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넘은 '달러종말론' 이번엔 진짜일까

2017-10-16 10:56:46 게재
1960년대 이래 달러의 세계 지배가 종말을 고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유행을 탔다. 반세기 넘게 지속된 논쟁이다.
미국 1달러 지폐

UC버클리대학 경제학 교수인 배리 아이켄그린이 15일 프로젝트신디케이트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달러의 종말'(demise of the dollar)이라는 말은 1969년 런던골드풀(London Gold pool)이 무너진 직후 처음 등장했다. 런던골드풀은 브레턴우즈체제의 하위 체계로, 주요 8개국 중앙은행이 협력해 달러-금 태환제를 지켜낸다는 것이다. 미국이 전체 자금의 60%를, 다른 나라들이 나머지를 분담해 금 안정기금을 만들어 금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런던 금시장에 개입한다는 신사협정이었다.

1970년대엔 달러종말론이 더욱 거세졌다. 달러 중심의 브레턴우즈체제가 붕괴하면서다. 리처드 닉슨, 제럴드 포드, 지미 카터가 미국 대통령으로 재임한 70년대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맞물려 달러종말론은 증폭됐다.

최고조에 달한 건 2000년대다.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면서 미국 행정부의 적자가 치솟았다. 또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달러종말론을 거론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럼에도 달러의 국제적 역할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전 세계 중앙은행과 정부가 보유중인 달러 규모는 여러 지정학적 사건들에도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외환시장에서도 달러의 지배적 위치는 공고하다. 여전히 국제원유 가격도 달러로 표시된다. 최근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베네수엘라 정부가 '달러의 독재'라며 공개 비난할 정도다.

지난해 달러 가치는 급등과 급락, 회복을 거듭했다. 많은 외환전문가들이 대경실색할 정도로 큰 진동폭을 보였다. 그럼에도 국제 금융시장에서 달러의 매력을 깎아먹지는 않았다.

여전히 각국 중앙은행들은 미 국채를 보유하고 있다. 미 국채 시장이 전 세계 가장 유동성 높은 곳이기 때문이다. 또 미 국채는 안정성 측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1812년 영국과 미국의 전쟁 이후 미 연방정부는 채권상환에 실패한 적이 없다.

미국의 외교적, 군사적 힘은 미 동맹국들이 달러를 찾도록 이끄는 원동력이다. 안보상의 이유로 미국에 의존하는 나라들은 주요 핵보유국들과 비교해 달러 의존도가 높다. 기축통화국인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는 나라들의 경우 외환보유고 중 달러의 비중이 그렇지 않은 나라들보다 대략 30% 이상 높다. 아이켄그린 교수는 "군사동맹 효과가 없다면 달러의 비중은 크게 낮아질 것이라는 점을 암시한다"며 지정학적 동맹과 국제 기축통화와의 강한 상관관계를 설명했다.

동맹국들이 미국의 채권에 강한 애착을 보이기 때문에 미국 정부는 자금을 조달하는 비용을 크게 낮출 수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과 일본의 경우 외환보유고 중 달러의 비중이 80%대에 달한다. 아이켄그린 교수는 "따라서 미국과의 군사동맹이 불화에 빠진다면, 이들 나라의 태도가 바뀔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달러환율과 미국의 자금조달 비용에 부정적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북핵 사태가 단적인 사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스스로를 전략적 궁지로 몰아가고 있다. 그는 공세적 언사와 태도를 통해 북한으로부터 핵무기 양보를 얻어내려고 한다. 하지만 아이켄그린 교수는 "북핵에 대한 유일한 해법은 외교적 협상을 통해 사태를 처리하는 길"이라며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가능성 높은 평화적 해결 방법은 트럼프 대통령이 그토록 비난하는 이란 핵합의 방식과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의 핵을 제어하는 대가로 무언가를 줘야 한다. 아이켄그린 교수는 "북한 정부에 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보상은 외부 침략의 두려움을 해소해주는 것"이라며 "한국이나 아시아에 주둔한 미군 병력의 규모를 줄이는 것이 그 방법"이라고 제시했다. 물론 미군의 철수는 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안보보장이 줄어든다는 걸 의미한다. 대신 그만큼 중국이 지정학적 사안에 개입할 명분을 넓혀주는 일이기도 하다. 그는 "중국이 지정학적 리더로서 보다 큰 책임을 지게 된다면, 중국 통화인 위안화 역시 그 뒤를 따라 보다 큰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김은광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