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 학생들과 부모가 함께 떠나는 공감여행

"아이와 소통 못하는 이유 알았어요… 부모가 변해야죠"

2017-09-04 10:59:21 게재

국립생태원에서 1박2일 소통훈련

"아이 눈 쳐다보니 자꾸 눈물이 나네요." "내 아이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줄 알았어요." 이예진(가명. 전남 광주)씨가 부모교육을 받고 난 소감을 말했다. 이씨는 다음날 아들과 함께 국립생태원 '제인구달 길'을 걸으며 아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됐다고 환하게 웃었다. '자녀와 함께하는 공감여행' 캠프에 참여한 홍은희(전북 순창)씨도 "우리 가정은 소통도 잘되고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학교 공부만이 아닌 아이가 잘하는 게 무엇인지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칭찬했어야 했다"며 "부모가 먼저 바뀌어야 자식이 행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공감캠프에 참여한 중2학생과 부모들.


자녀와 소통이 필요한 가족이 1일 '자녀와 함께 하는 공감여행'을 떠났다. 서울 대전 전북 광주에서 참석한 중학교 2학년 남학생 열다섯 가족이다. 이들은 1박2일 일정으로 충남 서천 국립생태원을 소통의 무대로 삼았다. 생태원 숙소 주변은 산책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소화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짐을 풀기도 전에 '자녀-부모 소통하기'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말보다 행동이 우선이다. 아이들은 부모와 발을 묶은 상태로, 작은 수저위에 탁구공을 올려놓고 코스를 돌아야 한다. 공이 떨어지면 원위치. 서로 호흡이 맞지 않으면 가벼운 탁구공은 솔바람에도 날아간다. 평소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병훈(가명. 광주)이가 아버지에게 오른발에 박자를 맞추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 걸음에 맞추지 못해 자꾸 공을 떨어뜨렸다. 결국 '원위치'를 3번이나 하고나서야 미션을 수행했다.

공감캠프 참가자들이 국립생태원 제인구달길을 걷다 칡잎으로 가면을 만들었다.


부모와 몸 풀기를 끝낸 아이들은 강당에서 에코가방 만들기에 도전했다. 말없이 바느질에 집중하는 아들의 모습에 부모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바느질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는 빨대를 이용해 물감을 불어 밑그림을 그리는 창의성을 발휘했다. 부모들은 "우리 아들이 이런 제주가 있었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이들은 완성된 가방을 들고 작품 설명을 했다. 많은 아이들이 '가족의 행복'을 주제로 삼았다. 그러나 작품 설명을 하는 데는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평소 학교에서 발표를 해본 경험이 부족한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아이들은 "머릿속에는 생각이 잘 정리되는 데 말로는 잘 안된다"고 말했다. 미술치유 강사는 "아이들 마음속에 가족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며 "반드시 말로 표현하는 것만이 소통이 아니라, 자녀의 장점을 잘 살피고 칭찬해주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고 말했다.

부모와 아이들은 따로 '자신을 찾아가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프로그램을 마친 아이와 부모는 다시 강당에서 만났다. '부모-자녀 서로 눈 쳐다보기' 시간. 잠시 후 이예은씨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이씨는 "아들 눈을 보니 그동안 내가 얼마나 이기적으로 자식을 대했는지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고 말했다.

부모교육, "눈이 밝아지고 귀가 뚫려" = 부모교육에 참여한 조병철 씨도 학교에 가기 싫다는 아들과 전쟁 중이다. 겉으론 평온한 척 웃지만 속은 부글부글 끓는다. 중 1학년 2학기부터 결석이 잦더니 2학년 2학기에는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게임 과몰입 진단을 받은 아들은 '학업중단 숙려제' 상태다. 조씨의 가장 큰 고민은 아들과 대화가 잘 안 된다는 점이다.

조순화 대표

이날 부모교육 강사로 나선 조순화 '사람인사람 부모교육 및 상담센터' 대표는 "자녀가 원하는 언어와 행동이 무엇인지 잘 파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핵심은 '관심과 사랑'이라고 강조했다.

