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세계평화 위한 청년기지로 우뚝 서

2017-09-05 10:50:15 게재

높은 파도와 싸우며 어렵게 독도에 입도

세계 102개국 유학생들 평화선언문 낭독

"기상악화로 배가 심하게 흔들릴 수 있으니 승객들께서는 멀미약 등을 미리 준비해주시길 바랍니다. 배 멀미에 대비한 봉투도 준비돼 있으니 필요한 분들은 미리 챙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독도경비대와 함께한 외국인 유학생들│ 8월 30일 독도를 방문한 비정상회담 참석자들이 독도경비대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이상근


경북도청, 교육부, 내일신문이 공동주최한 '2017 외국인 유학생 독도 비정상회담'(Dokdo Global Youth Summit) 참석자들은 8월 30일 오전 9시쯤 포항여객터미널에서 울릉도 저동항으로 향하는 '썬라이즈호'에 오르자마자 이 같은 선내 방송을 반복해서 들었다. 방송 내용이 얼마나 심각한지 '너무 호들갑을 떠는 것 아니냐'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웬걸 과장이 아니었다. 배가 출발한 지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선내 방송이 뭘 의미하는지 절실히 깨달았다. 배는 파도를 타고 가는 것이 아니라 파도와 정면으로 부딪쳤다. 좌우로, 위아래로 끊임없이 요동쳤다. 여기저기서 고통을 호소했고, 멀미용 봉투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빠르게 늘었다. 견디다 못한 승객들 가운데 상당수는 조금이라도 고통을 줄여볼 요량으로 배 바닥에 드러눕기도 했다. 바다를 만끽하며 우아하게(?) 책을 읽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여유롭게 휴대폰을 보던 승객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대부분 좌우 팔걸이를 꽉 쥔 채 버티기 자세로 돌입했다.

독도에 울려퍼진 평화선언문│ 평화선언문을 낭독한 학생대표들로부터 선언문을 전달 받은 내일신문 장명국 대표이사(가운데)와 학생대표들. 사진 이상근


당초 예상시간은 3시간 10분. 하지만 파도가 심하고 많은 승객들이 배 멀미를 호소하면서 안전과 승객 편의를 위해 속도를 줄이면서 도착시간이 늦어졌다.

예정보다 훨씬 늦어졌지만 무사히 도착했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이 저절로 들 정도였다. 일부 승객들 사이에선 박수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전세계에서 한국에 유학 온 독도 비정상회담 일행의 둘째 날은 그렇게 시작됐다.

첫째 날 일정도 워낙 빡빡하게 진행된 탓(내일신문 8월 30일자 기사 참조)에 둘째 날은 조금 여유를 찾기를 기대했지만 울릉도 앞 바다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울릉도에 도착하자마자 진행할 예정이던 환영식도 도착 시간이 늦어지면서 취소됐다. 독도까지 가기 위해서는 또 다시 바쁘게 움직여야 했기 때문이다.

배 멀미로 고생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 독도 행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상당할 것이라는 걱정스러운 소식도 전해졌다. 행사를 준비한 측도 너무 무리하게 일정을 강행하지 말자는 분위기가 커졌다. 무엇보다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생각에서다.

독도 방문을 마친 참석자들이 30일 저녁 울릉도 숙소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모습. 사진 이상근


점심식사를 마친 일행은 다시 독도를 향해 뱃길을 재촉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기운을 내자는 분위기가 커지면서 걱정했던 것보다 독도행 배편인 '엘도라도호'에 오르는 승선인원이 많았다.

배 멀미로 정말 심하게 고생한 2~3명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이 독도 방문 의지를 다시 한 번 다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최종적으로 입도가 가능할지는 여전히 미지수였다. 독도는 세 번을 방문하면 겨우 한 번을 허락할까 말까하다는 얘기를 익히 들었던 터다.

하지만 참가자들의 간절한 마음이 전해진 것일까. 하늘도 도왔다. 울릉도에서 독도로 가는 뱃길은 예상보다 순탄했다. 파도도 잠잠했고, 배의 흔들림도 훨씬 덜했다.

두 시간 가까이 달려가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독도가 그 품을 우리에게 내줬다. 언제나 그랬듯이 독도는 그 자리를 그렇게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입도한 뒤 가장 먼저 만난 사람들은 독도경비대 대원들이었다. 대원들의 늠름한 모습은 외국인 유학생들에게도 인기 만점이었다.

