.

당시 3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된 국가는 없으며 중국 일본 독일 대만 스위스 등 6개국이 한국과 함께 관찰대상국으로 지정됐다.

이 실장은 향후 중국, 독일, 일본, 대만, 스위스 등 다른 경상수지 흑자국들과 긴밀한 공조를 통해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가 경상수지 흑자국들의 환율조작보다는 미국의 경제구조에 기인하고 있다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확대는 재정적자 축소에도 민간저축이 지속 감소한 데 따른 것이라는 주장이다.

환율조작국과 관련한 중국 사정도 악화일로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미 연방준비제도(FED 연준)는 최근 '중국의 경상수지' 보고서를 통해 여행관련 쇼핑 오락 유흥 목적으로 분류된 중국인들의 해외지출 상당부분이 금융자산 부동산 투자에 사용됐고 그 기간이 12개월을 초과한다고 분석했다.

우회 자본유출로 경상수지 축소 의심 = 연준은 중국 해외여행 지출이 2014년부터 급증했는데 공교롭게도 중국 경제성장률 둔화와 위안화 약세로 중국 정부가 자국민 해외투자를 제한하기 시작한 바로 그 시점과 맞물린다는 점에 주목했다. 중국 거주자들이 정부 눈을 피해 우회적으로 해외투자를 한 것이라는 추론을 낳게 하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중국 여행지출이 사실은 자본유출이었고 중국 정부가 사실상 국제수지를 조작한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셈이다.

연준은 201년 9월부터 2016년 9월까지 중국 여행수지로 위장된 자본유출액을 1900억원달러(GDP 대비 1.7%)로 추정하고 있다.

이 기간 경상수지 흑자가 GDP대비 2.4%인 점을 고려 실제 경상수지 흑자는 GDP 대비 4%를 넘어섰을 것으로 추산됐다.

이럴 경우 중국은 환율조작국 지정 요건 3가지 중 2가지(대미 무역흑자가 200억 달러 이상, GDP 대비 경상흑자 3% 초과)를 충족하게 되는 셈이다. 당장에 미국의 위안화 강세 용인 압박 명분으로 작용할 소지가 있다. 궁국적으론 환율조작국 지정을 위한 명분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고병수 기자 byng8@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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