아이는 세상에 태어나 엄마와 하나되어 있는 30여일을 지나 7~8개월 낯가림으로 세상을 알기 시작한다. 이후 20여개월의 공생기를 지나, 36개월은 세상에 우뚝 홀로 서려는 독립의 몸부림이다. 이는 다시 사춘기에 접어들며 언어와 비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이들이 각 시기에 요구하는 게 무엇인지 관심을 갖고 대화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조 대표는 "자녀와 소통을 잘하려면 감정과 이성을 잘 다스려야 한다. 언어와 비언어적 표현이 있는데, 언어로 전달하는 것은 3~7%에 불과하다. 비언어로 표현하는 것, 즉 얼굴표정, 몸짓, 손짓 등으로 전달되는 소통이 90%가 넘는다"며 "언어와 비언어적 소통의 일치를 이루어야 자녀와 신뢰를 쌓고 소통을 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산책을 마치고 가족 십계명을 만들고 있다.

공감캠프에 참여한 부모들은 질문을 쏟아냈다. 부모가 화가 났을 때 참아야 하냐는 질문에 조 대표는 "참는 것은 좋지 않다. 정확하게 표현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무작정 화를 내는 것도 자녀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

화가 났을 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는 것은 자녀의 가출이나 돌발행동 등 나쁜 상황으로 전개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신 '나는 너의 무엇 때문에 기분이 나쁘고 화가 난다'고 감정을 정리해 이성적으로 이야기 하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부모가 자기만의 언어로 이야기 하는 것은 불통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위험요소라고 설명했다. 조 대표는 "상대방이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도록 언어표현 방법을 배우고 익히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의가 끝나고 한바탕 눈물을 쏟아낸 부모들은 "눈이 밝아지고 귀가 뚫린 느낌"이라며 웃었다.

탁구공을 작은 수저에 올려놓고 생태원 코스를 돌고 있는 부모와 자녀.


'제인구달 길' 걸으며 아이 마음 이해 = 다음날 부모 손을 잡은 아이들은 제인구달길을 걸었다. 산책코스로 20분이면 충분하지만 2시간에 걸쳐 놀이와 토론을 하며 걸었다. 얼굴을 가릴 수 있는 칡잎은 훌륭한 가면재료가 됐다. 칡잎에 구멍을 내고 눈과 코, 입을 내밀자 서로 깔깔대며 웃었다. 영훈이는 엄마 눈이 잘 안 보인다며 칡잎을 조심스럽게 찢어 엄마 가면을 완성시켰다.

하산 길에는 제인구달 환경십계명을 보고 '우리가족 십계명' 만들기에 도전했다. 부모와 아들이 번갈아가며 1줄씩 써 내려가며 십계명을 완성했다.

조병철 씨는 "깊은 대화를 거부했던 아들이 가족십계명 작성에는 적극적으로 나섰다. 아들이 '가족을 소중히'라는 마지막 구절을 쓸 때 가슴이 뭉클했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제인구달 길을 걷다 숲 곤충과 뱀을 보고 소리를 지르며 달아났다. 하지만 짧은 시간임에도 아이들은 숲에 적응했다. 솔방울을 주워 즉석 놀이로 만들었고, 자신감과 자아존중감을 높여갔다. 아이들은 "괜히 기분이 상쾌해지고 마음이 편하다"며 웃었다. 학교 공교육에서는 관심조차 없는 자존감교육이나 부실한 가치관교육이 숲 교육에서는 쉽고 빠르게 받아들인다는 게 숲 교육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따라서 한국도 선진국처럼 학교생활에 힘든 아이들을 위한 맞춤형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운영하는 게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마지막 일정으로 국립생태원에서 제공한 에코리움 탐방에 나섰다. 열대어류와 10미터 넘게 자란 고무나무, 열대식물에 대해 배웠다. 사막기후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동식물의 성장과정을 들었다. 아이들은 공존과 공생, 배려를 쉽게 설명하는 생태해설사 설명에 푹 빠져들었다.

"공생을 하면 오래 살아남는다. 둘 다 이득을 보는 게 공생관계. 공생을 하려면 서로 조금씩 양보해야 하고…"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날 '자녀와 함께하는 공감여행' 캠프에 참여한 김우정 교육부 학교생활문화과장은 "짧은 시간임에도 부모와 자녀간 신뢰와 존중, 의지라는 정서적 관계가 형성된 것 같다"며 "학교생활을 힘들어하는 아이와 가족을 위해 교육부가 적합한 정책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부모와 자녀 소통에 문제가 없도록 지원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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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성 기자 hsjeo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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