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과 정치는 떼어놓을 수 없다?

2017-09-01 10:49:17 게재

'통화전쟁' 제임스 리카즈, 미·독 흥미로운 상황 분석

세계 1위 금보유국 미국(8133톤) 과 2위 보유국 독일(3381톤)에서 최근 금과 관련한 흥미로운 상황이 전개돼 눈길을 끌고 있다. 미국 재무장관 스티브 므누신과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미치 매코넬이 최근 포트녹스를 방문해 화제가 됐다. 포트녹스는 연방정부 소유의 금괴 보관소가 있는 곳이다. 므누신은 포트녹스를 방문한 역대 3번째 재무장관이 됐다. 그리고 연방정부 장관으로서는 1974년 이래 첫 공식 방문이었다.

'커런시워'(통화전쟁) 저자 제임스 리카즈는 온라인매체 '마켓슬랜트' 글에서 "미 행정부는 겉으로 금을 무시하며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으려 한다"며 "포트녹스 공식 방문으로 금에 통화적 신뢰성을 줄 수 있기 때문이며, 이는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극도로 싫어하는 처사"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통화당국이 경계하는데도 불구하고 므누신 장관과 매코넬 원내대표가 갑작스럽게 포트녹스를 방문한 이유는 뭘까. 리카즈는 "해답은 연방정부 돈이 고갈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주지하다시피 미 의회가 정부의 부채 상한을 증액해주지 않으면 연방정부는 이달 29일 파산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부채 상한을 높이지 않고도 파산을 피할 방법이 있긴 하다. 미국이 보유중인 금을 시장가격으로 재산정하는 방법이다. 현재 미국 정부가 보유중인 금은 매입시 가격, 즉 온스당 42.22달러로 평가돼 있다. 하지만 현재 가격인 온스당 1285달러로 재산정하면 금 보유 자산가치가 크게 올라간다. 리카즈는 "연방정부는 약 3550억달러(약 400조원)를 추가로 빌릴 수 있다"고 계산했다.

이는 금융전문가들이 이전에도 제안한 방법이다. UBS 이사인 아트 캐신은 2013년 1월 "연방정부가 파산을 피하려면 보유중인 금의 가치를 시장가격으로 재평가하면 된다"고 제안한 바 있다.

리카즈에 따르면 금을 재평가해 자산가치가 오르면 재무부는 1934년 제정된 '금준비법'(Gold Reserve Act)에 의거, 연준을 상대로 새로운 '금증권'(gold certificates)을 발행할 수 있다.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돈을 요구할 수 있다. 이는 1953년 아이젠하워 행정부가 활용했던 방법이기도 하다. 리카즈는 "므누신 장관과 매코넬 원내대표는 금가치를 재산정하고 새로운 금증서를 발행해야 하는 상황이 오기 전, 금의 실보유량을 확인하기 위해 포트녹스를 방문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독일 상황은 선거와 관련돼 있다. 독일 중앙은행 분데스방크는 최근 해외에 둔 금을 환수하는 작업을 마쳤다. 당초 목표시점보다 3년이 빨랐다.

분데스방크는 2020년까지 프랑스 파리와 영국 런던, 미국 뉴욕연방은행에 보관된 자국의 금 673.7톤의 금을 들여오기로 했다. 2016~20년 목표치는 307.4톤(전체 45.6%)이었다. 하지만 2년이 채 안돼 목표를 완료했다.

독일의 금 환수는 비상상황시 외국 정부가 금을 동결하거나 압수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시작됐다. 이는 리카즈의 2011년 저서 '커런시워'(통화전쟁)에서 제기됐던 이슈다. 리카즈는 책에서 "극한 상황에 몰리면 미국은 자국 영토에 보관된 외국의 금을 동결하거나 압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법적 근거는 '긴급국제경제권한법'(International Emergency Economic Powers Act)과 '적성국교역법'(Trading With the Enemy Act), '미국 애국법'(USA Patriot Act)이다. 이는 독일뿐 아니라 네덜란드와 독일 오스트리아 등 유럽 각국에서 정치적 이슈가 됐다. '해외에 보관된 금을 다시 국내로 들여와야 한다'는 움직임이 거세게 일었다.

하지만 분데스방크는 애초에 해외의 금을 들여오는 데 찬성하지 않았다. 독일엔 실물금 대여(gold-leasing) 시장이 충분하게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금융중심지인 뉴욕이나 런던에서는 실물금을 기반으로 한 파생상품 거래시장이 크게 발달했다. 일이 지나쳐 국제 금가격 조작에 악용된 사례도 있었다.

독일의 금 반입 선언 시점인 2013년과 반입 완료 시점인 2017년은 정치적 의미가 크다는 게 리카즈의 분석이다. 2013년, 2017년은 독일 총선이 있는 해다.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은 오는 24일(현지시간) 총선을 치른다. 다수당 유지를 위해 연합세력이 필요하다. 금 반입을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군소 국수주의 정당의 지지를 확보하려면 이들의 요구를 들어줘야 했다. 때문에 메르켈 총리는 2013년 총선을 위해 금 반입을 선언했고, 또 올해 총선을 위해 금 반입을 완료했다. 금 반입이 당초 계획시점보다 3년 빨리 앞당겨진 이유다.

리카즈는 "이유가 어찌 됐든, 금에 대한 미국 행정부와 독일 정치권의 공개적 관심은 금값을 지속 상승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라며 "게다가 국제적 금 공급은 미약한 반면 러시아와 중국의 대대적인 금 매입활동은 왕성하게 이뤄지고 있어 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김은광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