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스케일

크기가 생명의 모든 것을 지배한다?

2018-08-03 11:12:50 게재

제프리 웨스트 지음 / 이한음 옮김 / 김영사 / 3만원

사람을 포함한 생물과 기업과 도시를 하나로 꿰는 '물리적 법칙'이 있을까? 얼핏 생각하면 불가능해 보인다. 생물은 기본적으로 다윈의 '자연선택'에 의해 지금 상태로 진화해왔고, 그 역사도 수십억년에 거슬러 간다. 인류만 해도 300만년을 넘는다. 기업은 '이익과 보상'을 최대화 하려는 욕망을 기본으로 진화해왔지만, 기업의 현대적 개념이 생긴 것은 기껏해야 200년 밖에 안됐다. 도시는 인간의 사회적 삶을 위해 사회관계망과 기반시설망을 확장하며 길게는 수천년, 짧게는 수십년 진화해 오늘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것을 하나로 꿰는 법칙이 있다고?

생물과 도시, 기업을 꿰는 보편법칙

이론 물리학자이자 복잡계 과학의 대부 제프리 웨스트의 '스케일'은 실제 이들을 관통하는 법칙이 있을 수 있음을 입증해보인다. 저자가 책 이름을 '스케일'이라고 붙이면서 고민했던 부제 '생물, 도시, 경제, 기업 모두에 적용되는 성장, 혁신, 지속가능성, 삶의 속도에 관한 보편 법칙'(한국어판에서는 '생물·도시·기업의 성장과 죽음에 관한 보편법칙')은 책 핵심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한 것이다.

애초 인간의 노화와 죽음에 대한 개인적 관심에서 출발해 생물의 진화도 결국은 물리의 법칙에 제약을 받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제프리는(샌타페이연구소 팀)은 그 법칙이 도시와 기업같은 인간이 만든 창조물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규모 곡선의 사례들. 동물과 도시, 기업의 전혀 다른 통계이지만 단순하면서도 체계적인 규칙이(법칙) 나타난다. 이 그래프들은 규모가 대단히 넓어 로그지수로 표시했다.


'스케일링의 법칙'이라는 이 만물이론에 따르면 생물이나 도시나 기업이나 크기나 규모 변화에 따라 일정한 수학적 지수법칙이 적용된다. 제프리의 표현을 빌리면 생물이나 기업, 도시를 정량화하고 수학으로 번역하면 놀라운 통일성과 단순성이 있다는 것이다.

포유동물의 체중과 대사율(단위 시간당 대사량)은 지수가 0.75에 가까운 거듭제곱법칙에 따라 증감한다. 어떤 동물의 몸집이 다른 동물의 2배라면 필요한 에너지이 양은 2배가 아니라 75%만 늘어난다는 얘기다. 코끼리는 쥐보다 1만배 무거우므로 세포수도 1만배 많다. 하지만 코끼라가 필요한 에너지의 양은 쥐보다 1000배뿐이다. 이른바 이러한 '규모의 경제'는 생쥐가 2~3년밖에 못살지만 코끼리가 70년을 사는 이유다. 포유동물 뿐 아니라 조류 어류 갑각류 세균 등도 스케일링의 법칙에서 예외가 아니다.

도시 역시 규모가 변화할 때마다 일정한 규칙에 따른다. 인구증가에 따라 도로 전선 수도 가스관이나 주유소가 세계 어디서나 지수 0.85의 동일한 양상으로 증가한다. 사회가 생산하는 부나 범죄율도 마찬가지다.(15%의 법칙)

생물과 기업, 도시는 △공간을 채우는 망(모세혈관, 상하수도관이나 전기의 배선, 기업 내부의 정보망), △말단단위의 불변성(코끼리나 생쥐의 비슷한 모세혈관,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이나 일반 가정집의 전기 콘센트), △최적화(다윈 적합도, 도시나 기업의 운영원리) 같은 유사한 매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생물·기업과 도시는 차이는 있다 생물과 기업은 어느 정도 성장한 후 죽는다. 의학의 발전으로 기대수명이 엄청 길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수명은 아직 125세를 넘지 못한다. 미국에서 상장된 기업의 반감기는 10년이다. 50년 뒤에도 살아남을 기업은 겨우 3%에 불과하다. 반면 도시는 죽어나가는 곳이 극도로 적다. 그 이유는 뭘까?

생물은 망을 통해 전달받은 대사 에너지 중 일부는 기존 세포를 수선하는데 쓰고, 일부는 죽은 세포를 대체하는데 쓰고, 일부는 몸 전체의 생물량을 늘리는 새 세포를 만드는데 쓴다. 하지만 저선형이기 때문에 성장에 쓰일 에너지는 결국 0이 될 수밖에 없다. CEO에게는 안된 말이지만 기업도 '반드시' 죽는다. 생물이나 기업의 성장은 저선형 구조이기 때문이다.

반면 도시는 초선형 규모로 성장한다. 인구가 2배로 늘면 특허수나 GDP, 임금과 같은 '사회적 자본'이 15% 더 늘어난다. 도시에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받는 이유다.

대통일 이론의 문 열어젖혀

제프리의 '스케일링의 이론'은 아직 완벽하지는 않다. 책에서도 밝혔듯 자료의 한계로 기업에 대한 연구는 생물과 도시의 그것에 비해 훨씬 빈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과 사회를 하나의 법칙으로 읽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야말로 '노벨상감' 같은 발견이다. 얼마나 대단하면 '블렉스완'의 저자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혹시 잃어버릴지 모르니 미리 두권을 사두라"고 했을까.

매일 최고기록을 경신하는 폭염처럼 자연환경과 인간이 만든 계 사이의 관계를 이해할 정량적이고 기계론적이고 통합된 '지속가능성의 대통일 이론'이 절실한 지금 '스케일'은 그 비밀의 문의 일단을 열어젖힌 게 분명하다.

사족 하나. 저자가 후기에 인용한 "바텐더가 알아듣게 설명할 수 없다면, 결코 좋은 이론이 아니다"라는 장담처럼 이 책은 방정식 하나 실려 있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짜증스러운 뜨거운 염천에 머리 싸매고 보지 않아도 술술 넘어간다는 얘기다.

남봉우 기자 baw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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