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악용' 보이스피싱 막는다

2017-10-24 10:39:24 게재

금감원, 내달 가상화폐거래소와 '인출차단' 협의 … 자금추적 회피 수단으로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이 자금 추적을 피하기 위해 가상화폐를 이용하는 사례가 갈수록 증가하면서 금융당국이 가상화폐거래소의 '거래 차단'을 위한 방안 마련에 나섰다.

24일 금융감독원은 가상화폐거래소를 통한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의 자금 인출을 막기 위해 인출금 지연 절차를 포함한 대응 방안을 검토해 내달 거래소들과 협의를 벌일 예정이다.

가상화폐거래소는 금융당국에 등록된 금융회사가 아니라서 금감원의 감독대상이 아니다. 금융당국의 규제 사각지대라는 점도 보이스피싱 세력들이 자금 인출 통로로 이용하는 이유다.

금감원은 사기에 이용된 계좌의 사용 중지와 입금된 자금의 반환을 위해 가상화폐거래소들의 협조를 구하고 있다.

하지만 거래소마다 보이스피싱 등 범죄에 연루된 계좌의 인출을 막기 위한 규제 수준이 제각각이라는 점에서 금감원이 일종의 '가이드라인' 만들기에 나섰다.

금감원 관계자는 "7~8월부터 보이스피싱 등을 막기 위해 가상화폐거래소들이 각자 방안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지만 서로 의사소통이 활발하지 않다"며 "거래소 각자가 갖고 있는 방안 중 우수 사례를 다른 거래소에 전파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방안을 만들어 협조를 요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가상화폐거래소는 휴대폰번호와 이메일만으로 회원 가입이 가능하고 인출한도에 제한이 없다. 금융회사 현금자동입출금기의 일일 인출한도는 600만원으로 제한돼 있다.

A거래소는 가상화폐 첫 거래 시 72시간 동안 출금을 유예하는 규정을 운영하고 있다. 대포통장을 통해 이체된 자금에 대해 일종의 지급 유예 절차를 두고 있는 것이다. B거래소도 마찬가지 절차를 운영하고 있다. 100만원 이상 이체할 경우 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에서 30분간 인출할 수 없도록 한 은행들의 지연인출제도 보다 훨씬 강화된 조치다.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은 대포통장에서 보낸 자금을 가상화폐거래소에서 곧바로 현금화하지 않고 비트코인 등의 가상화폐를 구입한 뒤 다른 가상화폐거래소로 보내 자금을 인출하고 있다. 계좌추적을 막기 위해서다.

가상화폐거래소의 72시간 출금유예 절차는 다른 거래소로 가상화폐를 이체하는 거래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B거래소는 출금을 하려면 거래소를 직접 방문하거나 화상통화를 통해 본인 인증을 거친 이후, 가능하도록 조치를 취하고 있다.

최근 보이스피싱 범죄는 '정부기관 사칭형'에서 '대출빙자형'으로 바뀌는 추세다. 검찰이나 금융감독원 등 정부기관인 것처럼 속이는 보이스피싱은 피해자가 자금을 이체하고 얼마 안돼 사기를 당한 사실을 인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사기범들이 자금을 인출하기도 전에 계좌에 대한 지급정지 조치가 이뤄진다.

하지만 고금리를 저금리로 바꿔주겠다는 '대출빙자형' 보이스피싱은 신용도를 높여주겠다는 말에 속아 자금을 이체한 경우 피해자들이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아채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린다.

금감원 관계자는 "저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로 인해 사기 사실을 쉽게 인식하지 못해 신고도 늦다"며 "금융회사들이 30분간 지연 인출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시간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지난 7~8월 사이에 보이스피싱사기범들이 가상화폐를 이용해 피해금을 인출된 사례가 모두 50건, 피해금은 35억원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가상화폐거래소들이 자체 대응방안을 마련하면서 지급이 정지되고 반환되는 피해금이 늘고 있다는 게 금감원의 설명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회사들에게 가상화폐거래소로 입금되는 거래에 대해 모니터링을 강화하도록 지도하고 있다"며 "고객 신고가 들어오면 금융회사들이 가상화폐거래소에 연락해 지급을 막고 입금된 돈을 반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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