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 10년, 역사 교훈 잊은 월가

2018-02-12 11:14:44 게재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금융시장 위기론 나오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규제완화에만 몰두"

이달초 미국의 금융시장이 크게 출렁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오는 판이다. 하지만 미국 워싱턴 정가는 월가 은행들을 감싸고 돌기에만 바쁘다고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가 최신호에서 비판했다.

블룸버그는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 10주년이 다가오는 가운데 미 월가의 위험한 도박을 막기 위한 마련된 많은 규제와 제재가 조용히 허물어지고 있다"고 "미 상원은 주요 은행들에 대한 감독관련 규정 수십개를 없애는 법안을 준비중"이라고 전했다.

공화당 의원 대다수와 민주당 의원 11명이 찬성하는 해당 법안은 기존의 규정을 손보는 것과 관련이 있다. 바로 자기자본거래를 제한하는 규정과 은행자본을 추가 확충토록 한 규정이다. 그동안 은행들은 이 규정에 대해 "수백만달러의 이익을 갉아먹는 주범"이라며 계속 볼멘소리를 해왔다.

은행들은 쌍수를 들어 환영하고 있다. 미국은행협회 부회장인 웨인 애버내시는 "느낌이 좋다"며 "고객과 은행은 물론 경제 전반이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2010년 금융개혁법안인 '도드프랭크법'을 만드는 데 참여했던 재무부 전 간부 마이클 바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낳았던 상황이 다시 재연될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현재 미시간대 제럴드포드 공공정책대학원 원장으로 재직중인 그는 "위기 발발 10주년은 강력한 금융시스템 보호책이 필요한 시기이지, 그것을 해체할 시기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규제해체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는 바로 감독기관 내정자나 임명자 면면이다. 이들은 직간접적으로 금융기관들과 연계돼 있다.

재무장관인 스티븐 므누신은 골드만삭스에서 일했다. 그는 이후 사모펀드를 조직해 현재의 '원웨스트뱅크'로 변모한 대출기관을 사들이기도 했다.

므누신 장관은 원웨스트뱅크의 전 CEO인 조셉 오팅을 재무부 산하 독립기관인 통화감독청(OCC) 청장에 앉혔다. OCC는 국영은행을 감독하는 기관이다.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의장에 내정되기도 했던 젤레나 맥윌리엄스는 신시내티 소재 '피프스서드은행' 최고법률담당책임자(CLO) 출신이다. 이들은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지명된 금융산업 규제담당자들 대부분이 정부 관료 출신이거나 학자들이란 점에서 대조적이다.

가장 주목할 만한 인사는 은행감독 업무를 맡는 연준 부의장 랜덜 퀼즈다. 월가 '대마불사' 은행들이 가장 중요한 직책으로 꼽는 사람이다. 칼라일그룹의 전 파트너 변호사였던 퀄즈는 지난달 19일 워싱턴 소재 리츠칼튼호텔에서 금융권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연설했다.

그는 "은행 규제정책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하겠다"고 언급해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을 놀래켰다. 그는 "은행 규모에 따라 맞춤형으로 규제할 것이고, 복잡다단한 규제를 간소화하겠다"며 "규제정책에 대해 한 걸음 물러서 평가해야 할 자연스러운 때가 왔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블룸버그는 "퀄즈가 말한 '규모에 따른 맞춤형 규제'나 '간소화된 규제'는 워싱턴 로비스트들이 '규제를 풀어달라'고 읍소할 때 쓰는 전문용어"라고 꼬집었다.

퀄즈는 금융권이 가장 싫어하는 2가지 규제를 손보겠다고 공약했다. 첫째는 돈을 얼마나 빌려 투자할지를 나타내는 레버리지율이다. 은행들은 2008년처럼 자본시장이 얼어붙을 때 과도하게 차입해 큰 손실을 보는 상황을 막기 위해 자기자본을 넉넉히 확충해야 한다.

둘째는 도드프랭크법의 핵심인 '자기자본거래' 금지규정으로, '볼커룰'이라고도 불린다. 은행들은 두 개의 제한규정이 너무 혼란스러워 고객에게 증권을 사고팔도록 하는 자신들의 능력이 심각히 훼손된다고 주장해왔다.

또 다른 규정도 완화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스트레스 테스트'(은행 재무건전성 평가)다. 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경제, 금융 충격에 은행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것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시스템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큰 보탬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제도다.

이와 함께 은행들은 파산할 경우 어떤 절차를 밟을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규정한 '정리의향서'(living wills)를 매년 연준에 제출해야 했다. 은행들로서는 매우 골치아프고 까다로운 작업이었다. 퀄즈가 부의장으로 임명되면서 정리의향서 제출 시기가 매년에서 2년마다 1번씩으로 변경됐다.

대표적인 월가 비판가인 FDIC 부의장 토마스 회니그는 현재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 매우 우려한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공화당 상원의 요청으로 정치적으로 독립적인 인물로 임명됐던 회니그 부의장은 오랫동안 은행 자기자본 거래 금지를 지지하고 자본 확충을 역설했던 인물이다.

40년 동안 금융시장의 부침을 지켜봤다는 회니그 부의장은 "시장의 밀물과 썰물은 언제나 동일한 패턴을 따른다"며 "은행들은 파티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오만을 부리지만, 언제나 끝은 있었다"고 지적했다.

회니그는 지난 1월 백악관에 의해 갑작스런 일격을 당했다. 당초 백악관은 맥윌리엄스를 FDIC 의장으로 내정했다가 상원 인준 전날 갑자기 이를 취소하고 회니그 부의장 자리에 지명했다. 맥윌리엄스에 대한 인준이 이뤄지는 4월초 이후엔 회니그 현 부의장은 자리를 물러나야 한다.

블룸버그는 "월가에 대한 가장 강력하고 비판적인 규제담당자의 목소리는 더 이상 워싱턴에서 들을 수 없게 됐다"고 전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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