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의 금융교실

소확행과 은행상품

2018-11-01 11:05:22 게재
박철 KB국민은행 인재개발부 팀장

바야흐로 '신조어의 시대'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신조어들이 쏟아지다 보니 눈뜨면 생겨나는 새로운 용어들을 외우느라 머리가 아플 정도다. 흔히 신조어를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한다. 시대를 관통하는 새로운 트렌드의 출현이나 사람들의 관심사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 중의 하나가 최근의 소비 트렌드를 대표하는 '소확행'이다. 한자로는 小確幸(작을 소, 굳을 확, 다행 행)으로, 한자 뜻 그대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의미한다. 즉,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이 소소하지만 확실하게 실현할 수 있는 행복 혹은 그러한 행복을 일상에서 추구하는 삶의 성향이다.

푼돈 모아 저금하기

막연하게 느껴진다면 '소확행'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 <랑겔한스섬의 오후> 를 보면 개념이 훨씬 손에 잡힐 듯싶다.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을 때",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넣은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겨울 밤 부스럭 소리를 내며 이불 속으로 들어오는 고양이의 감촉" 등이다. 하나같이 사소하고 소박하다. 이런 소소한 행복은 마음먹기에 따라서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고 마음껏 누릴 수 있다.

'소확행' 열풍이 불면서 요즘은 기업의 마케팅에서도 가장 주목 받는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은행상품에도 '소확행' 바람이 한창이다. 요즘 은행들이 푼돈을 모아주는 금융상품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예컨대, KDB산업은행의 <데일리(daily) 플러스 자유적금> 은 '강제 저축방식'을 통해 아무 생각 없이 새나가는 푼돈을 '쌈짓돈'으로 만들기에 그만이다. 고객이 1000원·5000원·1만원 등으로 단위금액을 정하고 지정된 체크카드로 결제하면 남은 자투리 돈을 알아서 적금통장으로 옮겨준다.

예를 들어 '1000원 잔돈'을 설정하고 체크카드로 4300원을 결제하면 1000원 미만의 잔돈인 700원이 자동으로 적립되는 식이다. IBK기업은행의 <평생설계저금통> 도 신용카드나 체크카드를 쓸 때마다 1만원미만의 잔돈을 적금이나 펀드로 이체해준다.

게임을 하듯 쉽고 재미있는 방식으로 푼돈을 모을 수 있는 적금상품도 인기를 끌고 있다. 이 대표적이다. 스마트폰 화면에 나타난 커피값·택시비·간식비 등 습관적으로 지출하는 푼돈에 해당되는 '아이콘'들을 누르면 바로 그 돈이 통장에 저축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커피 한 잔이 생각날 때마다 비싼 브랜드커피 대신 자판기커피를 이용한 다음 커피아이콘을 누르면 아낀 커피값이 자동적으로 저축된다.

또 택시를 타는 것이 아니라 대중교통으로 발걸음을 돌리고는 택시아이콘을 누른다. 택시를 탄 셈치고 대신 그 돈을 저축하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빠지기 쉬운 소비유혹을 뿌리치고 푼돈을 저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우미'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은행들의 푼돈 마케팅 바람은 지속된 경기침체로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팍팍해지면서 목돈 투자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현실 탓이다. 하지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요즘의 소확행 트렌드와도 맞아 떨어진다. 세상에 목돈보다 푼돈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돈에는 '눈덩이 효과(Snow Effect)'라는 게 있어서 작은 돈은 잘 불어나지 않지만 어느 정도 금액 이상이 되면 쉽게 불릴 수 있다. "참깨가 백 번 구르는 것보다 호박이 한 번 구르는 게 낫다"는 말 그대로다.

하지만 모든 생명이 조그마한 '종자'에서 시작하듯 목돈도 작은 '푼돈'에서 출발한다. 거꾸로 목돈을 만들기 위해서는 평소부터 모래처럼 흩어지는 푼돈을 꼼꼼히 챙겨야 한다. 돈은 마음먹는다고 벌리지 않는다. 돈은 남의 지갑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출은 마음먹기 나름이다. 남의 지갑을 열게 하기보다는 내 지갑에서 새나가는 돈을 막는 것이 훨씬 수월한 법이다. 많이 벌어 부자가 되겠다는 '실속 없는 꿈'보다는 아껴서 부자가 되겠다는 '현실적인 목표'가 필요한 이유다.

당장 실천하는 게 중요

커피값을 아껴 저축하는 '커피통장'도 좋고 금연하고 담뱃값을 매일 넣는 '금연통장'도 좋다.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시작하는 '실천'이다. 소확행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사람들은 거대한 담론보다는 작은 실행에 가치를 둔다. 손에 잡히지 않는 커다란 행복보다는 당장 누릴 수 있는 눈앞의 작은 행복을 찾아나서는 것이다.

그래서 '푼돈 모으기'야 말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소확행의 시대'에 걸맞은 삶의 방식인지 모른다. "매일 행복하진 않지만,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디즈니 애니메이션 곰돌이 푸가 일러주는 삶의 지혜다.

저축은 미래를 위한 '희망'이요 행복의 '원천'이다. 당장 쓰고 싶은 욕구를 참아가며 저축하는 이유는 오늘보다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 때문이다. 지금 아껴 모으는 푼돈이 미래를 위한 종자돈이 되고 나와 가족의 행복을 일구는 텃밭이 되어 줄 것이다.

박철 KB국민은행 인재개발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