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집배노동자의 과로, 인력충원 시급하다

2018-11-22 09:47:44 게재
김형렬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아침 7시 출근해서 그날 도착한 우편물을 인수하고, 배달 경로별로 우편물을 분류한다. 9시 정도에는 배달 우편물을 들고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시작한다. 물량이 많은 날은 점심식사를 하지 못하거나, 점심을 먹는 날도 20분 안에 해결해야 한다. 아파트 단지, 사무실이 즐비한 건물을 돌아다닌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시간이 없어 계단으로 오르내리고, 수시로 울리는 전화를 받으며 민원인 불만을 들어야 한다. 오후 5시, 우체국에 돌아가면 배달결과를 정리하고, 내일 배달해야 할 우편물들을 분류하는 작업을 오후 8시 30분 까지 진행한다. 집배노동자들의 일상이다. 신도시 우체국에서 일하는 집배노동자들은 밤 10시를 넘겨 일하는 경우도 많다.

물량이 많은 날은 점심식사도 하지 못해

연이은 집배노동자들의 과로사, 시민사회의 요구에 의해 집배원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이 만들어졌다. 1년여의 활동 결과를 지난 10월22일 발표했다. 10년간 166명의 집배노동자가 교통사고, 심혈관계질환, 자살 등으로 사망했고, 건강보험자료를 이용한 연구에서 심장질환, 뇌혈관질환, 사고에 의한 부상, 만성폐쇄성폐질환 등의 위험이 높다고 보고했다.

노동강도에 대한 평가에서는 신체 부하를 고려해 계산한 하루 최대노동시간보다 1.6~2.0배 더 많은 노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년 평균노동시간은 2,745시간으로 한국 임금노동자 평균(2,052시간)보다 87일, OECD 회원국 평균(1,763시간)보다 123일 더 일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간 노동시간이 3,000시간이 넘는 우체국도 13곳, 이곳에 근무하는 1,388명의 집배노동자(전체의 8.4%)가 초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기획추진단은 인력충원을 통해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집배노동자들의 건강을 다룰 수 있도록 안전보건관리 전담 기구 도입을 우정사업본부에 제안했다.

집배노동자들의 중노동 현실은 최근 몇 년간 언론 보도를 통해 여러 차례 알려졌다. 여러 연구자들의 연구 결과도 이러한 현실을 알리는데 기여했다. 그러나 현실은 변함없이 노동자들의 죽음이 이어지고 있다. 집배노동자들이 공무원 신분이라서 공무원을 늘리는 것에 대한 부담, 그리고 이메일 사용 등으로 우편물량이 줄어드는 데 인력 증원이 꼭 필요한지에 대한 문제제기 역시 팽팽하다.

우편 서비스가 공공서비스로서 자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공공 서비스의 성격에 맞는 신분이 유지될 필요가 있다. 또한 일반 우편물량은 감소했지만, 배달이 어려운 등기 서비스, 소포 업무 등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물론 노동시간을 줄이고, 노동강도를 줄이는 것을 반드시 인력을 늘리는 방식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등기제도와 같이 불필요하고 비효율적인 제도를 개선하는 것, 효과적인 물류체계 개선 등을 통해 집배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그러나 배달 업무 특성을 고려하면 당장 시스템 개선을 통해 획기적인 노동시간 단축을 가져오기는 힘들다.

중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력 충원 필수적

현재 집배노동자들의 중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력 충원이 필수적이다. 전문가들이 포함되어 구성된 기획추진단에서는 당장 주 52시간 상한제를 맞추기 위해서라도 2,000여명의 증원이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안타깝지만 주 40시간을 맞추기 위한 계획은 아직 만들지 못하고 있다. 주 40시간이라는 표준 노동시간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주 52시간 상한제를 맞추기 위해 인력을 더 충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노동조합과 전문가들의 수세적이며 위축된 주장조차 현실에서는 어렵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집배노동자들은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맨 몸으로 그 열기를 받아내며 노동을 수행한다. 시도 때도 없이 마주하는 미세먼지와 자동차 매연 속에서도 편지와 각종 고지서, 우리 삶을 연결하는 중요한 것들을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묵묵히 전달하고 있다.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고마운 일’을 하는 그들에게 언제까지나‘직업적 사명감’과‘아름다운 희생과 봉사정신’만을 강요할 수는 없다. 가능한 빠른 시기에 인력충원을 통해 중노동을 줄이고, 집배노동자가 더 이상 과로에 의해 죽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형렬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