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윤찬식 주코스타리카대사

탄소경제를 버린 코스타리카의 선택

2019-02-26 11:01:46 게재

39세 젊은 대통령 까를로스 알바라도(Carlos Alvarado)가 이끌고 있는 코스타리카는 2월 24일 탈탄소 국가경제계획(2018~2050)을 국제사회에 선포했다. 2021년 독립 200주년까지 탄소중립(carbono neutral) 국가를 달성한다는 야심찬 목표시한을 10년 전에 설정했지만 이번 선언은 더욱 공격적이고 전향적인 로드맵이다.

1949년 헌법으로 군대를 폐지했던 것처럼 우리세대는 또다른 군대(화석연료 사용)를 폐지하고자 한다는 선언을 보면 제조업이 약한 소국이긴 하지만 평화와 환경 담론에서 글로벌 선두주자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나라답다.

코스타리카는 국토의 1/4이 국립공원이고 세계 생물종의 5%를 보유한 나라이자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총장(Christiana Figueres)을 배출하며 2015년 파리 기후변화협약 채택을 주도했다.

물 바람 땅(지열) 태양 등으로부터 99% 수준의 재생에너지 생산을 달성하고 있는 코스타리카에서는 생태가 곧 인권이고 환경이 곧 국력이다. 아름다운 생태관광 국가답게 70% 이상이 산악지형인 국토 전체가 식물원이자 동물원이다.

2011년 이래 수도 산호세에서 시작된 연기없는 일요일(Domingos sin humo) 캠페인은 차량, 흡연 등이 없이 자전거와 도보 등만으로 건강을 즐기고 자연과 대화하자는 운동으로 범국가적인 탈탄소 운동(Descarbonicemos Costa Rica)으로 발전하고 있다.

시민사회의 푸른 깃발(Bandera Azul) 환경운동에 우리 대사관은 외교단 중에서 가장 앞장서서 종이없는 사무실, 주변 쓰레기 줍기 등을 실천하고 있다.

탈탄소화는 코스타리카 국가발전계획의 핵심 키워드로 화석연료와 결별,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 발굴, 전기·수소자동차와 전기열차 도입, 플라스틱 규제, 자전거 애용 등을 천명하고 있다. 이 맥락에서 최근 코스타리카 정부가 발주한 전기자동차 100대 도입 입찰에서 국산자동차가 수주에 성공했을 때는 경제적 짜릿함보다는 환경적 양심 측면에서 기분이 더 좋았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300여년 인류경제를 지탱해 온 근대 탄소체제에서 탈근대 수소경제로 대전환을 서두르는 경쟁 속에서, 녹색 지구방위대 같은 코스타리카의 결연한 몸부림은 우리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탄소경제는 환경, 에너지 의존과 안보 등에서 한계가 있고 무엇보다 화석에너지 자원의 가채연수 시한이 도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아름다웠던 우리 하늘은 어디로 갔을까? 중국 등과 환경협력 필요성이 최근에야 국가적 화두로 부상했지만 유럽 대기오염물질의 초국경 장거리 이동에 관한 협약(CLRTAP)이 40년 전에 채택되었다는 사실(1979년)을 돌이켜보면 국가 핵심사안에 대한 다원적인 대비와 장기계획의 중요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코스타리카도 산림비율이 벌목 등으로 1987년 21%까지 떨어졌다가 30년간의 절치부심 끝에 2017년 55% 수준으로 복원시켰다고 한다. 역사적 수업료를 톡톡히 지불한 것이다. 자연 앞에서 벼락치기는 통하지 않는다.

사하라 사막에서 대륙간 먼지가 날아오는 것 같다고 엄살을 부리는 코스타리카 사람들의 환경 감수성에 탄복하면서 태평양 너머 고국을 바라본다. 토건의 불가피성(不可避性)과 환경의 불가양성(不可讓性), 탄소와 수소간의 변증법적 전쟁시대다. 바람보다 더 높은 위치와 지혜로 우리 경제구조와 삶을 바꿀 혁명적 전사들은 어디에 있는가.