기념촬영 요청이 쇄도했다. 하지만 그렇게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것도 잠시 뿐. 언제 기상상태가 바뀔지 모르고, 다음 배편이 또 들어와야 하기 때문에 우리 일행이 머물 수 있는 최대시간은 한 시간 남짓이었다. 그 사이에 준비한 일정을 모두 소화해야 했다.

입도 후 첫 순서는 평화선언문 낭독. 학생대표 두 명이 평화선언문을 낭독한 뒤 이를 내일신문 장명국 대표이사에게 전달했다. 전날 경북도청에서 분임토의를 거치고 전체토론을 하면서 수정을 거듭한 선언문이었다. 그만큼 고민과 애정이 담긴 문구였다.

다음 순서는 한복 패션쇼. 한복으로 갈아입은 외국인 유학생 10여명이 배에서부터 독도로 입도하는 과정이 모델들의 런웨이로 순식간에 바뀌었다. 이들은 다시 '독도는 우리땅' 노래에 맞춰 깃발을 흔들며 율동도 선보여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어 독도경비대에 위문품을 전달하고 경비대와 함께 대형 걸개그림을 배경으로 단체사진 촬영도 진행했다. 독도 상공에 띄워진 드론은 이 장면들을 놓치지 않고 영상으로 담았다. 끝으로 각 대륙별로 선발된 학생대표들은 독도경비대 건물 근처에 설치된 우체통까지 올라가서 가족들에게 보내는 엽서를 부쳤다. 이렇게 부쳐진 엽서는 수 개월 뒤 각 나라에 있는 유학생들의 가족들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우체통 바로 근처 바위에는 '한국령' 표식이 선명했다.

독도경비대 방문을 하지 않고 남아 있던 일행들은 조별로 단체사진을 찍거나, 친한 친구끼리 삼삼오오 추억만들기에 열중했다. 물론 독도를 배경으로 한 셀카 인증샷도 필수 코스였다.

한 시간 가까운 입도는 이렇게 마무리됐고 다시 독도를 떠나 울릉도로 복귀할 시간이 찾아왔다. 그냥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워하는 표정을 읽었는지 '엘도라도호' 선장님의 특별 서비스가 제공됐다. 독도를 배로 한 바퀴 돌면서 다시 한 번 눈에 담고, 마음에 새겼다.

독도경비대원들의 설명에 따르면 "독도가 민간인에게 개방된 뒤 수많은 팀들이 독도를 방문했지만 이번처럼 다양한 국적의 젊은이들이 방문해 이렇게 다채로운 이벤트를 진행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경비대원들 눈에도 특별한 방문객임에 틀림없었다.

울릉도로 복귀한 뒤에도 여운은 가시지 않았다. 저녁을 겸한 BBQ 파티를 하고, 게임을 하고 노래를 함께 부르면서 우애를 다지는 시간이 이어졌고, 캠프파이어로 일정을 마감했다. 다음날 아침식사를 마치고, 그동안 애쓴 학생대표들에게 공로장을 수여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행사에 대한 학생대표의 소감도 들었다.

한국외국어대학에서 유학중인 튀니지 출신의 보슈과 엘갈리는 "독도가 한국 땅인지 일본 땅인지는 정확하게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 행사를 통해 절실하게 배우게 된 것은 독도가 이제 평화의 섬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울릉도에서 다시 포항으로 돌아오는 길도 만만치 않았다. 파도 높이가 3미터에 육박하면서 배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고, 출렁거림은 전날과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도 일정은 늦어졌고, 배멀미로 고생한 일행이 속출했다. 그래도 저녁식사 자리는 시끌벅적 즐거웠다. 이 자리에서 이강철 포항시장은 학생대표들에게 명예독도 주민증을 전달했다. 단순한 방문객에서 명예주민이 된 것이다. 한 참석자는 "비록 오가는 길에 배가 흔들려 힘들긴 했지만 너무 아름다운 독도의 모습과 세계각지에서 온 친구들과 평화를 주제로 얘기 나누면서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됐다"고 말했다. 그렇게 독도는 전 세계에서 온 유학생들의 마음 속에 평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독도는 이제 더 이상 갈등의 상징이 아니다. 세계평화를 위한 글로벌 청년들의 전진기지로 우뚝 섰다. '2017 독도비정상회담' 이후 달라진 독도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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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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