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내 처리 불투명 ‘김용균법’, 언제까지 참담한 죽음 계속돼야 하나

"안전, 경제적 계산 앞서 인권문제"

2018-12-27 00:00:01 게재

영국, 하청노동자 사망에 37억원 벌금 물려

안전의무 안지킨 법인, 과실치사죄로 처벌해

국회의 응답을 기다리며│민주노총 주최로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개정,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결의대회. 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위험의 외주화'를 방지하는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이 한국당 반대로 원점으로 돌아가면서 연내 처리가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는 법인에 대한 처벌규정 도입을 놓고 논란을 벌이지만 선진국은 안전문제에 관한 한 매우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 2007년 제정된 영국 기업살인법(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이 대표적이다.

영국 대형 슈퍼마켓 체인인 '아이슬란드 푸드'는 2017년 9월 법원으로부터 250만파운드(한화 약 37억5000만원)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최 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직업환경의학전문의에 따르면 2013년 이 업체와 에어컨 및 공기정화시설 관리 하도급계약을 맺고 일하던 58세 노동자가 천장 에어컨 필터교체 작업 도중 3미터 높이 작업대에서 추락 사망했다. 법원은 노동자가 천장에서 작업할 때 추락방지 난간이나 안전대가 없었고, 위험성 평가를 수행하지 않아 영국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이 법은 기업이 안전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한 경우 연간 매출액의 2.5~10% 범위에서 산업재해 벌금을 내도록 규정했다. 심각하게 의무를 위반한 경우는 상한선 없는 징벌적 벌금 부과도 가능하다. '아이슬란드 푸드'도 이 법에 의한 처벌을 받은 것이다.

형사정책연구원이 펴낸 '형사정책연구'(2014년 겨울호)에서 김재윤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는 "기업 과실로 인한 대형재난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특정개인이 아닌 기업 형사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국에서 기업과실치사죄 첫 사례는 2011년 2월 'CGH'란 기업이다. 2008년 한 젊은 직원이 작업중 3.8미터 아래 구덩이에서 지반침하로 질식사했다. 내부 지침에 구덩이에는 말뚝이나 지지대를 사용해야 하는데 하지 않았고, 누군가 지상에서 감시를 해야 하는데도 이를 지키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해당기업에게 38만5000파운드(한화 약 6억7000만원)의 벌금이 선고됐다. 2012년 7월에는 '라이온철강'이란 회사에 벌금 48만파운드(한화 약 8억4000만원)가 선고됐다. 한 노동자가 지붕에서 작업중 떨어져 사망한 데 대해 기업의 과실치사혐의를 인정한 것이다.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은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국가경쟁력을 금과옥조로 받드는 미국과 영국에서 산업안전관련 규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격하다"며 "일터의 안전은 기본적 인권이자 인간의 생존권 일부로 어떤 경제적 계산에 우선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장병호 기자 bh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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