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읽는 정치 | 우리는 왜 한나 아렌트를 읽는가

20세기가 낳은 새로운 계층 '난민'

2018-11-09 10:40:32 게재
리처드 J. 번스타인 지음/김선욱 옮김/한길사 /1만7000원

내전에 따른 예멘 난민들의 제주도 상륙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난민'이라는 주제가 현실로 다가왔다. 제주에서 시작한 논쟁은 전국으로 퍼져 국회까지 압박하고 나섰다. 아프리카 난민들을 박대하는 유럽에 혀를 차던 사람들이 다소 긴장감을 갖고 진지한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안락한 삶을 해치려고 몰려든 불청객으로 치부하기도 하고 '우리도 난민이었다'며 어려웠던 지난날을 환기시키며 대응하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난민문제도 동성애, 대체복무제 등 다양하게 일어나는 사회적 이슈의 한 퍼즐처럼 '해결해야만 하는' 과제로 등장한 것이다.

'악의 평범성'이라는 주장으로 알려진 한나 아렌트의 '난민'을 대하는 태도는 현실 앞에 놓인 우리의 과제에 대해 다소 풍부하게 토론할 수 있는 재료를 제공한다. 아렌트는 1933년 독일에서 도망쳐 나와 파리에서 7년간 살다가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했을 때 미국으로 옮겨가는 등 무려 18년간 무국적 '난민'생활을 이어왔다.

'우리는 왜 한나 아렌트를 읽는가'엔 아렌트의 '난민'에 대한 예지력과 통찰력이 담겨 있다.

저자 리처드 J. 번스타인은 미국 뉴욕의 뉴스쿨에서 강의하는 철학자로 "아렌트는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을 줄곧 괴롭혀왔던 무국적 인간, 즉 난민의 집단적 발생이라는 현상을 이해하길 원했다"고 평가했다. 아렌트는 "제1차 세계대전 말부터 발생한 모든 정치적 사건으로 법의 울타리 밖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새로운 범주가 불가피하게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해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주권 국가의 저항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상황을 예견했다. 난민에겐 더이상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거나 새로운 고향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은 거의 없다.

유태인인 아렌트는 전체주의와 기저에 곰팡이처럼 번지는 '악'이 '난민을 대하는 태도'에도 투영되고 있다고 봤다. '그들만의 자유와 권리'에서 항상 소외된 '그 밖' 사이엔 넘어설 수 없는 선이 그어져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아렌트는 추상적 인권에 대한 호소에 대해 깊은 의문을 품었다"며 "그 권리를 보장하고 보호할 어떠한 효과적인 제도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짚어냈다. 그는 "무국적 상태의 인간과 난민이 전 세계적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점과 그들이 마치 잉여적 존재인 것처럼 다뤄지는 모습에서 우리는 권리를 가질 권리를 파괴하는 것과 생명자체를 파괴하는 것 사이에는 무너지기 쉬운 선만이 존재하고 있을 뿐이라는 아렌트의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저자는 우리가 난민을 대해 경계하는 모습이 '악의 평범성'과 연결돼 있음을 시사했다. 아렌트는 "희생자의 관점에서 사물을 보는 상상력이 결여된" 이유를 '사유의 무능성'이 만들어낸 '악'에서 찾았다.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 지 결코 깨닫지 못한 것"이라는 얘기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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