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금 보냈다면 아파트 계약 성립 "위약금 지급해야"

2017-09-26 10:57:38 게재

법원 "가계약금으로도 계약" 소비자 권익옹호 판결 … 건설업계 이중계약 관행에 제동

미분양 아파트에 대해 건설사가 이중계약을 했다면 분양계약자에게 손해배상을 위한 위약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아파트 분양 시장에서 간혹 있는 일인데 법원은 구체적인 계약 절차를 논의하고 가계약금을 송금했다면, 계약서를 쓰지 않았더라도 계약이 성립했다고 봤다. 계약자와 실무 직원간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내용을 주요 증거로 보고 소비자 권리를 보호한 판결을 했다는 평가다.
미분양 아파트에 대해 건설사가 이중계약을 했다면 분양계약자에게 손해배상을 위한 위약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사진은 지난 17일 서울 서초구의 한 견본주택을 찾은 시민들이 단지 모형을 살펴보는 모습. 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38단독 박대산 판사는 A씨가 대우건설을 상대로 낸 분양 계약금 반환 등 청구의 소송에서 "피고는 원고에게 5118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원고가 분양대행사 계좌로 3000만원을 입금한 것은 아파트 계약금을 입금한 것이고, 원고와 피고 사이에 아파트 분양 계약이 체결됐다고 판단된다"며 "피고가 위약금 지급 없이 임의로 이 사건 분양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2015년 A씨는 대우건설이 시공한 서울 반포의 미분양 아파트에 대해 분양대행사 M사 직원과 계약을 논의했다. M사 직원은 "1가구만 남았다"며 A씨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이씨는 M사가 요구한 계약금 5000만원 중 3000만원을 불러준 계좌에 입금했다.

하지만 분양대행사는 돌연 입장을 바꿨다. A씨가 입금한 계좌는 "정계약 계좌가 아닌 가계약 계좌"라며 정식 계약서 작성을 거부하고 3000만원을 돌려주겠다고 했다. A씨는 분양대행사가 요구하는 계좌로 약속한 돈을 입금한 만큼 정상적 계약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해지하려면 오히려 대우건설이 계약금 외에 위약금도 지급해야 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대우건설과 분양대행사는 "계약금은 가계약 계좌에 입금된 것으로 정식 계약서를 체결한 사실이 없다"고 맞섰다. 계약서를 작성하지도 않았고, 가계약금에 대한 문제점을 A씨에게 충분히 설명했다는 것이다. 그 사이 대우건설과 대행사는 A씨에게 가계약금을 돌려준다며 법원에 3000만원을 공탁했다. 하지만 A씨는 공탁금 수령을 거부했다.

대개 건설사는 분양공고에 나온 은행계좌를 사용하는데 미분양 물량이 있거나 다양한 마케팅을 하면서 다수 계좌를 사용하기도 한다. 다수의 계좌는 미분양 판촉을 위해 대행사 직원간 경쟁을 시키면서 선입금자에게 성과급을 주기 위한 용도로 쓰이기도 한다. 문제는 A씨처럼 계약자 권리가 침해되거나 금전 사고가 날 수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 건설사와 분양대행사는 이른바 '가계약 계좌'를 통해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의 가계약금이나 증거금을 요구한다. 실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마음을 바꾸더라도 원금을 돌려받는 것은 용이하다. 하지만 실제 계약을 원하는 A씨 경우처럼 건설사로부터 계약을 거절당하는 경우도 있다. 공급자 위주의 제도지만 실상 소비자 권리는 빠져 있는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이러한 가계약 제도가 현행 계약법을 악용한 사례라고 지적하고 있다. 단일 계좌만 이용해야 원청업체가 관리·감독할 수 있고, 선입금자에 대한 순위 조절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법원은 A씨 주장대로 건설사가 가계약금인 3000만원과 위약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봤다. 분양대행사가 A씨로부터 가계약금만 받은 게 아니라 계약과 관련한 문자메시지를 여러 차례 주고받았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이를 단순한 안내가 아닌 정식 계약 절차로 봤다.

재판부는 "A씨가 대우건설 측 대행사의 분양계약 권유에 따라 가계약 계좌에 돈을 입금한 것은 원고와 피고 사이에 아파트 분양 계약이 체결된 것"이라며 "분양 대행사 문자 메시지로 계좌번호 외에 준비 서류를 보내고 계약서 작성 약속까지 한 점은 분양계약 체결의 합의가 있었던 것"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는 이중분양 등으로 인해 계약자에게 10%를 위약금으로 지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원고가 계약금과 손해를 입은 정도를 고려하면 피고가 지급할 위약금은 원고가 청구하는 금액인 5000만원으로 보는 것이 상당하다"고 덧붙였다. 계약서상 분양대금의 10%(1억8700만원)를 위약금으로 지급해야 하지만 A씨가 5118만원만 요구한 것은 무리한 것이 아니기에 지급하는 게 맞다고 본 것이다.

건설업계에서는 "분양대행사의 업무실수로 이중계약이 간혹 벌어지는데 이번 판결은 손해배상이나 업무처리에 중요한 처리 기준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오승완 기자 osw@naeil.com
오승완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