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머니(중동계 자금), 한국증시에서 또 손턴다

2017-08-23 10:47:55 게재

올들어 사우디 등 5.4조원 순매도

저유가에 재정악화 해외자산 회수

2015년 닮은꼴 긴 조정 오나 우려

오일머니(중동계 자금)가 뭉텅이로 한국증시에서 또 빠져나가고 있다. 7조원 가까이 한국주식을 팔아치운 2015년과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국제유가 하락으로 재정상태가 악화된 산유국들이 국부펀드를 앞세워 한국 등에서 해외자산을 회수하고 있다.


그동안 미국계 패시브(장기투자)자금이 강하게 순매수해 준 덕분에 수급안정속에 주가지수가 상승세를 유지했지만 최근 사정은 달라지고 있다. 미국계 자금마저 유입속도가 급속 둔화되고 있는 탓이다. 한국증시에서 이탈하고 있는 오일머니가 조정 뒤 상승장의 발목을 잡을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는 얘기다.

22일 금융감독원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들어 7월말까지 사우디를 비롯 중동계 자금이 국내증시(코스피+코스닥)에서 5조4000억원을 순매도했다. 이 기간 사우디아라비아만 2조4700억원 넘게 국내주식을 팔아치웠을 정도다.

중동계 외국인투자자의 한국주식 보유비중은 지난해말 5.1%에서 7월말 4.2%로 0.9%p 줄었다.

같은 기간 12조원 가까이 순매수한 미국계 외국인투자자와는 엇갈린 행보를 보인셈이다. 실제 이 기간 미국계 자금의 한국주식보유비중은 40.9%에서 41.9%로 1%p 늘었다.

김지혜 교보증권 수석연구원은 "올들어 중동계 자금의 이탈이 지속되고 있는 것은 국제유가 하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면서 "유가가 서부텍사스원유(WTI)기준 배럴당 30달러 수준까지 하락한 2015년 때보다 낫지만 50달러 밑에서 움직이고 있어 여전히 재정수지에 부담을 주고 있는 게 근본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 2015년 재정수입의 88%를 석유수출로 얻는 사우디의 경우 유가가 배럴당 30달러를 밑도는 상황까지 오면서 재정수지가 적자로 돌아섰을 정도다.

또 당시 일부 산유국은 CDS(신용부도스와프)프리미엄이 급등하면서 자금난에 봉착하자 해외 투자자산 회수를 통해 급한 불을 꺼야 했다.

올들어서도 같은 상황이 되풀이 되고 있는 셈이다.

다만, 한국주식 순매도를 주도한 사우디의 한국주식 보유 금액은 2016년말 11조6670억원에서 7월말 11조1310억원으로 5300억원정도 감소했다. 순매도금액에 비해 보유주식 평가액의 감속폭은 크지 않은 셈이다. 올들어 코스피지수가 2000선에서 2400선까지 30% 넘게 오른 덕을 본 셈이다. 재정상태 개선을 위한 해외자산 회수뿐아니라 차익실현 욕구도 강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한 대목이다.

문제는 오일머니의 한국이탈이 당장 멈추지 않는 가운데 미국계 자금 등 다른 외국계 자금의 국내증시 유입이 급속 둔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신흥국 ETF(상장지수)로의 자금 유입은 7월 이후 둔화된 상태. 중동계 자금뿐아니라 영국 등 단기차익을 노리고 들락날락하는 유럽계 일부 액티브자금도 빠져나가고 있다. 신흥국 가운데 7~8월 자금 유출 규모가 가장 큰 나라는 한국, 인도네시아, 인도다.

김 수석연구원은 "아직까지 경계감 수준이지만 미국계 등 장기투자자금마저 순매도로 돌아설 경우 지난 2015년때 처럼 외국인의 매도공세 속에 코스피지수가 깊은 조정에 빠질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 2015년말 오일머니의 이탈과 함께 미국 금리인상에 달러강세, 중국 경기둔화 우려 등으로 외국인들이 한달 넘게 한국증시에서 순매도공세를 펼쳤다.오일머니의 한국증시 이탈이 예사롭지 않은 이유다.

고병수 기자 byng8@naeil.com
고병수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