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 카르멘 라인하트 "이탈리아 위기 갈수록 심화"

2018-06-01 13:44:48 게재
2018년 이탈리아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는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 한 해 전인 2007년 수준에 비해 약 8% 낮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4월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5년 뒤인 2023년에도 금융위기 여파에서 완전히 회복될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2007~2009년 금융위기로 타격을 입은 11개 선진국 가운데 그리스가 가장 심각하고 장기적인 경제침체를 겪고 있다. 하지만 이탈리아도 금융위기 초기부터 많은 부채에 시달렸다. 그리스의 공공부채는 GDP의 109%, 이탈리아는 GDP의 102%였다. 부채가 많다는 건 위기시 대응여력이 떨어진다는 의미다.

10년 전 금융위기 발발 이후 두 나라의 경제적 침체, 값비싼 금융 비용, 이로 인한 취약성은 더욱 심화됐다. 위기 이후 유로존 기준금리가 크게 낮아졌지만, 두 나라의 부채는 더욱 늘어갔다.

그리스는 이미 한 차례 부채위기를 겪었다. 이탈리아는 두 차례 위기 근처까지 갔다. 하버드대 교수인 카르멘 라인하트는 "이탈리아의 2018년 봄은 충격이 큰 시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여름엔 지금보다 더 나빠질 것"이라며 "국채 위기에 근접하고 있다"고 전했다.

라인하트 교수는 지난달 31일 프로젝트신디케이트 기고문에서 "표면적으로 이탈리아의 공공부채는 2013년 이후 GDP의 130% 수준에 머무르며 안정된 것처럼 보인다"며 "하지만 최근 민간부채, 상환이 어려운 은행 대출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상황을 제외한다 해도 이는 오해"라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이탈리아 부채 위기를 평가할 때 중앙은행의 부채를 공공부채에 포함시켜야 한다. 유로존 국가들은 '즉시총액결제시스템'(TARGET 2)이라는 지불체계를 이용하는데, 국가간 대차대조를 했을 때 마이너스일 경우 해당국 중앙은행의 부채가 된다. 지난 3월 기준 이탈리아 중앙은행의 TARGET 2 부채는 GDP의 26%였다. 이를 포함하면 이탈리아의 공공부채는 GDP의 160%대로 껑충 뛰어오른다.

중앙은행 부채는 1999년 유로화 출범 이전의 것과 성질이 다르다. 그때엔 이탈리아 중앙은행이 독자적으로 통화를 발행할 수 있었다. 따라서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유도하면 부채탕감 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유로화 체제에선 그같은 일이 불가능하다. 이탈리아 중앙은행의 부채는 신흥국이 달러표시 부채를 진 것과 유사하다. 상환하거나 그럴 수 없다면 부채 구조조정을 겪어야 한다.

라인하트 교수는 "GDP 160%대의 공공부채, 지지부진한 경제성장, 정치적 불확실성 등의 요소들은 부채위기로 발전하기에 충분한 조건"이라며 "이탈리아의 불안정한 상황은 이미 국제적으로 충격을 주고 있다. 다소 진정된 듯 보이지만, 결코 해결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탈리아 주변국으로의 위기 전염도 우려된다. 최근 이탈리아 국채 수익률이 오르면서 스페인과 포르투갈, 그리스의 국채 수익률도 덩달아 올랐다.

유로화 약세가 달러화 강세를 유도하면서, 다른 신흥국들의 고통도 가중되고 있다. 특히 달러 부채를 많이 진 나라들이 힘겨워하고 있다. 안전자산으로의 회귀 현상이 가속화하면 신흥국 자산의 거품이 급격히 꺼질 수 있다.

라인하트 교수는 이런 조건을 기반으로 몇가지 해법을 예상했다. 가장 바람직하고 신속한 해법은 지속가능한 성장경로를 발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탈리아에겐 언감생심이다. 그렇다고 부채탕감 논의도 신속히 전개될 가능성이 낮다. 채권자 입장에선 완전한 상환을 바라지만, 채무자 입장에선 탕감을 바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탈리아의 부채위기를 어떻게 해소해야 할까. 대안으로 구제금융 필요성도 나온다. 하지만 일시적으로 시장을 잠잠케 할 뿐이다. 위기 타개의 정답이라기보다 잠시 묻어두는 것에 불과하다. 그리스 부채 위기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온건한 시나리오는 이탈리아의 공식 채무, 즉 다른 나라 정부나 국제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채권을 조정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글로벌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충분치 않다.

그리스의 경우 그같은 방법이 효과를 발휘한 이유는 국채의 상당부분을 유로존 채권국들이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탈리아 국채의 최대 보유국은 국내 투자자나 기관, 은행들이다. 라인하트 교수는 "그럼에도 이탈리아를 탈출하는 자본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그같은 전략을 쓸 필요가 있다"며 "하지만 그 전략도 제대로 이뤄질지 회의적"이라고 평가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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